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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DII May 03. 2020

다름이 만들어내는 같음

너와 나의 교집합을 넓히며,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스무 살 때 시작한 7년의 연애를 끝내고 너무나도 확실히 느낀 점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것. 나랑 여러 가지로 비슷한 사람이었다. 생김새가 꽤나 닮아있었고 오르내리는 감정의 기복이 비슷했다. 내가 화를 내는 시점에서는 여지없이 그쪽도 화를 냈고, 짜증의 순간도 비슷했다. 당장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뱉어내서 그게 언제나 싸움이 됐었다. 싸우고 난 후 불편한 상황을 둘 다 견디질 못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그렇게 싸웠다. 싸우지 않기 위해 서로를 각자에게 맞는 방향으로 고쳐보려고 했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말았다. 


비슷한 점이 많아 충돌이 잦았던 장기 연애를 끝내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고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만나야지. 나보다 어른스러웠으면 하니까 2살 차이가 적당하겠다. 키는 내가 작으니까 175cm 정도만 돼도 좋겠다. 다리가 길고 날씬해서 어떤 바지를 입혀도 예쁘면 좋겠다. 술을 자주 마시지 않고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와의 만남이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나 같지 않게 화가 없고, 감정이 잔잔하고 무던한 사람이면 좋겠다. 어쩌다 한쪽이 화를 내더라도 다른 한쪽은 그 무던함으로 일단 들어주는.




너와 나의 다름에 대해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나랑 딱 2살 차이가 나고, 키는 175cm이다. 다른 데는 몰라도 다리가 예뻐서 바지 사 입히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다. 내 취향인 흑발과 이마를 앞머리로 덮은 게 잘 어울린다. 비흡연자이고, 친구들 또는 회사 사람들과의 만남이 흔치 않아서 좋다. 술을 과하게 즐겨 마시지 않고, 본업을 잘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성격이 나랑 다르게 정말 무던하다. 


감성적인 나와 이성적인 남자 친구.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바로 해결을 하고 끝을 보면서 생각하는 나와 생각이 모두 정리되고 본인만의 결론이 나오면 해결하는 남자 친구. 모든 것에 너무 지나치게 공감을 해버리는 나와 본인의 필요에 의한 공감을 하는 남자 친구. 일요일 오후가 되면 벌써 주말이 다 갔다며 울적해하는 나와 아직 주말이 다 간 것은 아니니 남은 일요일의 시간을 즐겨보라는 남자 친구. 별게 다 짜증 나고 화나는 나와 웬만한 일에는 잘 화를 내지 않는 듯한 남자 친구. 돈이 생기면 써야 하고 물욕이 많은 나와 생긴 돈은 모아야 하며 물욕이 거의 없는 남자 친구. 군것질거리를 싫어하는 나와 사탕, 젤리 같은 주전부리를 너무 좋아하는 남자 친구.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계획을 딱히 생각하지 않는 나와 돈 계산, 기간 계산까지 해서 계획을 세우는 남자 친구. 일상 속에서 내가 무슨 일이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준을 주기도 한다.




우린 달라서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나중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모아둔 돈을 전부 다 결혼 예산으로 꽉꽉 채워 쓰고 싶은 나랑은 다르게, 남자 친구는 결혼 후까지도 생각하고 굳이 예산을 더 넉넉히 잡아서 모아둔 돈을 다 쓰지 않더라도 뭐든 적당히 할 수 있게 계획을 잡아준다. 다만 너무 저예산이 되어 없어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건 내 몫. 나는 취향이 칼같이 명확하지만 남자 친구는 뭐든 그냥 그냥 다 괜찮다 해서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싸울 일이 없다.


남자 친구가 갖고 있는 무던함을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배운 덕분에 예전 같았다면 이미 화를 빽 내버려 싸움이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을 덜 만들게 됐고, 맞지 않는 점을 발견하더라도 그래 너는 그렇지 하면서 합의점을 만들어내고 둘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결론을 낸다.


비 오는 날 파도의 일렁임이 요란한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나와 일부러 무언가를 던지지 않으면 항상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을 가진 남자 친구. 이런 차이가 있는 감정의 높낮이를 맞추다 보면 나의 마음이 호수까진 아니라도 맑을 때의 바다 정도는 되는 날들이 있다. 




너의 영역을 받아들이고나의 영역을 넓힌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다른 두 세계가 만나 교집합은 공감하고, 그 외에 것들은 공유를 하는 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교집합 밖에 없는 만남도 있겠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공유를 해줘야 할게 더 많았다. 


남자 친구가 먼저 제안하지 않았다면 해마다 가지 않았을 여름의 워터파크, 평생 모르고 지냈을 인천유나이티드, 잊을 만하면 한번씩 가게 되는 시장 투어.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3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교집합 크기가 많이 커져 있다는 걸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걸 좋아하는 남자 친구 덕분에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취미 생활과 경험들이 늘어난다.


앞으로도 나를 위해 너를 고쳐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을 알아가고 맞추면서 서로가 각자의 세계를 얼마나 더 넓힐지 기대되는 긍정적인 사이. 다름을 통해 같음으로 나아가는 우리지만, ‘둘의 행복’이 우리의 같은 교집합이라는 걸 안다. 너와 나의 주관적 다름이 만나 서로의 행복이란 교집합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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