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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11. 2020

고양이는 '지금'을 산다

하다 이야기 

약 두 달 동안 고양이(이하 냥님)와 산 적이 있다. 원룸에 살고(냥님은 집사와 방 세 개 있는 아파트에 산다), 회사를 다녀서 처음엔 냥님 보호를 망설였다. 그런데 나 말고는 맡길 사람이 없어서 긴 시간 혼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후다닥 달려가 후다닥 모셔왔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혼자 집에 있는 냥님을 생각하면 불안과 걱정이 무한대로 커졌다. 요리조리 뛰어놀다가 뭐가 떨어져서 다치면 어쩌나… 무서운 상상만 됐다. 퇴근하면 집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대략 두 시간 동안 사과했다. 간식을 드리고, 밥그릇 물그릇을 깨끗이 닦아 새로운 밥과 물을 드리고, 락토프리 우유도 드리고, 털을 빗어드리고, 장난감으로 놀아드렸다. 냥님은 골골송을 부르며 즐겼다. ‘좁은 집에서 혼자 얼마나 심심하고, 답답했을까’ 싶으니 뭐든 더, 많이 해주고 싶었다. 



나이가 많은 냥님은(18살~19살 정도이다) 나와 지내는 그 짧은 기간에도 입원하고, 수술했다. 의사는 사람도 늙으면 여기저기 아픈 것처럼 고양이도 그렇다고 했지만, 마음이 쓰였다. 퇴원 후 골골송 부르며 잠든 냥님의 배를 쓰다듬다가 종종 울었다. 수술하느라 털을 다 밀어 살이 드러난 배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죽으면 좋을 텐데… 까지 생각하면 끄억끄억 소리와 눈물이 평평 쏟아졌다. 냥님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은 어떨까… 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그 무렵 한 기사를 봤다. 


인간의 두뇌 바깥에는 신피질이 있다. 그것이 이성적 사고를 하게 한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 개념도 만들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둘러싼 우울, 불안, 걱정, 후회는 어쩌면 신피질을 가진 인간이 겪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다. 과거, 현재, 미래 개념도 없다. ‘과거’가 없으니 과거의 무언가 때문에 하는 후회, ‘미래’가 없으니 미래의 막막함 때문에 생기는 불안, 걱정도 없다. 고양이에게는 ‘바로 지금’뿐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잠든 집사의 얼굴에 냥냥펀치를 해서 아침밥을 재촉하고, 약속도 없으면서 아주 아주 열심히 털을 단장하고, 기분이 좋으면 온 집안을 우다다다 하고, 볕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늘어지게 잠을 자고. 그 순간, 바로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몰입해서’ 할 뿐이다. 


집사가 일자리를 잃지 않고 계속 밥값을 벌어와야 할 텐데 아무리 봐도 곧 백수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렇게 그루밍하다가 털이 다 빠지면 어떡하나, 건너편 냥이는 투룸에 사는데 우리는 언제쯤 투룸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요즘 화장실을 통 못 가는데 큰 병 아닌가 등 불확실한 미래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일주일 전에 사료 몇 알 남긴 거 후회된다, 어제 날아온 비둘기한테 너무 뭐라고 했나 걔가 안 오니까 심심하네 등 지난 일을 ‘곱씹으며’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 냥님의 마음을 다 알 순 없지만, 과학적으론 그렇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은 후 내가 모시는 냥님의 ‘현재’를 행복하게 해 드리려 최선을 다했다. 지금 맛있는 거 많이 주고, 지금 털 많이 빗어주고, 지금 궁디팡팡 많이 해주고. 더불어 냥님처럼 ‘지금’에 충실했다. 냥님 털을 빗어드리는 지금에 충실하게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털을 빗고, 한 마리 사냥감이 된 것처럼 장난감을 팔랑팔랑 낭창낭창 기가 막히게 휘두르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 없도록 맛난 사료와 간식을 잔뜩 사드렸다. 그래서 지갑은 가난해졌지만, 매우 행복했다. 그럼 됐지, 뭐. 


우리가 하는 걱정 대부분이 일어나지 않은 일 또는 다 지나가서 이젠 어쩌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냥님처럼 지금을 살 필요가 있다. 흔한 말이고, 상투적이며, ‘아는데 그게 어디 쉽나’ 반감이 들게 한다. 그러나 걱정과 후회는 습관이며 관성이라니 ‘진짜’ 걱정과 후회인지, 습관적으로 하는 것인지 나에게 물어볼 필요는 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행복하지 않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이 ‘당신이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nadograe.com/stor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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