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젊'에 초점을 맞추는 최근 현상을 보며
요 며칠 이준석 관련 뉴스들을 보며, 젊’ 자도 중요하지만 ‘젊’ 자에만 초점을 맞추는 내용들에 어리둥절하다.
이준석 현상을 보며, 그의 ‘젊’에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시민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무엇인지, 이것을 해결할 ‘힘’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하는데, 많은 내용들이 이준석의 ‘젊’을 이야기하거나, 이준석에 대한 인상 비평을 하는 것으로 그치고 마는 것 같아 아쉽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당의 패배에 아픔을 느끼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젊’이 너무 도구적으로 이야기되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이준석을 너무 ‘젊’의 키워드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민주당도 여기에 너무 ‘젊’ 자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젊'이 아닌 '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걱정스럽다. 내가 말하는 '력'이 이준석이 말하는 능력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될까 봐 우려되면서도, 사실 이준석의 능력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된다는 말은 정직한 말은 아니다. 그냥 우리가 가진 '력', 변화를 만들어낼 '력'을 정확하게 진단해보고, 여기에 대해 고민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력'을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 일방적인 비판을 받을까 살짝 걱정이 되는 거다. 이힛
민주당의 시니어도, 주니어도 역할을 주고 맡는 것에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이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어떻게 힘을 모을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데, 다들 몇 년 생이 뭐를 맡을까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언론들도 그것만 카운트 한다. 혹시 이 이야기가 ‘젊’의 시간을 지난 사람의 꼰대 같은 이야기일까 내심 걱정이 된다.
민주당의 젊은 그룹들이 기회를 잡으면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그게 이준석 발 충격에 의한 것이든, 자체적으로 얻어낸 것이든, 그게 뭐가 중한가. 어떻게든 해내는 거지. 다만, 그게 내용이 아닌 몇 년 생이 뭘 맡았다 이거로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그래서인가 어제오늘 괜히 버니 샌더스와 긴즈버그 책이 손에 잡혔다. 샌더스 밈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긴즈버그 굿즈를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유가, 이들이 '젊'어 서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