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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웅큼 Nov 06. 2021

2 :: 김대명은 ‘오수’의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큼요일'마다 <움큼한 사생활> 발행할래요.

지난주에 첫 도로주행 실패담에 대해 억울함을 담아 한 편의 읍소를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도 그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정으로 세 번째 도로주행 실패담을 남겨볼까 한다. 어디 그럴듯한 곳에는 도저히 꺼내어 보일 수 없는 찌질한 나의 우울을 여기에 파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삽질에도 우울을 파묻기는커녕 새싹 한 자락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이 조그마한 구멍에 무엇을 파묻을 수 있을까. 그러니 도리어 나의 우울을 도려내거나 꺾어내는 수밖에. 이 조그마한 틈에 겨우 담을 수 있을 만큼 세심하고 정교한 마음질로.


<슬기로운 산촌생활> 캡처.


사수에는 제발 붙게 해주세요!


첫 도로주행의 실패는 그다지 아쉽지도 않았다. 오히려 억울했었지. 두 번째 도로주행은 조금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오르막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얄팍한 그 자리. 선생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시동 꺼지기 좋은 곳'이라며 이곳에 멈춰야 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셨던 그 자리. 보행자가 지나가는 바람에 멈출 수밖에 없었던 나는 결국 두 번이나 시동을 꺼뜨렸고, 이미 그곳에서 탈락을 직감했다. 그곳을 지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운전은 완벽했는데.


세 번째 도로주행은 시작부터 걱정이 많았다. 처음으로 연습주행 없이 곧바로 운전대를 잡았기 때문에 긴장감이 곤두섰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따라 길을 안내하는 목소리가 전혀 귀에 꽂히지 않았다. 그래서 우회전, 좌회전하는 깜빡이도 겨우 회전하기 직전에야 넣을 정도였다. 그러니 차선 변경 후에 깜빡이를 끄지 않고 달리는 멍청한 짓을 반복했겠지. 그 두 번의 실수가 그날의 결정적인 불합격의 원인이 될 줄이야. 검정원 아저씨의 깜빡이만 잘 껐어도 오늘은 합격이었겠다는 말에 불쑥 화가 솟아올랐다.


벌써 네 번째 도로주행이다. '4'라는 숫자 때문에라도 벌써 자신감이 뚝뚝 떨어진다. 결국에는 딸 수밖에 없는 면허라지만, '탈락', '실패', '불합격' 이런 단어와는 좀처럼 친해질 수가 없다. 게다가 면허는 나의 취준 생활과도 이어진다. 내가 원하는 직무에서 '1종 보통 면허'는 '필수 또는 우대 사항'이니까. 운전대를 붙잡는 순간 '합격'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집착은 부담감이 되어 긴장감을 자극시켰고, 긴장감은 다시 들쑥날쑥한 모양으로 이리저리 날뛰며 나를 괴롭혔다.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다음 주 화요일, 나는 또 '도로주행'이라는 현실에 쫓기듯 아침을 시작할 것이다. 어떤 결과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마음으로는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만,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 응원해줄 자신감 세포가 언젠가부터 가출 중이라 불안 세포의 말만 쌓이고 또 쌓이는 중이라서. 후, 이제는 도로주행에 갖다 바칠 돈도 없다! 자린고비 세포가 성을 내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니 부디 네 번째 도로주행에서는 실수 없이 최대한 만족스러운 운전 실력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가까운 과거의 내가 자신감 세포를 대신하여 너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


<슬기로운 산촌생활> 캡처.


백수를 견딜 자신이 벌써부터 없다.


사실 운전면허가 이만큼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이유는 결국 취준 생활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주 주말, '1종 보통 면허'를 '필수'로 요구하던 회사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다. 금요일까지 2차 면접과 관련된 일정을 합격자에 한해서만 개별 연락하겠다던 그 회사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필수로 요구하는 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한 지원자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그러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괴로웠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지원자이기를 바랐거든. 그럴 자신도 있었고.


이것으로 이제 겨우 두 회사에게 '거절당한' 인재가 되었다. 두 회사 모두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이 들고 시간이 걸리는 걸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작고 초라해진 마음에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추며 창문을 열어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나 기지개를 켤 때까지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아, 그러는 동안에도 어쩔 줄 몰라하는 조바심을 달래는 것 역시 나의 일이었다.


재수, 삼수는 나에게 트라우마와도 같은 일이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마지막 고등학생의 추억을 날려버리던 날 새벽, 등록금을 내지 않았으니 강제 재수라는 소식을 전하던 부모님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삼수의 길을 걸었다. 재수로 결정한 대학교에 부모님의 의지가 더해졌던 만큼, 나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수는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방황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던 어느 날, 그러니까 오수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쯤 나는 다시 입학을 결심했다. 꿈만 꾸기에는 깨어난 현실이 너무나도 지독했기에. 아니, 여전히 꿈만 꾸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애처로웠기에.


그러니 나는 늘 '늦었다'는 생각에 쫓기듯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태함에 취해 정신을 잃었던 날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날들은 죄책감으로 돌아와 안 그래도 제 속도를 잃은 조바심에 가속도만 더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인간실격>의 부정(전도연)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 두렵다. 무언가가 '너무나도 간절하게'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수십 수를 견뎌야겠지. 어쩌면 백수 이상의 시간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재수, 삼수에도 벌써 이렇게 지쳐버린 내가 그 시간들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지금은 견디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앞으로도 <움큼한 사생활>은 그럴 때마다 나의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한 주를 마무리하는 '큼요일'마다 온갖 우울과 피로, 반성과 자책, 때로는 추억과 애정을 적절히 섞어 만든 요리로 찾아오겠다. 물론 참지 못할 어느 날에는 조금 더 빠르게, 너무 바빠 정신없는 날에는 조금 느리게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움큼한 (나의) 사생활'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으로 지금을 버틸 힘을 얻어보려 한다. 뚝심 있게 무언가를 하다 보면 이루는 날이 오더라고. 오수하는 내내 비둘기 마임을 했다는 김대명처럼. (이것으로 얻고자 하는 진짜 목적은 언젠가 밝혀 보기로 한다.)


<슬기로운 산촌생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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