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 전공 대학원생은 노비,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은 도비.
학부를 졸업하면서 4년 동안 배운 것이 별로 없다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학업적 갈증이 생겼다.
언어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졌고, 언어학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4년 간의 학부 생활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필기와 면접을 두 번씩 봐야 했다.
(원래는 필기와 면접시험 한 번씩 보는 건데,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두 번씩 보게 했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 뒤, 학교로 한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맞춰 도착해 노크하고 들어가니 커다란 회의실에 文学院(인문대학) 교수님 전원이 모여계셨다.
문을 열자마자 30여 명의 교수님이 긴 테이블에 앉아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교수님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될 줄 예상치 못해 매우 놀랐지만, 우선 깍듯하게 인사부터 했다.
나를 보자마자 "우리를 여기에 모이게 한 애가 너였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멀뚱히 한참 서 있다가 지정해 주는 자리에 앉았다.
원래 몇 년 전부터 유학생을 뽑지 않았다는 말로 시작된 이야기.
내가 학부에 입학하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유학생을 뽑지 않았었다고 했다.
(그럼, 나 왜 시험 보게 한 거야?)
나 하나 때문에 文学院 교수들이 다 모여서 회의하게 된 거라고.
지도교수를 해주겠다고 하신 교수님이 계시지만, 아무래도 유학생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라서 유학생을 받기 꺼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文学院 전체 교수가 나로 인해 한 자리에 모여 한참 회의를 하게 했다는 특별한 경험만 남기고 중국에서의 석사과정 시도는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교수님 전체가 모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런 희귀하고 어려운 자리를 만들게 한 '대단한 학생'으로 교수님들에게 각인된 나.)
한국에 돌아와서 한 번 더 시도했지만,
당시 그 학교 교수님들이 대부분 정년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학구열에 불타는 내가 부담스럽다고 거절하셨다.
나는 대학원과 인연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바로 직장을 구해 일을 하며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없다 못해 마이너스가 된 채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학부 때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제 유학생을 뽑기 시작하는데 아직 대학원 다닐 생각 있냐고.
추가로 한국에 있는 대학도 한 곳 추천해 주셨다.
배움에 대한 갈증과 열정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왠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어서 더 잘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대학원 진학 제안에 더 솔깃해진 것도 있다.
그렇게 중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원을 가보기로 했다.
(학부 졸업 당시 마음과 다르게 언어학이 아닌 다른 전공으로)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결정!
우선 일을 그만두고 중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졸업 증명과 성적 증명 공증을 하려면 직접 중국에 가서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기에.
그 김에 교수님들도 만날 생각으로.
내가 학부생일 때 가르쳤던 교수님들 반 이상은 정년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같이 '졸업'하자고 하셨다.
입시 시작이 먼저인 한국 대학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학부는 중국에서 나왔으니까 석사는 한국에서 다녀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첫 학기는 학부 때 교수님이 추천하는 '훌륭한 교수님' 두 분의 수업과 내가 듣고 싶은 수업 하나를 신청했다.
(훌륭한 교수님은 어디에 계시다는 걸까? 추천해 주신 교수님은 직접 그분들의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으시니까 모르실 수도 있지...)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들어가서 첫 시간부터 '진짜 선생님'을 만났다.
강의자 본인이 내용을 완벽히 소화한 상태에서 일상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강의를 듣다 보면 해당 이론의 흐름 파악은 물론, 흥미가 생기기까지 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들이 쉽다고 착각될 만큼 물 흐르듯 진행되는 강의, 그리고 이와 상반된 매우 딱딱한 논문의 정석.
이분과 함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선생님은 나의 '지도교수님'이 되었다.
학부 시절, 우리 학교는 3학년과 4학년 때 논문을 써야 졸업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처음 써보는 논문에 걱정이 많았다.
한국과 중국의 논문 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중국은 얕고 넓다면, 한국은 깊고 좁은 연구 영역.
학기마다 기말과제로 소논문을 쓰며 혼자만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한 대학원 생활이 이게 맞나?'
'다른 사람들은 기초가 탄탄한 것 같고, 이론도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나만 아무것도 모르네?'
석사학위논문은 어깨에 부담감을 가득 짊어진 채로 최대한 창피하지 않은 논문을 쓰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면, "응? 논문?"이라고 자동 반문할 정도로 하루 종일 논문 생각만 하며 지냈다.
학위논문을 끝낸 사람이 대단해 보이고 부러웠다.
옆에서 누가 타자를 치고 있으면 그 소리도 부러웠다. '저 사람은 타이핑할 거리가 있구나. 좋겠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은 카톡을 하는 중이었지만, 그냥 타자 소리가 나는 것 자체가 부럽게 느껴졌다.)
석사과정 내내 학과 조교를, 틈틈이 연구 프로젝트 연구 보조 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내 논문에 쏟을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서 더 열심히 틈날 때마다 논문 구상을 하며 보냈다.
잘 때도 머리맡에 메모지와 펜을 두고 선잠을 자다가 깨면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끄적일 정도로.
그때는 그게 스트레스인지도 모르고 논문 걱정으로 꽉 찬 일상을 보냈었다.
그렇게 석사학위논문을 완성했다.
드디어 끝이다!라는 개운함보다는 왠지 모를 가라앉은 감정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 잘한 걸까?)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석사과정이 끝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칭찬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 교수님.
선배에게 "교수님이 너 잘했다고 칭찬하시더라."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교수님이 매우 쿨한 말투로 "너 논문 잘 썼어." 하시는 걸 듣고 나서야 석사논문을 쓰며 고생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박사과정 내내 조교를 하며 학비를 충당하고, 학회 간사 일을 하며 바쁘게 지냈다.
과정을 수료하는 동시에 바로 직장을 잡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제 박사논문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좀 더 자유로운 도비가 되기 위해!
이를 위해서는 석사학위논문을 쓸 때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도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에 해소 방법도 많이 만들어놔야 한다.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도, 일이 많고 지쳐서 힘들다는 것도 모두 다 핑계가 되어버리는 외로운 싸움을 또 해야 하니까)
그렇게 계속 일탈 목록이 추가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떤 부분이 일탈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부터 나만의 일탈 이야기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