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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Mar 17. 2022

블로그에 다녀왔습니다 ㅎ

지난 글이 블로그에서 왔다는 소식인데, 그새를 못 참고 블로그에 다녀왔습니다. 아래 본문에서 밝히겠지만, 결국 제 공간이니 마음껏 들락날락하려 합니다. 저는 왜 그리도 하나의 플랫폼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을까요. 결국에는 같은 생각이고, 같은 글인데요.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성실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자 다짐해봅니다. 아래 본문은 조금 많이 솔직하게 써봤습니다. 이 글을 쓸 때는 꼭 그러고 싶었습니다.



곧 돌아온다고 말할 걸 그랬나 봐요.


곧 돌아온다고 말할 걸 그랬나 봐요. 그만둔다고 말하고 다시 글을 쓰려니, 다소 민망합니다. 다만 생각해 볼 점은 그 누가 뭐래도 이곳은 나의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두었다가도 얼마든지 다시 올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민망함을 느끼는 이유는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 대단한 작가가 아니기에 수 천, 수만 분이 봐주시진 않습니다. 단 몇 분이지만, 대단하지도 않은 제 글을 봐주시기에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제 근황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게는 하나의 강박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제게 좋은 글이란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이자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강박입니다. 그 강박으로 인해 글을 쓰다가 멈춘 기억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게 하나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완성된 이야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제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제 삶이란 것이 그리 대단하지도, 빼어나지도 않습니다. 자랑할 것이라곤 하나 없고, 어쩌면 제 글은 혼자만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강박을 내려두고 솔직하고 바른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저는 최근에 무기력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작년 내내 무기력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원인이 생각납니다만, 시간 순으로 나열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2021년의 반년은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시기입니다. 일도 잘하고 싶었고, 학업도 잘 마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의 배려로 회사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수업이 두 개였던 날은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죠. 막 학기였기 때문에 수업을 4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수업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교수님들은 너무나 친절했고, 대화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수업을 통해 배움을 남기기보다는 시간을 때웠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쉬워져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8학기라는 시간이 주는 익숙함과 요령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학기를 마치고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자랑같이 들리겠지만, 제게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수업이 쉬웠고, 익숙해서 하던 대로 해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난 학기에서 항상 최고점을 받진 않았습니다. 이제야 방법을 알게 된 것이지요. 당시에는 기뻤습니다만, 졸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갑자기 찾아오더군요. 배움을 얻지 못한 채 학기를 보내고, 졸업을 앞둔 심정은 꽤나 불안했습니다. 특히나 학자금 대출은 더더욱이요.



다만 다행인 것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었기에, 불안을 잠재우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로 인해 얻게 되는 금전적 보상도 중요했지만 가치 창출 여부와 제 성장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일을 열심히 했지만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하고, 성장도 없었다면 시간을 낭비한 것처럼 느껴진달까요. 이 또한 하나의 강박으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기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습니다. 졸업을 하며 맞이한 불안과 무기력과 함께요.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남들과 다른 커리어입니다. 대학 동기나 선후배처럼 열심히 준비해서 합격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지내던 형의 제안으로 형이 만든 소셜벤처에 합류한 케이스입니다. 자소서에 열중하는 시간이나, 영어 공부 혹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채 사회로 나온 것입니다. '남들이 한 것을 안 했다는 것'과 '남들이 안 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큰 불안이었네요. 지금도 이 불안은 여전합니다. 이미 커리어가 꼬여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들보다 배우는 것의 크기나 깊이가 좁고 얕을 수 있다는 생각. 결국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제 무의식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의식과 불안을 모른 척하고 저는 포장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든 것이지요. 소셜벤처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저도 내심, 친구 선후배처럼 대기업에 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인정을 쫓아서요.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가치를 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간을 겪던 중 '대학원 입학 서류조차 쓰지 못한 일'이 제게 찾아옵니다. 학부를 다니며 가고 싶던 학교가 있었고, 올해 입시를 도전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 성적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당연하지요.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공부를 안 하고 성적이 나오기를 바라며 시험을 봤습니다. 그렇게나 혐오하던 요행을 바라던 짓을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장을 나오며 깨달았습니다. 올해는 그 학교에 못 간다는 사실을요. 강하게 무기력이 찾아온 순간이었습니다. 시험장에 있던 남들과 비교하며 저를 깎아내렸습니다. 더욱 창피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 학교에 가겠노라 말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가겠다고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학교 학생이 된 것 마냥 행동했습니다. 너무 가고 싶어서,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제가 그 정도 레벨로 보이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참 어리석죠. 학교를 가지 못한다는 무기력함도 일로 해소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바쁜 연말을 보냈습니다. 



나름 멋진 성과도 가져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도 100% 만족하진 못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달라질 것들이 마지막에서야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이리 일에 욕심이 없나. 하며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인 점은 올해 같은 프로젝트를 다시 맡게 되었고, 올해는 정말 잘하고 싶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성과금을 받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학자금 대출을 조금이라도 갚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과금으로 학자금 대출금을 일부 상환했습니다. 제 손으로 번 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면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아직도 남은 금액에 무기력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반전을 주고 싶던 것 같은데, 먹히질 않았습니다. 무기력을 이기려 일을 했고, 일을 통해 얻은 보상으로 해소해보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죠. 여러 가지로 무기력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시기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대학원에 가지 못한 것을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대학원 같은 정규 학교는 아니지만 사회 학교 중 정말 가고 싶은 곳의 모집 공고가 떴기 때문입니다. 정말 흥분되었습니다. 저의 삶에 반전이 이렇게 찾아오나 싶었습니다. 이 학교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 갈 거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제 보니 상습적으로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것 마냥 떠들고 살았네요. 꿈이나 목표에 대해 들떠 설명하는 것과 허풍은 다른 것인데, 어쩌면 저는 허풍이 심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깊게 반성해 봐야겠습니다. 또다시 아무튼, 회사에서 장기 휴가를 받았고, 이 휴가에서 사회 학교의 지원서를 작성할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혼자 제주도로 내려가 3박 4일을 보내고 왔습니다. 3박 4일 동안 감사하게 서류를 모두 써냈고, 잘 쉬다 왔습니다. 그런데, 제출 전 다시 읽어본 서류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절대 합격할 수 없는 자소서와 학업계획서 그리고 미래 계획서. 엉망진창인 서류를 바라보며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제출했습니다. 제게는 도전했다는 의미라도 필요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습니다. 제 이름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여러 번 합격자 명단을 보았습니다. 결과를 맞이하자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게 제주는 왜 갔느냐, 가서 귤을 왜 따고 놀았냐. 오겹살이 그리 맛있었냐. 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비난을 보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저는 어둠의 동굴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둠의 동굴은 꽤나 길었습니다. 근 2주간 스스로를 자책하고, 생각을 많이 하고,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무기력했고, 잠이 쏟아졌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무엇이라도 의미 있는 행동을 해야 살 것 같습니다. 무기력 속에서 갈증을 느낀 것입니다. 감사하게 교회학교 수련회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대략 7년 정도 교회학교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보낸 시간이 제게는 많은 배움의 시간이었고, 학교나 사회에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정 시즌이 오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제가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즐거워하니 맡겨주신 것이지요. 나름 열심히 그리고 새로운 것을 고안하며 수련회를 준비했습니다. 팀을 꾸리고, 회의를 주도하고, 프로그램 진행 계획을 세우고 디자인 결과물을 바탕으로 굿즈도 제작합니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고민하고, 선물을 나눠주는 방식도 고민합니다. 그렇게 동굴 속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던 것 같습니다.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수련회와 별개로, 제 나름 힘을 내어 동굴을 나가보려 노력했습니다. 오래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자 웹사이트를 만들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아직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만큼 성장도 더딥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럼에도 시작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앞으로 꾸준히 만들 생각입니다. 오랜 꿈이 있습니다. 문화 예술의 보편화인데요. 쉽게 말하면 누구나 문화 예술을 누리고, 향유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이고요. 이 가치를 실현시키는 작은 아이디어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변형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합니다. 평생 어둠에 동굴에서 살아갈 순 없으니까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감사하게 어둠의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동굴에서 나와서도 여러 일이 있었고, 생각할 지점도 많았는데요.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 버렸습니다. 내슈빌 치킨버거를 먹고 핫한 카페에 갔다가 걸려 버렸습니다. 동행한 일행도 함께 아픈 것을 보니 너무도 명확했죠. 코로나에 걸리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고,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낮잠을 자고 유튜브를 보고. 그렇게 해롱해롱 3일을 보내자 약간 힘이 도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방 정리를 하고, 오래 묵혀둔 것들을 꺼내어 버렸습니다. 나름 생각도 많이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갔습니다. 물론 소년심판을 다 보았고,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정말 많이 봤네요. 덕분에 읽고 싶던 책도 읽기 시작했고요. 비록 아파서 누워있었지만, 제게는 이런 시간도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더욱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몸을 더 챙기면서요.



이 글을 모두 읽으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될지 모르겠고, 어떤 감정이나 혹은 생각을 가지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 솔직하게 적어보았는데요. 지금 제 바람이 있다면 재밌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나,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 제 삶에 대한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신다면 그것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제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많아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반성도 많고, 자책도 많으니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 어떤 피드백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 피드백을 마음 깊이 담으며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사실 이 글은 무기력의 끝에서 적어내는 글입니다. 이제는 무기력하고 싶지 않고, 정말로 잘 살고 싶으니까요. 잘 살겠습니다. 후회할 일 만들지 않으며,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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