백수로 5개월째 2016.11.21
나는 대인기피는 아니지만,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걸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받아들였다.
그만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난 후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지금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직장생활은 어떤 면에서는 강요된 관계가 주어진다.
나처럼 비 관계지향적인 사람에게는 직작 생활하는 동안에 만나는 사람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관계의 시간을 가진다. 때론 그 속에서 내가 소모되는 느낌까지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은 관계를 통해 태어나고 살아가고 심지어 죽는 것도 혼자 죽는 것이 아닌 관계 속에서 한 존재의 죽음이 정의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알고 있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기질'이 사람들과 왁자지껄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백수의 일상은 반대로 강요된 혼자된 시간이 주어진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아내도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찾아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
아파트 주변 벤치에 앉아 있거나, 공원을 거닐거나 서점에 사보지도 않을 책을 들고 한참을 서있기, 빨리 갈 수 있는 코스를 두고 환승 많이 하는 지하철을 타거나...
시간의 낭비 일까?
퇴직 후 첫 2달은 정말 쉬고 놀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 자기 계발에 눈을 돌렸다. 영어학원도 다니고 나름 집중력 있게 고등학교 2학년 정도의 강도로 한두 달은 공부도 했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강도와 집중이 필요한 일은 구체적인 목표, 특히 '일정' 이 있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메일 스케줄을 점검하며 지내는 것이 훈련된 나에게 끝이 예정되어있지 않은 이 시간 속에서 뭔가 구체적인 것을 한다는 것. 그것은 마치 종말론적 세계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원에서 받은 학습 자료들, 몇십 년 만에 만들어 보내 영어 단어장, 학습자료들을 링제본으로 정리한 것들...
다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그리고 하루에 2장 이상 보기로 한 영문법 책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게 어려운 것이다. 지금까지 직장이라는 틀을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만들어 주는 외곽과 내부의 연결 통로 같은 길들이 없기에 이런 일들을 어디에 언제 배치해야 할지 생각도 안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보니 직장이 주는 '틀'은 마치 복잡한 미로의 벽체 같다.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숙재와 문제 해결이 주어지는 그냥 그 자체일 뿐 그것이 내 삶 전체를 규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언젠가 다시 일할 것이다.
그때가 가까이 오거나 먼 후에 오거나 그 차이 일뿐.
다시 마음을 다 잡아 본다.
관계지향적이지 않은 사람인 나에게 지금은 직장을 새롭게 구하는 것 못지않게 이 '시간'을 통해 내 주변의 사람을 재발견하는 데 사용하는 데 사용해야, 아니 '사용'이라는 말은 아니다. '마음을 써야' 할 듯하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읽으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라는 것이 사람을 삶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보았다.
쉬는 동안에 나의 다양한 전문 분야의 공부할 거리를 두고 다시 영어를 다잡으려고 했나 생각해 보니 그것도 영어라는 단순히 정보교환의 도구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라는 나름의 직감적인 판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재스춰나 표정을 많이 활용한다. 그래서 내 내면이 해방되는 느낌에 그런 시간들이 즐겁기까지 했다. 영어 학원에서 영문을 글로 쓰고 이야기하는 동안 잠시 일 할 때의 그 희열을 맛보았다.
나도 이제 '비 관계지향적 기질'이라는 것에 기대지 말고 마음을 써서 사람을 대하고 이야기하고 귀 기울이고 그들의 눈빛을 살피는 내가 되지 못한다면, 남은 인생 내가 일을 얼마나 잘한 들 뭐일까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자기 욕망에 함몰된 사람들이 개인뿐만이 아닌 국가를 망치는 상황을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백수의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