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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11. 2022

4. 나쁜 기억들의 무덤

도리스의 빨간 수첩

농협에 둘러 농약과 비료를 사고 앵두나무, 감나무, 비타민 나무 묘목들을 사 가지고 시골로 가려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집으로 유턴했다. 집에 돌아오니 3시쯤이었다. 2시 반이었나? 암튼 그쯤이었다.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들었다. 비 오는 날과 책은 찰떡궁합이다. 읽다만 책을 인내를 가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억지로라도 끝내게 되는 책. 나는 웬만하면 한 번 책장을 넘기면 끝까지 읽는다. 중간에 그만두면 화장실 갔다가 그냥 나온 것처럼 찝찝하다. 작가인데 글을 참 재미없게 썼다. 구체적이지 않다. 두리뭉실 애매하고 주장이 없다.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는데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래서 뭐?'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싱겁다. 세련된 문장도 사유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이 장하다 느끼면서도 이 무슨 미친 짓인지...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 읽었음에도 하물며 정독했음에도. 아, 시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오후 4시쯤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대출도서 반납 안내 문자다. 바빠서 아직 두 권이나 읽지 못했다. 한 권은 로알드 달의 작품이고 한 권은 소피아 룬드베리의 <도리스의 빨간수첩>이란 책이다. 그냥 반납하기 싫다. 화요일 반납이니까 그때까지 한 권은 읽고 다른 한 권은 대출 연기를 하기로 했다. 도리스의 책에 먼저 손이 갔다.


다행히 재미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살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더라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읽어내려갔다. 죽어가는 도리스가 증손녀 제니에게 기억을 선물하는 내용이다. 평생의 기억을. 도리스가 가진 것 중 가장 값진 기억 모두를.


도리스는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빨간 수첩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는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면 이름 위에 밑줄을 긋고 아래 '사망'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기억들을 적어놓았다. 일생동안 너무나 많은 이름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중에 일부는 평생에 걸쳐 잊지 못하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생각하면 가슴 찢어지는 이름으로 남기도 한다. 봄빛처럼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 이름이 있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이름도 있다. 기억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가리지 않고 내놓는다. 이 책은 그런 이름과 기록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도리스는 사진을 보다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이때 요양보호사 사라가 들어왔다. 사라는 사적 영역을 직선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세심하게 마음까지를 돌보는 사라는 자연스럽게 도리스에게 다가간다. 물론 사진 때문에 도리스가 울고 있었음을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묻지 않고 말하게 한다.

"당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진은 기억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사라가 도리스에게 제안했다. 사진을 둘로 나누어요. 당신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다주는 사진과 부정적인 생각을 일으키는 사진으로. 그리고 나쁜 생각을 불러오는 사진을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꽁꽁 봉해요. 사라의 제안을 도리스가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사진들은 상자에 담겨 테이프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칭칭 감긴다. 그리고 공처럼 단단해진 상자를 도리스에게 내밀며 말한다.

"자 이제 열어 보세요."


내게 좋은 책은 이런 책이다. 현란한 문장이 아니라 잔잔하게 보여주기. 그래서 굳어있던 마음을 산들바람처럼 흔들어 놓기. 머릿속에 산소를 주입해 주는. 이 장면을 읽은 것만으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총 432페이지.


11시가 넘었다. 9시경부터 읽기 시작했다. 오늘 150페이지까지만 읽고 내일 그리고 월요일까지 끝내야지 했는데 더 읽고 싶다. 벌써 자야 할 시간이 지났다. 안방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스킨, 로션을 바르고 잘 준비를 끝냈다.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구지는 잠들어 있었다. 한밤 중 다시 책상에 앉아 스탠드의 불을 켰다. 스탠드의 불빛이 고깔 모양으로 펼쳐진 책 위를 비추었다. 창 밖은 먹물 같은 어둠이 가득했다. 다시 읽다만 페이지로 눈길을 돌렸다. 이러다 밤을 새우기도 하겠다.


1시쯤 되어 책을 덮고 스탠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낮에 갑오징어를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구지와 나누었던 말이 생각났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어느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지금 이대로 살래 아니면 지금의 모든 관계를 잊어버리고 네가 원하는 시간으로 타임 슬립 할래’ 물으면 어떻게 할 거야?"

내 질문에 구지가 대답했다. 망설임도 없이 바로!

"가야지!"

이유를 물었다.

"지금 관계를 다 버려야 해. 그래도?"

그래도 구지의 대답은 "간다"였다.

이유는 더 살고 싶단다. 역시 구지다. 삶의 무한 긍정성은 따를 자가 없다.


처음엔 초등학교 1학년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스무 살로 가고 싶다고 했다. 스무 살은 나무와 하마도 이미 넘긴 나이다.

"난 고생을 너무 하고 자라서 가기 싫어."라고 했더니 구지가 이어서 대답했다.

"나도 고생 많이 하고 자랐어."

난 집이 가난해서 고생했지 구지는 무슨 일로 고생했냐고 물었더니 줄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일을 했어. 밭 일, 논 일, 그리고 김매기. 김매기는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했지. 호미로 뙤약볕에서 김을 맸다고. 그때 당신은 놀았을 거 아니야."

나는 대답했다.

"그때 잘 놀았지. 공기놀이, 사방치기, 고무줄놀이.... 그렇게 일했으면 언제 놀았어? 일만 했으면 어린 시절로 가고 싶지 않아야지."

내 말에 구지가 대답했다.

"겨울에 놀았지. 할 일이 없을 때."

그러면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던 생각을 바꿔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마음고생과 몸 고생 중 어떤 것이 더 힘들다고 할 수 있을까. 난 내 몫의 고생에 무게를 두었다. 다시 돌아갈 순 없다. 신적인 존재가 우리 앞에 나타날 리도 만무하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잘 살아야 해.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잖아."

내 말에 구지가 대답했다.

"그러네..."



나는 벽장 속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름들도 함께. 언젠가 나도 사진들을 둘로 나누어야지.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부르는 사진들은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칭칭 테이프가 끝이 날 때까지 감아야지 생각했다. 그것은 나쁜 기억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가장 잘 놀았던 나의 전성기는 중학교 2학년 5반 시절이었다. 최근 중학교 2학년 5반 친구들이 7명이나 모였다. 우리는 10프로가 넘는 인원이라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다들 이때가 전성기였다고 했다.


주미가 말했다.

"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학교에서 집까지 비 맞으면서 걸어가던 날 생각나? "

아!, 안 났다. 분명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는 데. 이어서 단톡에 사진 몇 장이 연이어 올라왔다. 정아가 소풍 가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주었다. 14살의 친구들이 하얀 카라가 달린 교복 속에서 꽃처럼 웃고 있었다. 친구의 이름을 맞추면서 여름 오후의 졸리던 수학 시간을 떠올렸다. 아 귀요미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냐 헤아릴 수가 없다.


사진은 기억이다. 흔적이고 추억이고 삶이고. 도리스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가장 값진 것이 내게도 기억이다. 내 기억들을 여기 모닝 페이지에 모아 담는다. 나중에 누군가 읽겠지.

'하루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잘 살아야겠다.' (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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