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 같이 사는 이 분(?)을 만난 이래 난 분노를 온몸으로표현하는 기술을 터득했고, 그로 인해 나란인간의 쩍쩍 갈라진 밑바닥이 다 드러난 줄 알았었다. 그런데 웬걸, 육아를 하며 그 바닥은 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파고 파고 더 파고 내려간저 지하세계에서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나와맞닥뜨렸다.그건참으로 어둡고놀라울 정도로 못난 존재와의 조우였다.
그로부터매일같이 이런 못난 면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옹졸하고, 치사하고, 비겁하고, 재수 없고, 거짓말쟁이고, 이기적이고 모순투성이에, -특히 잘난 내가 가장 용납할 수 없는 최악-무지함과 멍청함까지. 물론 저런 것들은 어찌 보면 보통의 인간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평범한 단면 들일 것이고덮어두고 모른 척했으나 살면서이미 내가 충분히 풀풀 풍기고 다녔을 못남이었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나란 인간의 그 못난면면들이하필이면 수십 년의 나이 차이를 가진 고작 두세 살짜리 어린 약자에게로향한다는것이다. 내 앞에 선, 세상에 나밖에 없을 미완성의작은인간에게.기껏해야'안 잔다고,안 먹는다고, 큰소리로 떠든다고, 코를 안 푼다고,손을 안 씻는다고,오줌을 참는다고'그런 등등의 사소한 일들로 난 아주 아주 옹졸에 꼴값을 떨며 쉽게 화를 내고 레고를 안 사준다 협박을 일삼거나 그래서 되겠냐며 비아냥거리고 여우가 신발을 물어간다는 둥, 아무 말들을 만들어내 겁을 주곤 한다. 고작 40여 개월짜리를 상대로, 사십몇살의 내가.
한 번은 멍청하게도 야경증인 줄도 모르고 감히 엄마를때린다며 뇌는 컴컴하게 자고 있는상태에서 눈만 뜬 채 두려웠었을 아이를 똑같이 되갚아때린 적도 있으니, 최악이다.
그 후로 난 매일 날마다 순간순간 문득 불현듯 그 밤의 내 행위를 떠올리고 후회를 곱씹는다. 그리고 곧이어 후회에서 밀려온 날카로운 자책감이 가슴팍을 마구마구할퀸다. 설거지를 하다가이를 닦다가빨래를 널다가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아무 때고 할퀴어진다. 그 밤엔,구지 말하자면(자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필 안경 코받침을 강타당해 깜깜한 방에서 별들이 보일 정도로 아팠고 그 충격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꿀밤을 몇 대 준거라고 계속해서 내 폭력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안된다. 자다가 잠꼬대를 한 것이나 다름없던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난 용서가 안돼.
나의 육아는 때론 아니 종종, 자주, 매일매일 또 매일 이렇게 최악이다. 완벽하고 싶었지만 실패이다.오늘도 자기 전에 코를 풀지 않겠다고 베개를 방구석으로 끌고 가 얼굴을 파묻고는 계속 훌쩍이며 고집을 피우는 아이와 한참 실랑이를 했다.
"후릅 후릅"
"코딱지 씨 자기 전에 코 풀자. 안 풀면 불편해.잠 못 자. 기침할 거야 안 풀면.기침하면 또 토할 거고. 코 풀고 자자 어서! 이리 와.빨리 코 풀자 어? 이리오라고! 코.... 코.... 코.....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코 코코 코 코 코코!"
.
.
.
"내일 풀자~후룹"
"...?(순간 당황, 잘못 들은 줄)
무슨 코를 내일 풀어? 빨리 와!너 코 안 풀면 내일 초코쿠키 안 준다!(코와 초코쿠키는 몬 상관? 코, 초코?)"
쟤 귀에 내 말이 들리긴 하는 건지 아들램은 후룩후룩 코를 먹다 참 잘도 잠이 들었다. 결국 코는 내일 풀 것이고 초코쿠키도 내일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밤 나는 초코쿠키로 하잖게 협박하며 딜을 하려다 실패한 것을 또 후회한다.
'내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어제도 그제도 했던 똑같은 생각을 하며 하루가 끝났다.
그래, 그래도 오늘은 반성문을 채웠다네.
자자.
사족,
인생은 돌고 도는 메리 고 라운드라 언제고 저 아이가 성장해서 더 늙디 늙은 나에게 저리 군다면, 내가 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