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요즘 의욕이 없고,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 한껏 들떠서 콧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아이돌 컴백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퇴근 후 기운 없는 몸을 일으켜 뭔가를 했는데 이젠 모든 게 무미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천천히 변화하는 그 ‘시기’를 못 견딘다. 딱 꼬집어 ‘이거’라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저거’라고도 정의할 수도 없는 그 ‘경계’를 못 견딘다. 환절기가 딱 그렇다. 아침과 저녁에 부는 바람엔 가을이 가득해서 ‘아, 가을이로구나, 가을 옷을 입자’ 하지만 아직 여름이 남은 점심 땐 ‘덥다 너무 덥다’ 짜증이 나는 환절기. 그래서 마음이 가을이었다가 여름이었다가 다시 가을이었다가 여름이 돼 혼란스럽다.
썸도 그렇다.
너와 내가 연인은 아니지만 마치 연인인 것처럼 서로를 대하고, 더 나아가면 연인이 될 확률도 있으나 그만큼 아무 사이도 아닐 확률도 높은 썸. 누군가를 만나고 있긴 한데 애인이라 할 순 없고, 그렇다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썸이 혼란스럽다.
누군가 ‘생은 이도 저도 아닌 시기를 견디는 것’이라 정의했고, 동의한다. 그런데 아, 정말 못 견디겠다.
확실한 게 좋다. 이거였다가 저게 되고, 저거였다가 다시 이게 되는 건 피곤하다. 확실하게 정해져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나에게 ‘이거니까 이걸로 인식하고 매진해’ 말하고 싶다. 오락가락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진이 다 빠진다.
또 누군가는 ‘둘 사이의 경계에서는 가능성도 많고, 설렘도 있으니 즐겨라’고 하지만, 둘 중 무엇이 될지 모르고, 둘 다 안 될 수도 있으며, 둘 다 안 됐을 경우 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 힘듦까지 걱정돼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환절기가 싫다. 썸도 싫다. 가을이면 가을, 여름이면 여름이었으면 한다. 너랑 내가 연인이든 아니든 빨리 결정이 났으면 좋겠다. ‘과정’이 없으면 ‘결과’도 없고, 그 과정이 주는 장점도 있지만, 성질 급하고, 기분이 자주 나부끼고, 주변 환경에 쉬이 과하게 영향을 받는 나는 ‘사이’가 숨 막힌다.
물론 이러다 가을이 될 것이다. 여름이 될 리 없다. 그러면 빨리 완벽하게 가을이 되던가! 가을 옷 입고 나왔다가 더워서 땀 주룩주룩 흘리고, 여름옷 입고 나왔다가 추워서 콧물 흘리고! 이게 뭐야!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제발 하나만.
가을 아니면 여름. 남남 아니면 우리.
중간은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