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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윤 Dec 04. 2016

대학원일지 1. 실습 조교

지난 2주간의 실습에 대한 감상

 대학원에 다니면 당연하게도 대학 수업의 조교를 맡는다. 난 지난 학기도 그렇고, 이번 학기도 실험 과목의 조교를 맡고 있다. 문제는 실험 과목의 조교란 게 매주 학부생 친구들이 실습하는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다가 설명하고 끝낼 때까지 질문받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그게 어지간히 피곤한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기도 실험 과목을 자진해서 맡았는데, 이번 실험 과목은 조교 네 명이 각자 맡은 파트만 들어가서 실험을 주관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서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진 아무 걱정 없이 내 할 일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가 맡기로 한 파트는 학기 기말 시험 전의 3주를 맡아서 하도록 스케쥴이 조정돼서 이번 학기 내내 열심히 꿀을 빨고 있었다. 그리고 2주 전, 드디어 나도 퍼먹고 있던 꿀통을 빼앗기며 평일 중 하루를 제외하고 모든 요일에 실험 진행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학기에 맡았던 실험 과목은 주 대상이 3학기인 학부생들로, 대부분이 코딩이란 걸 해본지도 얼마 안 된 초짜들이라 그 친구들이 코딩하는 면에선 내가 큰 기대도 없었고, 실험 목표로 요구되는 내용을 시키고 집에 보내기에도 벅찬 면이 없잖아 있었다. 실험 자체도 매번 다른 주제를 자잘하게 해보는 정도라 크게 재밌는 것도 없었고.


 그에 반해 이번 과목은 6학기 학부생들을 주 대상으로 했는데, 이 친구들은 애플이나 구글로 촉발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위주의 소프트웨어 지각 재편성을 경험한 이후에 과를 선택하고 들어온 학번들인 것은 당연하고, 이쯤 학교도 다녀서 어느 정도는 코딩에 대한 감도 좀 있을 테니 좀 더 쉽겠다 싶은 생각이 있었다. 특히 내가 맡은 실험 부분은 최적화에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이와 같은 부분을 전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제대로 이해시켜주고 싶은 생각도 좀 많았고.


 실습실에 처음 들어가서 이것저것 설명하고 진행 과정을 검사하면서 느낀 생각은 쉽긴커녕 코딩을 집중해서 하는 비율은 3학기생과 비교해 큰 차이도 없고, 여전히 적당히 넘어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제 스스로는 안 하고 적당히 옆의 친구가 하는 걸 베껴서 하거나, 앞 반에서 실험한 결과를 받아다가 대충 옮겨놓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그런 친구들 말이다.


 사실 이 실험 과목이 예전부터 실험도 적당히 쉽게 쉽게 넘어가기로 유명한 과목이었던 데다가, 시험도 없이 보고서만 잘 내면 학점을 잘 주는 과목으로 유명했던 덕분에 어쩔 수가 없긴 하다. 내가 학부생이던 때에도 이 과목이 학점을 잘 준다는 소문에 수강하기도 했으니까. 근데 난 시험 보는 게 싫었던 것뿐이지 코딩하는 게 싫었던 건 아니거든. (심지어 내가 수강했던 해부턴 시험도 부활해서 의미도 없었지.) 그러니 이런 친구들을 앞에 두고 뭔가를 설명하고 있노라면 꺼림칙한 기분이 들곤 한다.


 학부생 시절의 나는 이런 실험 과목의 조교가 나보다 더 잘났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든 내용은 내 스스로 주어진 자료나 보면서 이해하는 편이었다. 정말 능력 좋은 사람은 취직하러 나갔을 텐데 대학원은 가서 뭐하냐고 내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정작 본인은 대학원생이라고 합니다.) 분명 내 앞에 앉은 이 친구들 중에도 과거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가 있으리란 생각도 들고, 또 내 스스로가 무능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욕심도 있어서 한 치의 틈도 용납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이 엄청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하는 무능한 조교보단 차라리 그게 낫지 싶으면서도 실습을 마쳤다고 검사받으려는 친구들이 내 질문에 귀찮은 듯한 표정을 하면서 대충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면 나도 살짝 기가 죽는 기분이고 실제로 더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죽곤 한다. 이렇게 싫어하는 티가 확 나는 사람을 붙잡고 왜 꼬박꼬박 질문하고 있는지 자괴감 들고 괴롭달까.


[대체적으로 일부를 제외하면 이런 태도다. 뭐, 그러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그러니 더 안타깝지 조교가 나라서.]


 실제로 연구실 동기 형을 비롯해서 주변으로부터는 애들은 관심도 없는데 뭣하러 그 고생을 하냐고들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이렇게 더 고생한다고 해서 나한테 애초에 주어진 조교장학금 외에 더 떨어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렇게 하라고 메뉴얼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친구들도 왜 조교가 거지 같아서 늦게 끝나는지, 왜 자길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싶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흥미도 없어 보이고 한숨만 푹푹 쉬는 친구들에게도 굳이 이 질문 저 질문 해대가며 그 옆의 친구에게 줏어듣고 외운 답변이라도 듣곤 하는데, 그렇게라도 해서 이 친구들 머리에 언젠가 이런 지식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아, 그때 실습 더럽게 늦게 끝내주던 조교가 뭐라고 했었는데.' 하고 생각만 난다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굳이 이렇게 집요하게까지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겠지.


 너무 멀리 내다본 생각인 것 같긴 하지만, 사회에 나갈 이 친구들의 실력이 엉망이면 이 분야에서 내 모교에 대해 쌓일 이미지가 엉망이 될 테고, 그럼 결국 나에게나 이 다음 세대에 정말 제대로 실력을 쌓아 올리고자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해가 될 것이다. 사람이 공을 세우든 과오를 저지르든 사람보다 그의 배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게 과오가 될 때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편견은 발 없는 말을 타고 빠르게 퍼져갈 것 또한 자명해 보인다.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 그런 세태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그것은 또 그 나름의 힘든 일일 테니 차라리 그를 넘어서 더 인정받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를 위해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렵다고 자꾸 피하는 것들을 마주하도록 만드는 것일 테다. '자, 봐라. 해보니 막상 어려운 건 아니지 않았냐.' 하면서 말이다.


 뭐, 생각이야 그렇다만, 위에서도 언급했 듯 이런 와중에도 싫은 티가 나는 친구들 앞에서는 정말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 방법이 효과적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 그냥 양쪽이 다 힘든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열심히 하는 멍청이가 가장 어려운 상대라는데 그게 사실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 남은 건 한 번의 실험이니, 나도 밥 먹기 싫다는 애들한테 억지로 주걱으로 퍼다 나르는 것 말고 실험적으로 나서볼까 싶다. 알아서 떠먹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챙기지 못한 관점들이 있으면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도 같이 생각해서 말이다.


 생각해보다가 가서 해보고 잘 되거든 그땐 또 그 나름의 후기를 올려보기로 하고 이쯤에서 지금까지의 감상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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