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복 Mar 15. 2021

#부부 이름표의 의미

캘리그라퍼아내가 바라본 부부라는 글자

주말 결혼식이 있어서 남편이 다녀왔다. 미리 축의금 봉투에 부부의 이름을 적으려니 나란히 놓인 이름이 특별해 보였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 평생을 함께 하자고 결심하는 것, 그 과정들이 지나 남자와 여자의 이름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의 결정체일까.


밤 산책을 하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생각이 나서 말을 걸었다. 

"여보가 20대, 아니 30대였을 때 나를 만났다면 우리는 결혼할 수 있었을까?"

남편과 띠동갑이어서 그때였다면 부부가 될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게 나이로서의 타이밍도 있지만 정서적 타이밍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남편에게는 슬픔이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고 했다. 중3이었던 16살 무렵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지도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24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10대와 20대의 부모라는 존재, 세상 전부와도 같았을 분들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나는 감히 헤아일 수 없을 마음들이다. 남편은 헛헛한 마음들을 성공하고 싶은 마음들로 채우고 싶었다고 했다. 몇 년을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쌓여놓았던 욕심들을 버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은 내가 남편을 만나지 않았던 때 일어난 일들이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통과해서 마침내 다가온 인연인가 싶다.


마흔, 마흔이라고 했다.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마흔한 살 남편을 소개받았다. 내 나이 스물아홉. 

누군가를 만나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뭔지, 결혼할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없어 결혼에 대해 점점 마음을 접고 살던 때 남편을 소개받았다.  나이 차이가 이렇게 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알아서 맞춰 소개해줬을 거라는 생각하고 나갔다가 만남의 역사가 시작됐다. 만약에 나이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가지 않았을 테니 부부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을 지나고 만나게 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만나고서도 결혼까지의 과정도 할 말이 많지만..)


이제는 띠동갑이라는 것이 서로 같이 나이를 먹어가서 크게 와 닿지 않아 졌다. 오히려 이런 부분으로 관심이 향하는 중이다. 

'건강하기, 은퇴 후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아이들에게 평생 든든하고 따뜻한 세상이 되어주기, 무엇보다도 서로를 격려해주고 아껴주는 말과 행동으로 힘이 되어주기'

부모로서의 자리가 더 크게 다가오는 시기이지만 13년을 매일같이 남편을 보며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들을 바라볼 적이면 어떤 동지애가 느껴진다. 이것을 측은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하지만 짠한 감성으로만 표현하고 싶지 않으며 잘 살아가고 있음에 고마움으로  말하고 싶다. 먹고살기가 전부가 아닌데 삶의 미션처럼 느껴질 적이면 이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부와 부 글자를 똑같이 들고 있는 사람 부부. 

더하고 덜한 것도 없이 똑같은 자음과 모음의 개수를 나눠가진 사람. 

내가 힘들면 남편도 힘들어하고, 내가 기쁘면 남편도 힘이 나는 것처럼 글자를 쓰는 사람이라서 이 묘한 조합에서 부부의 균형을 늘 유지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배설물들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있는 존재 자체로서의 고마움 들을 말하며 살아가는 사이 말이다. 좋은 것들을 더 나눠줄 수 있는 아내가 되고프다. 부부라는 글자가 참 절묘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퇴 이후 직업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