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혈통이란...
까딱 까딱 까딱 까딱 까딱 까딱 까딱
팔짱 낀채 손가락을 연신 까딱 거린다. 흠...
'어떻게? 뭘로 하냐고 -.'
J-흰둥이?
'에효...'
진짜 시답지 않은 대답이라 대꾸도 않고 무시함.
그 외에도 여러 단어들이 들려왔지만 여전히 시답잖고 마땅잖아 계속 무시한다.
'뭔가..흔하지 않고 촌스럽지 않으면서 영어로도 좋고 그런...'
역시 무언가의 이름이나 제목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큰 고민거리이다.
요 녀석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이름이 필요하다.
M - 멀린
'...!!'
'오!'
동생은 한창 영국의 티비 시리즈 멀린에 빠져있었다.
영국 전설의 마법사.
아더왕과의 브로맨스로 활약한 마법사 멀린~
M-'우리한테 마법 좀 쓰게'
아주 그럴듯 하다. 영국 전설의 마법사 이름을 요 영국 태생 개 이름으로 쓰다니!
'멀린~ 니 이름은 이제 멀린이야 멀린 알겠지? 자꾸자꾸 불러주자'
녀석도 금방 알아먹는 듯 하니 싫은 눈치가 아니다.
J는 상자 모서리에 녀석이 다칠까봐 상자 전체를 마스킹테이프로 칭칭 감는다. 배려있네.
비싼 집인지 안좋은 집인지 알 턱이 없는 녀석은 이 불쌍해 보이는 상자 집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 들인다.
-잠시 후 -
'야 몰리로 하자'
M - 그러던가
'정식 이름은 멀린이고 애칭이 몰리인거지'
동생은 서운해 할 줄 알았는데 늘상 그렇듯 그냥 시크할 뿐.
사실 '멀린'은 요 녀석에게 딱 맞는 특별한 이름이지만 부를때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Merlin에 함께 붙어있는 -rl-이 문제다.
영국인이 아닌 나에게 자신없는 발음이기 때문.
미국식으로 r을 한껏 굴리는 것도 어색하고 영국식으로 -머어어어ㄹ 린-은 더더욱 자신이 없다.
Vet - 이름이 뭐니?
'머어어ㄹ 린'
Vet- .. ? Pardon?...
'머얼 린?'
Vet - 응? 머렌?
'아니 뭘~린!'
Vet-....
'뭘린(한껏 얼얼,굴리며),마법사 멀린 아서왕 멀린...유노!?'
분명 위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상상만해도 아찔하니 땀이 난다.
저런 일들은 초라한 발음 때문에 런던에 살면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이름을 말하면 늘 다른 이름이 되어 돌아온다. 나중엔 고쳐주는 것도 귀찮아 그냥 눈치껏 알아듣는다.)
'몰리~니 이름 몰리야 몰리 몰리 몰리'
M-몰리~
'빨리 불러줘 많이'
J-몰리~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나쁘지 않은 듯.
웨스티 순종이 맞나 싶은 이 누리끼리한 녀석의 이름은 몰리가 되었고 그 후로 5인의 사람들은 각자 내키는 데로 불렀다.
'몽니~'
'똥몰리~'
'몰모리~'
'몰!'
'야!'
웨스티 Westie
West highlad white terrier
웨스트 하일랜드 화이트 테리어를 줄여서 웨스티라고 부른다. 웨스트 하일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서쪽 하일랜드를 지칭하는 지역명이고 화이트는 색깔, 테리어는 주로 사냥에 쓰이던 견종들을 지칭한다. 스코티쉬 화이트 테리어로 불리기도 했다.
웨스티는 스코틀랜드에서 사람들이 사냥을할 때 데리고 다니던 까맣거나 갈색의 테리어들 사이에서 간혹 태어나던 하얀 개였다. 말콤이라는 사람이 하얀 테리어가 여우 등의 동물 사냥에서 더 두각을 보이는 것을 알아냈고 하얀 테리어만을 교배하여 만든 견종이다.
[생각해보기]
물론 이렇게 예쁜 웨스티가, 보더콜리가, 리트리버가 혹은 몰티즈가... 우리 곁에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비단 순종이기 때문에,
혹은 훌륭한 혈통서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다.
인간이 순종혈통을 지키고자 근친교배를 하여 갖가지 유전병을 만들고 인간의 취향대로 견종을 만드는 등의 행위들 그리고 그 와중에 '취향'이 아니거나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사라져야 하는 많은 아이들. 이러한 행태 또한 동물 학대이다.
제발 21세기부터는 인간이 보다 인간다워 지길...
혈통이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녀석들은 행복해 하고 또 우리가 행복해 질수 있다.
이름을 부르니 네가 내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