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Sep 21. 2020

생리, 월경, 정혈, 폐경, 완경, 자궁, 포궁

하다 이야기 

사람은 언어로 사고한다. 내가 아는 단어가 내 사고의 한계를 만든다. ‘빨갛다’만 알면 세상 모든 빨강을 ‘빨갛다’로만 인지하고, 표현한다. ‘빨갛다’, ‘붉다’, ‘새빨갛다’, ‘검붉다’, ‘벌겋다’, ‘발갛다’ 등을 알면 나의 세상엔 다양한 ‘빨강’이 펼쳐진다. 얘기하고 싶은 바를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생리대 회사에 다니는 지금은 생리, 월경, 정혈, 폐경, 완경, 자궁, 포궁을 곰곰 생각한다. 

‘생리’는 ‘생리현상’에서 따왔다고 한다(한쪽에선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설명한다). ‘생리현상’ 하면 자연스레 배설물을 떠올리게 된다. 배설물과 생리가 동급이 된다. 그런데 모두 알다시피 생리는 배설물과 다르다. 그래서 ‘월경(달 월, 지날 경)’으로 표현한다. 여성의 몸에서 약 한 달 주기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생리’, ‘월경’ 둘 다 ‘자궁내막의 탈락과 출혈’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최근엔 ‘정혈(깨끗할 정, 피 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정액은 ‘깨끗할 정, 진 액’이라 일컫지만 생리/월경은 에둘러 표현하니 ‘깨끗한 피’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 묻는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생리는 ‘부끄럽고, 숨겨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고, 여겨지고 있다. 생리/월경이라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생긴, 생리/월경을 뜻하는 단어가 ‘지구에’ 오천 개 넘게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러운 피 ‘취급’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지 말자고, 인식을 바꾸자고는 하지만 변화는 더디다. 낙인찍기는 쉽지만, 정화는 어려우니까. 앞서 쓴 것처럼 단어가 곧 내 사고를 형성한다. 어쩌면 생리라 말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생리를 ‘부끄럽고, 숨겨야 하며, 더러운 것’으로 인지할지도 모른다. 


폐경과 완경도 그렇다. 초경을 하면 ‘여성 됨’을 인정받는다. 날 때부터 여성이었는데 초경을 해야 만 비로소 여성이 되는 걸까. 그 맥락에서 보면, 폐경 후 생리를 하지 않는 여성은 여성이 아닌 게 된다. 게다가 폐차, 폐업, 폐가, 폐광, 폐비, 폐기 등과 같이 ‘쓸모를 잃은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월경을 완성했다’는 뜻의 ‘완경’이라 부르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자궁은 ‘아들 자, 집 궁’ 아들의 집이다(아이의 집이라고도 하지만, 아들을 가리키는 한자라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표현이라는 설명도 있다). 포궁은 ‘세포 포, 집 궁’ 세포의 집이다. 둘 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으며, 똑같이 ‘여성의 정관 일부가 발달하여 된 것으로 태아가 착상하여 자라는 기관’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엇을 ‘무엇’이라 부를지는 내가 선택한다. ‘무엇’으로 부르든 의미만 통하면 된다 여길 수 있다. 맞는 호칭, 틀린 표현도 없다. 다만, 다시 쓰지만, 우리는 언어로 사고한다. 사고가 먼저고, 그 사고를 전달하기 위해 언어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언어가 먼저고, 그 언어에 부합하는 사고가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전후관계는 모르겠다. 어쨌든 언어와 사고는 긴밀하다. 내가 어떤 말로 무엇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고는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삶도 변할 것이다. 너무 거창하다고? 입만 열면 타인에게 욕설을 내뱉거나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납득이 될지도. 


   nadograe.com/storiG


작가의 이전글 환절기와 썸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