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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tonCottage Jun 25. 2022

소리 지름

내 사과를 받아줘.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다른 엄마들을 티비에서, 거리에서 보면 저렇게 밖에 못하나 왜 저러나 했었다.

지금은 내가 그 분야 1인자다. 내가 제일 잘나가, 내가 최고가 되었다.

하루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둘째가 생기고 첫째아이가 세돌을 지나면서 나의 육아생활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나의 육아는 전쟁 같은 욱!아가 되어버렸다.


내 소리 지름의 대상은 주로 나의 오래된 반려인인 제1의 오리지날 원. 조. 분노유발자이지만 둘째가 생긴 뒤로는 신입 분노유발자 1호와 2호, 게다가 이제는 뒷방 늙은이들이 되어버린 또 다른 나의 오랜 벗들이자 한때 상전이시던 두 마리의 반려견들이다. 한마디로 딸린 식구 모두가 나의 불쑥거리는 화로 인한 소리 지름의 대상들이다. 나의 친애하는 오리지날 분노 유발자는 그닥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기미가 보이면 알아서 자리를 피하는 겁쟁이 보더콜리와 두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미안한 일이다.


나에게 외동아들이 있었을 시절이 있었다. 그땐 그 아이가 아무리 저지레를 하며 온 집을 뒤집어엎어놔도, 목욕을 다하고 옷을 입은 채로 목욕한 물에 다시 들어가 놀고 있더라도, 님의 소중한 끼니를 두 반려견들에게 던져주시며 재밌어할 때도, 벽 전체에 낙서를 하고 돌아다녀도, 두루마리 화장지로 살풀이를 하고 있어도, 화 한번 낸 적이 없었다. 3년 동안 딱 두 번, 리얼 스틸로 만든 장난감 자동차를 내 면상에 정통으로 집어던졌을 때 그리고 불쌍한 겁쟁이 보더콜리를 발로 찼을 때 그렇게 딱 두 번 화를 내고 혼을 냈었는데. 그걸 난 또 그렇게 자책하고, 그 두 번의 사건으로 완전무결할 내 육아 라이프에 오점이 생겼다며, 상처받지 않고 클 수 있었을 아이에게 아픈 기억을 남겼다며 매우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했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리 됐을까? 단 두 개의 오점은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이제는 셀 수 조차 없는 오점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외동이가 오빠가 되고 나에게 아이가 둘이 된 지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난 마치 야누스처럼,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두 얼굴의 괴물이 되어 수시로 갑작스럽게 빽빽 소리를 질렀다가 이쁜 내 새끼들이라며 쪽쪽 대다가를 반복해왔다.


핑계를 대자면, 코로나로 인한 기나긴 가정보육 그리고 도와줄 이가 1도 없는 두 아이 독박 육아라는 거. 진짜 핑계다. 내 애들을 그럼 혼자 키우는 게 당연하지 뭘 또 독박 육아라는 단어까지 끌고 와 한심하게 합리화를 하는가. 그저 내가 이 정도 인간인 것을.


빽빽 소리를 지른 후엔 후회하며 생각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왜 또 그랬을까. 왜 화를 냈을까 어째서 마치 독이 든 사과 조각이라도 목구멍에 탁 걸린 것처럼 콰아악 하고 속에서 들끓는 화를 내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찜빵이가 왜 여기 들어와 있어?!! 카엘아 니가 그랬어? 철문 니가 열어놨어!?"

"..."

"물 다 엎었잖아! 동생 다 젖고! 왜 여기에 찜빵이 넣어놓은 거야?!!!"

"..."

"어휴 아침부터 진짜. 엄마 너무 힘들다고!!"

"원래 여기 들어와 있었어..."

"동생이 혼자 여기 어떻게 들어오니? 니가 문을 열었겠지!! 말이되?!!!"

"..."


이른 아침부터 텅텅 거리는 불길한 그릇 소리가 나더니 역시나 들어가지 못하게 철문으로 막아놓는 반려견들의 구역 깊은 곳에 들어가 그들의 물그릇과 밥그릇을 엎고 들고 놀고 있는 11개월의 둘째. 둘쨰는 사랑이지만 난 너무 힘이 든다. 혼자 철문을 열었을 리 없는 11개월 아기. 그래서 분명 철문을 열고 동생이 들어가게 놔둔 건 아들램 짓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물을 엎고 사고를 친 건 분명 둘째였는데.

둘째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며 생각이 났다. 철문과 컨졀베이토리의 문을 열어 놓은 건 바로 지난밤의 나였다는 걸.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램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사과를 해야 했다.


"엄마가 그럴 일이 아닌데 화내고 너무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잘못한 건데... 엄마가 사과할게. 받아줄래?"

"..."

"엄마 사과를 받아줘..."

"아니, 안 받아 줄 거야"

"어?(순간 당황) 왜? 엄마가 미안해서 사과하는 건데... 사과받아주라~"

"안돼. 난 오렌지가 좋아"

"...(엄마가 또 잘못했네)"


나란 엄마는 또 내 맘 편하자고 사과를 받아달라 했네?

니가 좋아하는 오렌지로 준비할 걸.

엄마가 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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