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친정집에 갔다가 엄마가 보는 주말 드라마를 같이 봤다.
"신사와 아가씨"
잠깐 보는데 드라마 이야기의 전재가 어쩐지 눈에 훤하다 싶었다. "이루어질 듯 말듯한 사랑"
주연과 조연들이 대사와 표정에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면서도 잠시 엄마랑 TV 같이 보고 왔다 싶었는데, 다음 주말이 되니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래서 주말마다 드라마를 시청했다. 심지어 시간을 기다리면서까지.
아이가 셋인 회장님, 입주 가정교사. 번번이 방해하는 또 다른 여자
여기서부터가 순탄치 않은 설정이었는데, 나중에 보면 이 부분도 걸림돌로 나오는 거다. 나이 차이.
몰입해서 봤을 때는 둘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길래 주위에서 이토록 반대할까 싶었다. 보다 보니 14살 차이라는 것.
그 순간 내가 한 반응은 '그게 어때서?, 별로 안 나는데?' 그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남편과 12살 차이라서.
그런 나의 반응에 불현듯 나도 놀랐다.
'언제 내가 이렇게 익숙해진 거지?'
분명 나도 소개로 만났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물어보지 않고 나갔다가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에 나이를 듣고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스러웠다. 소개해주시는 분이 알아서 나이를 맞춰주셨으려니 생각했다는 것이 이렇게 역사를 바꿔놓은 것이다. 나이를 알았으면 나가지도 않았을 테니.
그때 내가 29살, 남편은 41살이었는데 2와 4의 차이는 서울과 제주도 사이의 간격처럼 느껴졌다. 그랬는데, 그렇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나의 남편이 되었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남에서 님이 되는 순간은 너무도 단순한 이유였다. 남편이 내게 보낸 메일을 읽고서.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라면 평생 같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 메일이 어떻길래 마음을 되돌렸을까 생각해보면 새삼 두 번 놀란다. 마카롱처럼 달달한 말들이나 어떻게 해주겠다는 그 흔한 다짐들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도 그때 그 메일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은 달라져있었다.
이제 같이 나이 들어가서 그런 것에 무뎌졌나 보다. 얼굴을 볼 적마다 나이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의 생각들을 공유하는 동지가 되어 살아가니까.
나이차를 느끼는 것이라고는 내가 부르는 노래와 남편이 부르는 노래가 다르다는 것
남편의 머리가 금방 하얗게 변해서 머리 염색을 해줄 때
회사에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은퇴 이후에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는 것
이런 것을 이야기할 때다.
드라마에서 결말은 신사와 아가씨는 해피엔딩이 되었다. 아이들이 셋이 있어도 나이차가 14살이 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까지 갔다는 것. 손뼉을 쳤다. 드라마 작가가 쓰는 내용에 따라서 둘의 앞날을 좌지우지되는 이야기 전개. 해피냐 새드냐 아니면 제3의 모호한 채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지만 뻔한 결론이라고 해도 해피엔딩이라서 다행스러웠다.
나의 삶의 드라마는 내가 쓰니 나는 내 인생의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이 차이라 쓰고 해피엔딩이라 적고 싶은 내 인생의 드라마. 그 중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갈지, 적어가고 싶은지 대본을 쓰듯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