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ANIEL BLAKE로부터, 런던 화재 그 안타까움.
코코넛과 상어.
무엇이 사람을 더 많이 죽게 할까?
비행기의 웅웅대는 소음과 무료함을 대신할, 별 기대 없이 마지막으로 골랐던 영국 영화, I, DANIEL BLAKE. 영화 속 다니엘 블레이크가 어린 소년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었던 영화는 저 코코넛이라는 한 단어로 긴 여운을 남겼다. 재미나 감동, 눈물도 없는 그냥 깨달음과도 같은 울림. 그 울림이 있기까지 보는 내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사회 시스템, 끊임없이 던진 돌멩이가 소리 없는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맥없는 상황들이 매우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면 속엔 그보다 더 속 불편하게 만들었던 카운슬 플랏(임대주택)이 있었다.
아마도 그 불편함은 런던에서 수년 동안 이곳저곳의 임대주택들에 살며 매일같이 맡아야 했던 찝찌름한 오줌 냄새의 기억으로부터 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종종 냄새로 더 또렷이 상황을 떠올리므로. 어느 카운슬 플랏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늘 괴롭히던 찌리한 오줌 냄새는 나에게 한때 런던을 상징하는 대단한 것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2008년쯤이었나, 느닷없는 건물 외관 공사를 해 내내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세입자인 우리들에게 결정권이나 선택권은 없었다. 고마워했어야 했나. 상대적으로 빠듯한 나를 위해 비교적 저렴한 거처할 곳을 선뜻 내어주고 시끄럽지만 외관 리모델링까지 해주다니 하며.
다니엘 블레이크는 고마워했어야 했나. 친절하게도 '이력서 잘 쓰기' 무료 강의를 듣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평생 목수로 열심히 살았지만 심장병으로 죽게 될지, 굶어서 죽게 될지, 어느 것이 먼저가 될지 모를 다니엘에게 그리고 이력서를 받아줄 일자리가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다니엘들에게 “Stand out from the crowd”라고 강의하는 장면에서는 드디어 실소가 터진다. 너무나 사실적인 암 유발 통화대기와 속 터지는 온라인 신청 장면에서도.
런던의 임대주택이란
수년을 사는 동안 어떠한 관리도, 기본적인 청소조차도 볼 수 없었던 낡고 오래되고 더럽고 못생긴 집. 보일러는 잘 돌아가는지, 온수가 잘 나오는지, 어디선가 물은 새지 않는지 등등의 걱정거리를 늘 품고 살아야 했던 집들. 누워있던 쿰쿰한 방 천장 여기저기에서 윗집 싱크대로부터 새는 물이 비처럼 쏟아지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에 맞추다 보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던 사각 박스. 스프링클러 같은 럭셔리한 장치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고, 소방 밧줄은커녕 소화기조차 없었다. 글쎄, 비상구는 있었겠지. 런던의 임대주택이란 그런 곳이다.
이제는 좀 변하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2017년의 그곳은 2007년보다는 나아졌겠지.
나는 수년 전 어찌어찌 벗어날 수 있었던 그곳. 지금은 달라졌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제, 그렇게 시커먼 불쏘시개로 변한 그곳은 여전했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버려진 것 마냥.
내화성 플랏들이므로 집안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소방처의 말과 싸구려 외벽 리모델링이라는 선심.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불법 증축한 수학여행 길의 배.
사람은 잊은 채 내민, 겉만 번드르르한 거대한 코코넛
케이티는 시간 약속을 못 지켜 생계를 잇기 위한 기회를 박탈당한다.
누군가는 돈을 주고 시간도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단 몇 분 때문에 먹고사는 것조차 가능하지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거대한 코코넛을 바라보다 죽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복지정책, 외국인 노동자, 피난민, 이민자 때문에' 라는 가짜 코코넛을 건네받고 아주 쉽게 다니엘과 케이티를 조롱하며 비난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묻는다.
What kills more people, coconuts or sharks?
영화 말미에서 어린 소년은 대답한다.
Coconuts.
시커멓게 타버린 사각기둥.
누구를 위한 코코넛이었을까.
우린 또 어떤 코코넛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