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순 Jan 12. 2022

5.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싱글

혼자 산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가  '싱글'이라는 시고, 이 시의 지은이는 김바다 시인이며 김 바다 시인의 첫 시집이 <싱글>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의 첫 시를 접한 건 <싱글>이란 시집의 맨 앞장, 생각하는 사람이 청동 어깨를 빌려주었다로 시작하는 '유년'이라는 시였다. 아무도 몰래 세병관 흙바닥을 파보고 싶다던 대목에서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나의 우울한 유년의 뜰을 보았다. 누구나 말 못 할 사연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고 믿어왔던 불온한 생각의 뿌리가 여전히 자라고 있음을 들킨 듯 당황스럽기도 했다. 시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 건 시인의 어머니인, 구 선생님의 수필이다. 시인이 된 딸에게 보내는 짧은 글에는 시인의 젊은 날의 고뇌가 담겨있었다. 나는 '싱글'이란 시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혼자 산다 /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이상의 질문을 불허한다. 이혼을 했는지, 사귀던 남자랑 헤어졌는지, 멀리 가족을 두고 혼자 사는지, 처음부터 혼자였는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혼자인지 밀려서 그렇게 되었는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다' 말에는   개의 문장이 미로처럼 엉켜있다. 단순하지 않다. 시를 읽어가면서 함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하나  나타난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하나  밝혀진다.
  
  연으로 넘어가 보자. 멧돼지와 호랑이와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 물이 나와 너를 고의적으로 가르는  / 담장 너머 보이는 모든 나무들 허리와 팔이 비틀리고 꺾인  //
 멧돼지는 ,  금력을 호랑이는 권력을 그리고 여우는  둘을  이용할  아는 영악함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연의  째줄, 물이 너와 나를 고의적으로 가른다는 말로 물질만능시대의 보이지 않는 계급주의를 말하면서 보편적인 삶의 비정상적이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3연에 이르러 귀신을  삼아 떠돌게 된다. 담장 밖은 무시무시한 정글이기에 네가  하나 살자고 마련한 ,  육체 안에서 온갖 상상의 인물들,  귀신들과  삼게 되지 않았을까. 여기서 귀신들이란 책이어도 좋고 명상이어도 좋고 그야말로 고전 속의 사라진 주인공이어도 좋을 것이다.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대목은 이어지는 4 연이다.  초마다 사라지는 집이 /  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년동안 자살률 1위를 내놓지 않고 있는 나라다.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은 . 어제 살았다고 오늘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공기 중에서 비눗방울이 터지   초마다 사라지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나조차도 꿈인  생시인  어리둥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은 변함없이 어둡고 / 별들의 입은 재갈이 물려 있다.//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연이다. 사람들이 뻥뻥 사라지고  자마저도 방향 없이 떠도는  세상은 여전히 두터운 암흑이고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별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희망이고 등대지만  별조차 재갈이 물려있어 온통 깜깜한 어둠뿐이다. 까만 밤하늘엔  빛나는 별이 있어 아름다울 테지만   없는 별로 인해 세상은  이상 아름답지 않다. 이는 역설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조용히 생각해본다.
  
 다음 연으로 넘어가 보자. 비로소 시인은 침묵을 복습하기 시작한다.
 침묵을 복습하는 중이다/ 살고 싶다면 오래 버려져야 한다/ 가래침이 묻은  찌그러지고 구겨질 필요가 있다// 절망을 노래한 연이다. 드디어 시인은 침묵을 선택한다. 바른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별처럼 스스로 재갈을 물리는 침묵! 왜냐하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가래침이 묻는 굴욕도 모멸도 그리고 그저 구석에 조용히 찌그러져 자괴감마저 감당해야 한다.
  
 어머니, 찾지 마세요/ 더는 보여드릴 것이 없답니다/ 살랑대는 바람이 없어도/ 검게 칠한 캔버스가 꾸덕꾸덕  마르고 있어요/ 돌아오는 계절이 없어도/ 새들은 다른 하늘을 찾아 곧잘 떠나더군요//
 암담한 현실에서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린 시인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머니, 찾지 마세요 라는 말에는 힘든 산통으로 자신을 낳았을 어머니를 향한 죄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더는 보여드릴 것이 없다는 말에는 제게 희망이 없으니 기대를 거두어 주세요 하는 비장함이 서려있어 눈물겹다. 시인이 그렸을 젊은 날의 검게 칠한 캔버스는 시인에겐 회상하기조차 싫은 상처였으리라.  상처가 그대로 마르고 있으니 그래도 희망인가.  돌아오는 계절은 희망이다. 겨울이 지나면  피는 봄이 오듯! 하지만 우리에겐 영영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인은 암시한다. 그래서 새들은 다른 하늘을 찾아 곧잘 떠나간다. 가볍게!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고 싶으나 따날  없는 현실에 시인은 발이 묶인  창공을 나는 새를 바라본다. 시인에게 새들이 날아가는 곳은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이제 시는 막바지를 향해 곤두박질친다. 바닥에 묶인 것들이 꽃을 피운다. / 물컹하고 불룩하게 살이 차오른다/  풀에 뒤집어지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연이다. 떠나지 못한 자들이 세상에 남아 그래도 꽃을 피운다. 변화의 기운 이리라. 썩은듯한 살이 물컹하게 잡히며 거짓말처럼 살이 차오른다. 인고의 계절의 견디면 아무리 견고한 어둠도 제풀에 겨워 뒤집어지듯 바뀔 세상을 향해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이 시의 힘을 빌어 되살아난다.
  
 마지막 연이다. 혼자 죽는다./ 어쩌다 그렇게 된다// 마지막 연에서 울컥 눈물이 난다. 역시 죽게 되더라도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이미 죽는다. 그러니 묻지 말자. 대답은 한 가지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저마다의  백만 가지의 이유로 그렇게  것임으로....
  
 김바다 시인의 어머니께  약간의 빚이 있다.  빚을 갚는 마음으로 김바다 시인이  백날을 고뇌하여 세상에 내놓았을지도 모를 싱글이란 시의 감상을 적는다. 오랜만에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만나 참으로 행복하다. (161219)



매거진의 이전글 4. 나쁜 기억들의 무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