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어느 날, 후배 한 명이 갑자기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했다.
학교 상담센터에서 대학원생도 무료로 전문 심리 상담 검사를 받아볼 수 있다고.
원래라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을 텐데, 왠지 한번 해보고 싶었다.
사전 질문지를 작성하고 (대부분 우울증에 관한 질문이었다) 받고 싶은 검사를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네 개(MMPI-2, TCI, 기질검사(CST), MBTI)를 신청했다.
대기자가 많은지 한참 뒤에 시간을 정해 센터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바로 검사를 진행하는 줄 알았는데 '사전 상담'이었다.
이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상담사가 내 앞에 앉았다.
왜 검사를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아름다운 사십 대를 맞이하고 싶어서요."
내 대답을 들은 상담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상담 일지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었다. (상담 내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며 계속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 사전 상담이 끝난 후, 센터에서 공유해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신청한 검사들을 진행했다.
또 한참 동안 기다려 결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지난번과 다른,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상담사가 들어왔다. (그 센터에서 가장 기가 세 보이는 상담사였다.)
내 앞에 앉으며 크게 한숨부터 내쉬는 그녀.
첫 마디가 "안 힘드셨어요?"
"네??" (다짜고짜 무슨 말이야?)
"그렇게 살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 하며 결과지를 보일 듯 말 듯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기질은 인내심이 강한데, 성격 발달이 매우 성숙하게 잘 되었다고.
그런데, 책임감과 인내심이 너무 과해서 자신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상담을 한참 이어가다가
"사실, 너무 궁금해서 얼른 만나보고 싶었어요."
"네? 저를요? 왜요?"
"아름다운 사십 대를 맞이하고 싶다고 하셨대서…. 아직 사십 대가 되려면 좀 남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 궁금해서요."
당시에는 그냥 "박사 수료하기 전에 검사해 보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냥 평범하게 한국 대입을 준비할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면 뭔가 새로운 시작이 될 것 같았고.
예상과 다르게 중국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스무 살이 되어도 극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삼십 대가 되면 달라질까?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며,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될까? 했지만 역시나 예상을 빗나갔다.
불혹이라고 불리는 마흔.
주변의 언니·오빠들을 보며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십 대, 이십 대에 했던 기대는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좀 더 소중하게, 가치 있게 보내면서 사십 대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려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결과 상담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상담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십 대는 어떤 거예요?"
"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한,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상담사가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더 단단해지면 안 돼요!! 그냥 좀 맘대로 사세요. 제발. 좀 덜 참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냥 웃고만 있으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며
"그냥 좀 막 사세요. 화도 좀 내보고, 불만도 얘기해 보면서. 제발 참지 말고! 당분간 정기적으로 상담 좀 받으시면 좋겠는데…."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왔다.
결과 상담이 아니라 기싸움을 한 것 같았다.
'너는 상담이 필요하다. 너는 힘들다.'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과 기싸움하고 나온 기분.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내 기질과 성격 발달 결과, 내 성격, MBTI 결과를 보니 내가 모르던 부분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나를 더 똑바로 마주 보고, 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서 내일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고, 더 멋진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똑바로 마주 보고 보완하며 더 나은 내가 되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이것저것 도전해 보기'는 오늘도 열심히 진행 중이다.
(*표지이미지: AI 생성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