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가는 길
3일째 밤, 12시가 다가갈 무렵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독서실로 공부하러 간 남편을 마중하러.
놀러 가고 싶었던 여름휴가를 아꼈다가 이번 한주를 공부하는 데 쓰고 싶다고 올해 초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우리들(나 포함, 아이들)은 아우성이었다. 놀러 가고 싶다고. 여름휴가에만 바람을 쐬는 것은 아니니깐 그러라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시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정신력과 체력이 따라야 한다고 느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와서 쉬고 싶지 바로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기는 쉽지 않으니깐. 간간이 자신이 좋아하는 테니스 경기 채널을 보면서 마냥 행복한 모습으로 보고는 공부를 했다. 공부하다가 졸면서도, 잠이 쏟아지면서도, 책상에 붙어있는 남편이 안타까워서 그냥 자라고 말을 해도 가뿐하게 일어나지 못했다.
어떠냐고, 공부는 잘 되느냐고 물었는데 예전 같지 않다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다 공부한 것들인데 다시 펼치면 새롭다며 공부할 머리가 때가 있다며 여러 번 이야기했다. 못 먹고사는 것도 아니지만 나중을 위해서 "남편과 아빠로서의 이름값"을 지켜내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 자주 마음속을 들락날락했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우리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전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캘리그라퍼로서의 직업이 있지만, 남편은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정말 모른다. 우리들은.
결혼 초에 41에 남편이 결혼할 무렵 자신이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예상표를 미리 적어놓고는 아이들이 몇 살 때 즈음 자신이 은퇴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53세 정도를 적어놓은 기록들이 있다. 그때 아이들의 나이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이라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나이를 지났음에도 잘 다니고 있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준비해놓아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앞으로 커갈 아이들에게 어떠할 영향을 끼칠 줄 모르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보면서 어떤 날에는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남편이 안타까워서 말을 하곤 한다. "내가 글씨를 열심히 쓸게 여보. 나중에는 내가 돈을 벌 테니 당신은 그때 하고 싶은 거 해"
그 말만 듣고도 행복한지 웃는 남편을 보면서 그렇게라도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모두 당신의 몫이야"라고 쌓아두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덜덜 떨게 되는 운전을 평생 안 할 거라고 장담했던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10년 장롱면허를 회생시켰다. 그리고는 이렇게 공부하러 간 남편을 마중 가는데 사용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그 밤 혼자 밤바람 맞고 쓸쓸히 걸어오지 않아도 되니깐. 우리 같이 가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