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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13. 2022

6. 나방은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멀고도 가까운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다. 책은 읽힐 때에만 온전히 존재하며, 책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이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회의했고 무시당하거나 벌울 받을까 봐 , 무언가를 들킬까 봐 늘 두려웠다. 이해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확신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걸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많은 양의 글을 쓸어 담았다. 어린이용 이야기책을 읽고 , 나중엔 소설을, 하루에 한 권씩 일주일에 일곱 권을 읽었다. 게걸스럽게 책을 파고들고 , 말을 줄이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꾸러미를 집으로 날랐다.”<멀고도 가까운 본문>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이다. 책은 독자의 머릿속 그리고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에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처음 본다. 확 마음을 끄는 매혹적인 문장이다.  나는 가능성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책은 그 책이 가진 가능성 안에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마치 나의 뇌를 스캔하여 나를 낚아채려고 쓰인  문장 같다. 요즘 말을 줄이고 책 읽는 시간을 대폭 늘리고 있다. 외향적인 성향 같지만 집안에서 책만 읽으며 스스로 방 안에 유배된 상태를 나름 즐기고 있다. 나 역시 게걸스럽게 책을 읽고 도서관의 책을 집으로 나르며 나를 기쁘게 하거나,  할 책들은 기어이 소유하고야 만다. 책 세 권을 주문했다. <산책자>,  <정희진처럼 읽기> 이 책은 이미 빌려서 읽은 책인데 다시 읽으려고 주문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멀고도  가까운>. 아, 너무 행복해. 이런 순간을 만나면 며칠이 즐겁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멀고도 가까운 본문>          


작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끝내는 사라진다고. 이런 경험은 책을 읽으며 종종 하곤 했다. 마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책 속으로 들어가 아예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일 때도 나는 허물을 벗듯 조용히 몸을 빠져나와 책 속으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사라진다는 말이 또 심쿵이다. 나는 이 책을 뒷페이지를 보고 집어 들었다. 정여울 평론가와 정희진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라면 읽어도 좋다. 아니 읽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고 그러한 선택은 역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아, 옮기고 싶은 구절이 너무너무 많은데 내 책이 배달되면 그때 신나게 밑줄 긋기로 하자. 책꽂이가 좀 더 좁아지겠다.
 
  왠지 아쉽다. 몇  문장만 더 옮겨보자.          



“모든 것은 변한다. 심지어 썩어가는 것도 다른 생명으로 변신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무언가가 되어가면서 동시에 무언가가 사라지는 격렬한 과정의 일부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 죽음이며 또한 삶이다. 살아있는 것은 거의 모두 다른 생명의 죽음 덕분에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은 퇴화이면서 재생이다.”<멀고도 가까운 본문 >     


다시 책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만 이틀 만에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책의 문장을 따라 미로를 헤매다가 어제 늦은 밤 마지막 출구를 나왔다. 다시 문장 안으로 들어가 출구 없는 미궁을 헤매고 싶다.
 
 미로와 미궁의 차이. 미로는 입구와 출구가 하나로 볼 수 있고 미궁은 그야말로 안개에 둘러싸인 오리무중의 대혼란 상태다. 책 읽기는 엄밀히 말하면 유추와 상상의 과정이다. 그럼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뭘까? 말하자면 너무나 많지만 한 번에 하나씩 접근하자면 삶은 미로와 미궁 중에 미로라고 작가는 해석한듯하다. 우선 제목의 순서에 힌트가 있다. 살구, 거울, 얼음, 비행, 숨, 감다, 매듭, 풀다,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 눈치챘겠지만 제목이 데칼코마니처럼 둥그렇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점이 입구와 출구가 하나 거나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탄생과 소멸. 이 둘은 하나이면서 둘이다. 같은 출구이거나 입구다. 그 안에서의 다양한 삶의 변주들.
 
 이제까지의 나의 독서이력은 무시해도 좋겠다. 문장 안에 숨어 있는 많은 비유와 상징을 읽어내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만을 핥아먹었다. 달콤하지 않으면 이내 뱉어버리면서.
 
 부제목으로  넘어가 보자.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점점 나로부터 확장되어가고 있다. 읽기를 통해 어딘가로 사라졌던 나는 쓰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무특정 다수를 향해 소통을 시도한다. 아는 사람에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거는 것이다. 그것이 쓰기이며 읽기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고독에 관한 이야기다.
 
 고독의 무대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다. 어쩌면 극지방이 작가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도 작가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말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나는 내가 만든 문을 통해 아이슬란드로 갔다." 결국 내가 만든 이야기(=글)를  통해 독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기에 초대를 받아 아이슬란드에 갔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작가는 극지방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근본적인 고독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죽은 전 남편과 아이들을 먹는 극지박의 원주민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치매로 제 삶의 뒷 페이지를 잃어가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은 제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간다고. 제 아이를 먹은 여인은 별 죄책감 없이 말한다. 난 이미 죽어 영혼이 빠져나간 남편과 아이들을 먹고  다시 새 남편을 얻어 두 아이를 낳았으므로 내가 먹은 아이들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빚이 없다. 처음에는 끔찍한 이야기로 읽다가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이야기도 변하고 흘러가고 덧붙여지고 소멸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또 누군가는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돌려 말한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감탄만 나온다.
 
 마지막 연대에 대하여...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연대란  나와 네가 결국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 우리는 흔히 자아의. 확장이란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의미를 나는 이 책을 덮는 순간, 보다 명징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여전히 자아에 갇혀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고통을 느끼는 범위까지가 나의 한계다. 즉 자아의 한계다. 나병환자의 몸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타인이 되어볼 수 있는데  이는 상상력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감정이입을 통해 고통받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 때 자아의 한계는 나를 벗어나 확장되는 것이다.
 
 구구절절 책 내용이야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다니므로 굳이 나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읽었으므로 며칠간은 배부르게 지낼 수 있겠다. 인용 없이 오로지 나의  생각으로만 밀고 나가는 글. 나의 글쓰기는 즉흥적이다. 자료를 모으지도 않고 깊이 사유가 고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으며 문장을 위해 적절한 단어를 애써 찾지도 않는다. 하지만 순간을 잡아둔다는 그럴듯한 나름의 궁색한 변이라 이해해주시길.....
 
 책장을 덮자마자 다시 열게 되는 책. 여행 가방 안에 늘 가지고 다니며 한 페이지씩 읽고  싶은 책이다.  (1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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