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에게 바라는 점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여겨지는 건 무엇인가. 그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이다. 자고로 일이란 계속 흐지부지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 일을 해내려는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완료란 가까워질 수 없이 아득히 멀기만 할 뿐이다. 내가 속한 이 개발이라는 분야, 넓게 봐서 엔지니어링이라는 분야는 전문 분야이니만큼 실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나.
나는 실력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하여 그 실력이라는 것, 항상 갈고닦아야 한다고 여기는 한편, 그것만으로 모든 일을 다 해낼 순 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양가적인 믿음 속에 있다. 그리고, 긴 시간 근무하는 대학원도 사회생활의 한 형태라 했을 때, 지금까지 대략 햇수로 10년가량 사회를 겪어본 바론 아직까진 그런 믿음이 대체로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오는 3월이면 지금 회사에 정착한지 만으로 5년이 되는데 그 말은 즉 여기서의 생활이 이 생각을 공고히 다지는데 가장 주효했다는 뜻이 되겠다. 우리 회사도 여느 최-신 기업들처럼 멀쩡한 직위 체계를 구태여 갖다 버리긴 했지만, 현재 내가 속한 조직 규모나 형태, 내게 주어진 역할을 따져봤을 때 얼추 나 정도면 대리 정도의 위치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대체로 대리쯤 하면 그 아래 부하 직원도 몇 쯤 있기 마련이니, 나도 근 1년 반 사이에 갑작스레 몇 명의 사회 초년생의 동료들을 맞이했다.
일하는 3년 넘어까진 내가 말단인 채로 일손을 나눌 사람이 항상 부족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일꾼들에 신이 나던 한 편,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들이 해낸 결과들과 조직에 적응한 정도가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저 내가 아쉽게 여기는 정도에서 그치면 그러려니 하겠다만, 상사와의 대화에서 읽히는 그들에 대한 불만은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적절히 조언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점들이 생각나게 한다. 특히나 요즘이 아무래도 작년도 성과 평가의 시기이기도 한 탓에 그럴 것이다.
나도 일하느라 바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가 있긴 하지만, 만약 지금보다 앞선 언젠가에 시간이 있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떤 얘길 해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질책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참고 자료 공유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을 되게 만드려는 태도를 가지라는 한 마디 주문과 그들이 어떤 점에서 그렇지 못했는지에 대한 지적이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리고 그들에게 전달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답을 읊조려본다.
열심히 임하지 않는가 하면 그리 시간을 절절히 써가며 책상머리에 붙어 앉을 이유가 없었다.
실력이 부족한가 하면 신입의 실력 부족은 당연한 것이라 문제가 아니라고도 본다.
내가 보기에 그들이 부족했던 건 문제 주변에 대한 관심과 깊게 파고들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발휘될 방향을 결정하는 노련함이 아닐까 싶다.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니 해결해 보라고 하였을 때, 똑같은 상황에서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만 만들면 그것은 문제를 덮어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들에게 요구하는 건 문제를 완벽히 재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분석하는 것에 가깝다. 오히려 문제의 해결은 그 과정에서 뒤따르는 덤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마치 이미 푼 문제를 다른 공식으로 다시 풀어보는 것에 가깝다.
대체로 그런 시간을 들이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이미 푼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려 하면 집중력이 흐려진다. 뇌가 본능적으로 반복을 피하고자 하는 듯 대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버텨내며 이미 읽었던 지문 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끄집어내고 다른 공식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 상황 속 문제에서의 지문이란 그 문제 주변의 모든 것이다. 문제는 어느 맥락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법이 없다. 특히나 논리적 연결체에 불과한 프로그램에서는 더더욱. 상황이 얼기설기 꼬여있을 수도, 천 번 중 한 번 정도로 가끔씩만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왜 발생하는지 직접적인 발생원부터 주변적인 정보까지 다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삼켜야 한다. 모든 걸 하루 이틀에 다 파악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하면 누적될 경험도 없다.
만일 매번 문제를 덮었다가 다시 터지는 문제를 덮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게 아니라, 한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착실히 경험을 쌓고, 지난한 시간들을 이겨내 왔다면 어땠을까.
성공의 역사를 써 내려간 사람의 주장엔 은은한 신뢰가 감돌고, 그는 해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뒤따른다. 지지를 등에 업은 사람의 기세등등함은 다시금 일을 더 잘 해내려는 원동력으로 쓰일 것이다. 주변의 동료들은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면 잘 해내리라 예상할 것이다.
그러한 인정의 시작은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위한 수십, 수백 갈레의 길을 분석하는 작은 한 걸음에서 출발한다.
내가 생각하는 일을 되게 만드는 태도란 그런 것이다.
나도 일이 되게 만드는 동료와 일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