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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tonCottage May 26. 2016

Westie 몰리;식탐 비극 2

달달한 폭탄

다른 식구들도 모르고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K와 몰리는 마치 종이가 물에 젖는 것처럼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서로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우리들 중 그는 몰리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가졌고 그건 신기하면서도 고마운 것이었다. 녀석이 강아지에서 개가 되어가는 데도 K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고, 몰리도 늘 다정하고 나긋한 성격인 K의 곁을 좋아했다. 특히 먹을 것을 들고 있을 때는 더.

 

역시 비극은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다.

그날도 그랬다.

즐거웠고, 평온했고, 모두 둘러앉아 두런두런 제철 과일 복숭아를 먹고 있었을 뿐. 평화롭고 싱그러운 여름의 그때, 다섯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돌아가던 달달한 폭탄이 마침내 K의 손에서 '펑'하고 터졌다. 마치 게임에서처럼.

 

K-"헉, 어떻게!!"

" 왜??! "

K - " 몰리, 복숭아씨 삼켰어!"

 

 K는 복숭아의 씨 부분을 꼭 붙잡고는 몰리가 복숭아를 뜯어먹게 하고 있었는데 이 식탐왕 녀석이 순식간에, 힘껏, K의 손에서 씨까지 빼앗아 간 것이다. 재빨리 몰리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봤지만 복숭아씨는 이미 목구멍을 타고 녀석의 내부로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라도, 식구들 중 누구에 의해서라도 일어날 일,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모두는 몰리의 먹는 모습이 너무 예쁜 나머지 뭐든 먹을 것을 손에 들고 베어 먹게 하곤 했었기 때문에. 


나는 또 인터넷을 뒤졌다. 참 한심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몰리에 대한 무언가를 늘 인터넷에서 뒤져야 하다니... 같이 사는 사람들 중에 개와 가장 오래 살아본 사람인 나는 몰라도 정말 너무 몰랐다.

과일의 씨

복숭아, 자두, 사과 등의 여러 과일의 씨에는 독성이 있어 강아지가 먹었을 때 해로울 수 있다.
게다가 복숭아와 자두의 씨 경우에는 씨의 끝부분이 뾰족하기 때문에 강아지의 장기에 상처를 입히거나 목에 걸려 치명적일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절망적이었다. 다만, 기대할 수 있는 건 씨가 위액에 의해 녹아 없어질 수 있다는 것과 배변에 함께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인데 어린 강아지일 경우 아직 장기가 작기 때문에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럼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도 안 된다. 저 어린놈을. 나를 포함한 모두는 흙빛이 된 K의 얼굴을 보며 '별 탈 없을 거야 나오겠지...'라고 말해주며 제발 괜찮기를 바랬다.  그 후부터 안 그래도 걱정사람인 K의 머리 위로 어둑한 걱정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나는 괜찮을 거라 말하며 표정은 심각했다. 몰리를 유심히 관찰해야 했다. 녀석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잘 먹고 활발했다.  우리는 내일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내일 아침 배변 속에 섞여 나오길 기대하며.


다음날 오전 7시 즈음.  몰리는 헉헉, 컥컥하는 소리를 내며 방 한 구석을 불안한 듯 돌아다니더니 결국 무언가를 쏟아낸다. 나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일단 조용히 바닥을 닦았다. 맑고 노란 액체에서 기분 나쁜 역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녀석은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안쓰럽게도 방 밖으로 나가며 두 번째 노란 액체를 또 쏟아냈다. 덜컥했다. 액체 속에도 배변 속에도 복숭아씨가 없다.


병원(Vet)으로 가자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는 수의사는 늘 그렇듯 마른 장작처럼 무표정에 조용하고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V - "토를 했다고? 밥은 잘 먹니? 물은?"

다 잘 먹어. 그런데 어제 복숭아 씨를 먹었어.

V- "흠... 잘 놀고?"

잘 놀아

V-"뭘 먹이니? 평소에"

사료 그리고 과일 등등...


수의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V-"괜찮아 보여. 그런데 왜 개가 그런 것들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오늘부터 사료 외에 아무것도 주지 마."


Vet은 복숭아씨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K와 나만 안절부절 이었다. 뭔가 답답해서 속이 탔지만 전문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때부터 개사료만 먹였으나 노란 액체를 토하는 건 일주일간 계속됐다. 매일 아침 6-7시 무렵 한, 두 번 혹은 두, 세 번씩 몰리는 괴로워하며 액체를 쏟아냈다. 다행히도 녀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기도 잘 먹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배변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식구들은 점차 몰리가 복숭아씨를 삼켰다는 것을 잊어가는 듯했고 Vet의 말처럼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쪽을 더 믿는 듯 보였다.


일주일, 또 일주일이 지나고 

나와 K는 일주일째 토를 한 몰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다시 vet을 찾았다. 그 수의사는 여전히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같은 대답뿐이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면 토쯤은 별 문제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 우리만 복숭아씨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개가 Wet Food(캔 사료)를 먹으면 더 토를 하기 쉽다며  Wet Food는 주지 말고 Dry Food만 먹이라는 Vet의 처방에 그 말을 따랐고 그렇게 또 1주가 흘렀다. 그사이 녀석의 토를 하는 횟수와 양이 점점 늘어갔다. 급기야 아침에만 하던 토를 저녁에도 했다. 수의사가 시키는 데로 했음에도 몰리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갔다. 심지어 점차 사료를 거부했고 당당하고 활기찼던 녀석이 힘없고 축 늘어진 모습으로 변해갔다. 나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노란 액체를 닦아야 했고 몰리에게서는 그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병원을 찾아가면 또 똑같은 말을 할 것이고, 나는 어리석은 나머지 문제가 뭔지,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어디에도 답은 없었기에 답답하고 답답하고 답답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녀석이 토를 다 하길 기다렸다가 입 주변을 닦아주고 괴로워하는 아이를 붙든 채 위산으로 인해 이가 상하지 않도록 입안을 닦아준 후 그냥 바라봐 주는 것뿐이었다. 말이라도 하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그렇게 3주째에 접어들었다...

불쌍한 녀석...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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