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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Jan 20. 2021

#은퇴 이후 직업에 대하여

남편의 나이 55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무렵 집으로 남편이 나를 초대하던 날이었다. 테이블 위에 자신의 예금 통장을 다 펼쳐놓고는 내게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마음은 남편이 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보겠다는 생각보다도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로서의 어떤 대우처럼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직장을 다니다가 고시 공부를 했던 사람이어서 가지고 있던 것들은 공부하는데 다 사용하고 30대 언저리를 지나갔다. 후에 다행스럽게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30대 중반 이후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생활하는데 익숙했던 남편이었으므로 그야말로 사회생활하면서 도토리처럼 모아놓은 통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부유하게 산 것은 아니어서 얼마든지 알뜰하게 살아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와 결혼을 했다.

내 나이 30살, 남편 42살 때.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겼고 신혼기에서 부모가 될 준비들을 하며 육아기를 맞이했다. 정신없이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폭 마음이 빠져서 지나갔고 어느덧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도 왔다.

남편은 결혼 초반부터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시간 노트를 컴퓨터에 기록했다. 아이들이 몇 살 때 자신은 몇 살이 되는지, 년도를 적어놓고 그 해에 가족에게 일어난 좋은 일들, 기억했으면 하는 일들을 적어놓았다.

후에 앞으로 살아갈 나이들을 염두해 놓은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55살이면 첫째가 13살, 둘째가 11살."

"이때 즈음이면 직장을 나와야 하겠지?"


그때도 그럴 시간이 멀리만 느껴졌다. 그런데 올해 그러니깐 남편이 55살, 딸들이 13살, 11살이 되었다. 시간이 이렇다. 저만치 있는 것 같은데 날아오는 바람처럼,  밀려오는 밀물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게 아닌가.


그 사이 회사에는 정년 연장이 60세로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몇 년 전에는 회사의 경기가 안 좋아서 퇴직자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회복이 많이 되어서 분위기도 괜찮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그 멀게만 느껴졌던 말들이 코앞에 살아가는 날들이라는 것은 참 여러 가지 마음들을 가져다준다.


지난번 적은 글 이후, 남편에게는 새로운 자격증 하나가 생겼다. 그러니깐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오롯한 수고의 시간들이 담긴 종이 한 장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책들을 사서 인터넷 강의를 몇 배속으로 돌려 들으면서 준비한 시험이었다. 직업으로 생각하자면 남편의 새로운 직업이 될 가능성이 큰 것. 진짜 사용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처음에는 그 단어들이 어색했던 남편에게 나란히 놓인 단어들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이렇게 생각이 바뀌어갔다.


은퇴 이후에 어떤 직업들을 할 수 있을까

1. 대학 다닐 때 과외로 생활비를 벌었으니 수학학원을 해볼까

( 나이가 많아지면 배울 아이들이 있을까? 질문에 패스, 그렇지만 그때 남편은 정석 책을 사서 다 처음부터 공부했다는 사실, 차라리 나중에 누구 가르칠 생각 말고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게 좋겠다고 쪽으로 정리)

2. 공인중개사

(이 공부를 하겠다고 책을 바로 사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때, 정말 하고 싶은 건지 몇 번을 물어봤다.

공부하다가 적성에 안 맞으면 헛수고가 될까 봐서. 평소에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예전에 고시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인지 법들이 들어가는 공부들을 하는데 좀 수월해 보였다. 그래도 공부한다고 퇴근하고 와서 새벽까지 공부하다 자는 것을 보니 세상 쉬운 게 없구나 싶었다. 후에 정말 직업으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자격증이 생긴 것은 참 다행스럽다. 다시 그 밤에 공부를 안 해도 되니까.. )


여기까지가 현재의 생활이다.

최근에 누군가의 소식을 들었다면 남편이 이야기해준다. 예전부터 회사에서 테니스를 운동 삼아서 꾸준히 했었는데 그때 가르치시던 코치님께서 코로나로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이후의 이야기들이었다.

다른 아파트에서도 했다가 그 마저도 못하고 쉬고 계시다가 우체국에서 일하게 되셨다는 이야기였다. 테니스 코치님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갑자기 직업이 바뀌었다. 우체부 아저씨로.


직업.

나이가 들어서 더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하게 될 때 고려하게도 되지만

바이러스로 인해서도 직업이 바뀌는 세상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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