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소동
편의점은 주로 야간에 많은 역사가 발생해. 근거는... 통계? 적어도 내가 가게를 볼 땐 그랬었지. 그런데 그날은 아주아주 편안한 날이었던 것 같아.
모든 날의 수면 패턴을 동일하게 가져가면, 야간에 일을 하고 낮 시간에 잠을 자는 게 익숙해져. 하지만 그땐 5일 야간에 주말 이틀은 쉬는 데다가 교회도 가야 하고 야간에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 약속을 다 밀어 넣어서 늘 피곤한 상태였던 기억이 나. 그런데 그날은 모든 것이 괜찮은 날이었어.
오랜만에 낮에 숙면을 해서 그런지 몸도 개운한 상태였고 무릎까지 내려왔던 다크서클이 볼까지는 올라갔던 그런 날. 손님들도 왠지 모르게 다른 날보다 더 친절하고 얼굴 붉힐 일이 하나도 없는 그런 날. 편안한 마음에 웃음을 짓다 보니 손님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이었어. 그래, 마치 폭풍전야처럼!
손님이 가장 적게 오는 시간 새벽 3시. 매장 청소를 끝내고 재고 정리도 끝내고 휴식을 가져가는 시간. 수면 시간이 부족할 땐 졸기도 하고, 컨디션이 괜찮을 땐 글을 쓰거나 책도 읽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고 느껴지는 날엔 게임도 하는 근무 중 가장 편안한 시간.
왜, 가게를 오래 보다 보면 직업병이랄까? 특정 소리에 예민해져서 조그마한 소리만 들어도 손님이 오는 걸 알거든. 차 소리가 나고 문을 열고 닫는 소리라던가. 차 시동을 켜 놓고 키를 들고 차에서 내리면 들리는 삐- 하는 소리. 그리고 들어오는 바깥쪽 입구에 놓여 있는 철제 발판을 딛는 소리도. 가끔은 환청도 들을 만큼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 내는 다양한 소리들에 민감하거든. 그런데 그날, 새벽 3시는 가게 스피커도 꺼 놓는 아주 고요하고 적막한 상태라 가끔 울리는 냉장 쇼케이스 진열대가 내는 진동소리와 내 손에 들려있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지.
그렇기에 갑자기 열리는 문소리에 나는 무방비했고, 깜짝 놀란 나는 예비동작도 없이 벌떡 일어나
"어소세소...요... 흠흠, 어서 오세요."
바보 같은 인사를 건네었어.
우리 점포는 로드사이드 점포야. 큰 도로변에 있는 편의점이지. 중심지와의 거리는 차를 타고 10분 정도? 그래서 이 동네 주민이 아니라면 차를 타고 올 수밖에 없어. 다른 교통수단은, 당시에 전동 자전거나 킥보드는 대중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요즘에도 여전히 이곳은 시골이라 그런 신문물은 잘 보이지 않아. 게다가 이곳에서 중심지까지는 중간중간 식당이나 카페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차가 아주 빨리 달릴 수 있는 휑한 도로라서 오토바이도 위험할 수 있는 곳이야. 이런 우리 가게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내가 모르는 뉴 페이스가 차도 없이 왔다? 굉~장히 수상하고 궁금해지더라고.
손님은 2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여성분이셨는데 마치 소개팅을 하고 온 것만 같은 포멀 한 차림새였던 것으로 기억해. 손님은 한참이나 가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 더 수상해 보였지. 보통 새벽에 오시는 손님들은 목적이 뚜렷해. 많은 경우에 담배를 사시고 술도 많이 찾아. 그게 아니면 찾는 게 어디 있는지 바로 물어보시지. 또 출출해서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보통 배가 고파서 새벽에 편의점에 갈 정도면 이미 머릿속에 먹고 싶은 메뉴의 카테고리가 뚜렷하게 입력되어 있는 상태라 물건을 고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오래 걸린다 해도 빨간 떡볶이를 먹을까 로제 떡볶이를 먹을까를 고민하느라 한 곳에 머물러 있지.
그런데 이 손님은 온 가게를 돌아다녔어. 그러다 결국엔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채 카운터로 와서는 내게 말을 걸었어.
"안녕하세요."
"예? 아... 예. 안녕하세요"
"밤에 일 하시려면 힘드시겠다."
"아... 괜찮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뭐 대충 이런 시답잖은 대화를 했던 것 같아. 술을 먹지는 않은 것 같았어. 내가 단답으로 응대했기에 대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손님은 다시 가게 안을 배회하더니... 입구 쪽에 서서는 갑자기 우는 거야.
"괘, 괜찮으세요 손님?"
"으허헉... 흑흑흑..."
"무슨 일 있으세요?"
"엄마가...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해요... 흑흑흑."
갑자기 엄청 심각해졌어. 부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그걸 피해 도망친 손님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어. 가령 단화처럼 보이는 신발을 뒤꿈치가 접히게 접어 신었다거나 신발 위로 보이는 복숭아뼈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일단 먼저 손님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았어. 진정시키고 경찰을 부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카운터를 벗어나진 않았어.
"손님, 일단 뒤에 좌석이 있으니까 앉으시겠어요? 따듯한 것 좀 가져다 드릴게요."
"헤헤, 엄청 친절하시네요? 흑흑... 그런데 우리 엄마는... 흑흑."
울다가 웃다가. 뭔가 점점 섬뜩해지려는데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이렇게 말하고는 커터칼이 진열돼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가더니 쓰러지면서 진열대에 걸려 있는 커터칼을 잡고 넘어졌어. 포장돼 있는 커터칼의 고리 부분이 뜯겨 나가면서 진열대가 휘청 흔들렸고 몇몇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졌지. 와...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X됐다 싶은 거야. 그러다 진열대가 휘청이다 제 자리로 돌아가면서 낸 '쿵' 하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고, 진짜 평생 이렇게 빨리 행동한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민첩한 몸놀림으로 손님에게 다가가 칼을 든 손을 잡았어. 다행히 칼의 포장을 뜯은 직후에 바로 잡을 수 있었지.
"진정하세요, 손님!"
"놔!! 나 죽을 거야!! 놔!!!"
키가 나보다 작고 체구가 왜소한 편이시라 자해하는 것을 막을 순 있었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발버둥을 치고 손목을 움켜쥔 내 손을 다른 손으로 막 때리면서 그때부터 악을 쓰면서 울기 시작하는데 미치겠더라고. 머릿속에 든 생각은 신고. 어떻게든 신고를 먼저 해야겠다 싶었지. 다행히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었어.
나는 일단 손님의 손에서 커터칼을 빼내려 했어. 와 근데 저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아귀힘이 있는 건지, 억지로 폈다간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더라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체했을 때 지압하는 부위 있지?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사이에 있는 넓은 부분. 거길 꽉 누르니까 손을 스르르 풀더라고. 그래서 재빨리 손님 손을 잡은 손을 흔들어 칼을 떨어뜨리고 여전히 나를 때리는 손을 반대손으로 잡았어. 그리고 천천히 손을 교차시켜 한 손으로 두 손을 꽉 잡고, 한 손으로 신고했어.
"경찰이죠? 여기 어디 편의점인데요, 네... 네... 네 거기 맞습니다. 여기 자살시도, 어어어!! 하려는 젊은 성인 여성분을 제가 저지하고 있는데 빨리 좀 와주시겠어요!?"
경찰은 재차 주소를 묻고는 5분만 기다려 달라 말하고 끊었어. 신고하느라 한 손으로 손님 양손을 잡을 때 힘 풀려서 큰일 날 뻔했지 뭐야. 다행히 접수가 빨리 돼서 나는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다시 양손으로 손님분 손을 하나씩 잡을 수 있었어.
그러고 손님은 포기했는지 다시 말을 걸더라.
"젊은 사람이 참 다정하시네요."
"예?"
"아휴, 장가 잘 가시겠어."
"아... 예..."
불과 몇 초 전에 죽겠다고 악을 쓰던 사람이 호호 웃으면서 덕담을 하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기도 하고.
"이 가게 학생 꺼야?"
"어머니 거요."
"좋겠네~ 좋겠어. 나는... 나는... 흑흑... 나는 어떡해!!!"
그러다 갑자기 악을 쓰면서 울기도 하고. 조현병인 건가? 생각했지. 어쨌든 그 후로 경찰이 오기까지(정확히 5분 걸리더라) 이 이상한 대화를 했고, 마침내 경찰이 왔는데...
"아이고, 이 아가씨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대?"
"예...?"
"아, 이 아가씨 말도 마, 며칠 전부터 계속 밤바다 자살하겠다고 온 00(지명)을 다 돌아다녔어."
"아..."
그렇다더라. 경찰이 손님의 어머니 되는 사람과 통화를 하시는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정신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고 부모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지, 부모가 내다 버린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어쨌든 자신이 현장을 오진 않을 거고 데려다주든 병원에 보내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 같더라. 경찰은 한숨을 쉬더니 나보고 고생하셨다 하면서 포장이 뜯긴 칼이나 진열대가 휘청이면서 떨어져 널브러진 상품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시겠냐 물어보길래 괜찮다 그랬어.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됐고, 그 이후로 그 손님을 다시 보는 일은 없었어. 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조금 궁금하긴 했는데,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내가 사는 이 지역의 특성상 장사를 20년 넘게 해 오신 어머니가 모르는 것으로 보아 이곳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10년 가까이 지났는데 잘 지내시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셨으면 좋겠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