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는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어둡고 차가운 현실에 별처럼 빛나는 박신양의 사과를 바라보다.
성공한 연기자로서 틈틈이 취미 삼아 그린 배우 박신양의 그림이겠지'..라는 선입견은 놀라음과 감탄의 탄성으로 단번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아도 유명 배우로 자리 잡은 그가 미술대학원에 입학한 소식을 접하기는 했었지요. 그런데, '아마추어 학생 신분으로 유료 입장료를 받는 그림을 전시한다고?.. 그것도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평택의 변두리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50대 후반의 늙수그레 아저씨가 되어 가는 배우가 뭘 얼마나 많이 그렸길래?..'
세상일에 호기심 그리 많지 않지만, 전시회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고픈 궁금증과 왠지 가봐야 하는 책임감을 이기지 못해 하던 일손을 놓고 서울에서 남쪽 70km 떨어진 갤러리로 찾아갔지요.
그를 유달리 좋아한 특별한 이유가 있지요. 저처럼 안경을 착용하고 평상시엔 조금 어눌해 보이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일의 영역에서 만큼은 원하는 성과와 나만의 디테일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의 이미지가 나랑 닮은 면이 있다 믿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몰입하되 나의 시각으로 치밀하게 재해석하여 내 생각과 의견을 전략적으로 입혀 내가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특별한 오리지널리티 (Originality)를 추구하는 그의 연기 장면들을 대할 때마다 저로 하여금 동병상련(同病相憐) 형제애를 느끼도록 묘한 반전의 매력이 있지요. 그 사람 박신양 말입니다.
배우로서 실력과 정체성을 단단히 쌓은 사람이 통념적인 은퇴의 나이에 가까운 오십 대 후반에 프로 화가로 늦깎이 데뷔전을 치른다는 소식이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화가의 길로 건너는 동안 사정 많았을 그간의 통과의례에 '얼마나 많은 고난과 당혹스러움이 있었을까?' 상상을 하며 그가 10년 동안 그린 100여 점 그림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음미하는 여정으로 내 하루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지요.
이미 잘하고 있던 성공한 연기자의 품위를 접고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그 어떤 서사와 감정이 있었길래 전업 작가의 세계로 들어갈 결심을 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운동 경기로 비유하자면, 절치부심 섬세하고 날카로운 검술을 구사하여 아성을 쌓은 펜싱 경기 챔피언이 어느 날 갑자기 입던 유니폼과 챔피언의 타이틀을 모두 반납하고 마치 격투장의 프로페셔널 파이터로 전향한 모습을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어둡고 차가운 상자 속 같은 작업장, 미완성의 캔버스, 쓰다 만 물감들과 붓들과 소품, 그림 그리다 쓰러져 잠들었던 낡은 소파와 먼지 투성이 속에서 그려낸 100여 점의 작품들을 바라봅니다. 남은 생애에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남은 생의 현장에서 나의 십자성을 찾아 갈지 갈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업 현장입니다. 그는 작업현장을 바라보는 관람객과 자신의 작업 현장사이 가상의 공간을 제4의 벽이라고 합니다.
창작의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며 자신이 경험한 언어와 대사만으로 담을 수 없는 감정의 빛과 그림자들을 소환하여 지난 10년간 붓과 유화 물감으로 탐구하고 구성한 100여 점의 작품들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어둡고 차가운 상자 속 같은 작업장, 미완성의 캔버스, 쓰다 만 물감들과 붓들과 소품, 그림 그리다 쓰러져 잠들었던 낡은 소파와 먼지 투성이 속에서 그려낸 그의 그림이 거꾸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듯 합니다. 남은 생애에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남은 생의 현장에서 나의 십자성을 찾아 갈지 갈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업 현장입니다. 그는 작업현장을 바라보는 관람객과 자신의 작업 현장사이 가상의 공간을 제4의 벽이라고 합니다. 그림으로 제4의 공간을 채우려는 작가의 도전정신을 느낍니다.
그의 '자화상'을 만나니 대중 앞에 온화한 미소를 짓던 기존의 이미지와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무겁고 텅 빈듯한 실존의 낯선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성공한 연기자의 충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의외성에 문득 놀랍니다. 유명인의 페르소나(Persona)를 마치 남의 허물인양 벗어던지고 자신의 내면을 대변한 그림 속 자화상의 눈빛은 그의 작품 푸른 배경의 '당나귀'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지금 그에게는 고독하게 걸어가는 푸른 당나귀만이 소중한가 봅니다.
여러 작품들 중에 나는 깊고 푸른색 바탕의 '당나귀'를 일착으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버겁고 무거운 짐을 헐떡이며 지고 가야 하는 외로운 삶이지만 '그래도 진짜 나를 찾아갈 거야’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 과거의 나는 푸른 우주 배경 먼 추억 속으로 묻어 둔 채 내가 원하는 새로운 길로 건너가야 합니다. 정말 가고 싶은 길이라면 지긋이 눈 감고 가보라고 당나귀가 말을 걸어옵니다. 내 마음속에 숨은 또 다른 미래의 당나귀를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감정의 색깔들을 모아 당나귀의 모습으로 나타난 작가가 저로 하여금 버겁고 힘겨운 도전을 이겨내고 이 글을 완성해 내도록 축원의 부적을 보내 준 것 같습니다.
화가 박신양의 당나귀는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Ablerto Giacometti)의 조소 작품 <걷는 사람>을 의식의 흐름으로부터 불러 냅니다. 휘청거리고 나약하지만 결기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되어 마음속으로 파고듭니다. 오늘과 현실의 한계를 넘어 자신만의 특별한 무엇을 가진 인간은 가장 자신다운 길로 새롭게 건너가야 할 임무가 있음을 꺠닫습니다. 인생길 여정에 피할 수 없는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고독한 현실 속에서 뚝심과 열정으로 상상력을 그려 내는 붓과 물감을 풀어 넣어야 삭막한 도시의 언어들이 춤추는 사막을 아름답게 건너갈 수 있다고 말을 걸어옵니다.
전시장을 나서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생각합니다. 승승장구 꽤 잘 나가 보이는 혁신적 성장기업의 CEO 자리를 고집스레 의외로 박차고 나온 것이 현실적으로 잘 한 결단일까? 라며 걱정스러워하는 주변의 질문에 “그럼요 잘했고 말고요!” 명쾌한 답변으로 치고 나와 길을 걷고 글을 쓰는 예술과 창작의 세계로 건너온 것이 그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기쁜 당나귀로 변해가는 지금의 나를 스스로 축복합니다.
인류를 스마트 디지털의 세계로 안내한 기업 애플(Apple)이 제시한 문장을 생각하며 전시장을 빠져나와 미래의 서울로 향하는 차의 시동을 켜면서 한마디 중얼거립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는 미친 사람들이야 말로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