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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tonCottage Jan 18. 2023

[어제의 일기] January blues

일월병(1.15 월)

1월의 15번째 날이 지나고 있다.

빽빽하게 모여든 사람들이 공전인지 끝인지 시작인지 모를 것에 대해 환호하고 족쇄나 다름없는 인위적인 초침의 움직임에 흥분하던 광경에 의아해한지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는 거다. 결코 새로운 시작일 리 없는- 숫자 세기와 다를 것이 없는- 시간의 변화를 기념하여 무언가를 새롭게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고 희망이나 설렘을 갖는다는 것이 무의미해진 건 혹은 그런 것들에 무뎌진 건 땜질하는 요정이나 자라지 않는 아이를 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습관처럼 아무 말이나 남겨놓기는 하던 ‘기록‘이라는 행위를 보름가까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 이유라는 게 내가 쓴 글자들이 어쩐지 어딘가 매우 시시해 보였다는 것 그리고 그 시시함과 하찮음, 비루함, 한심함, 식상함 그런 따위의 것들을 참을 수가 없어 삭제와 삭제를 반복했다는 것, 게다가 이것이 비단 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틀림없이 1월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날이 그날이고 이런저런 숫자들의 증가와 해치워야 할 일들의 쌓여감은 몇 년 전이나 며칠 전이나 바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이 똑같을 뿐인데 어째서.


문을 열면, 축축한 공기와 세찬 바람. 유난히 틈이 벌어진 나무바닥 위 시커멓고 불퉁한 발등위로 휘감아 치는 그 바람의 소용돌이. 허연 서리가 무섭게 내려앉은 이른 아침의 휑한 벌판. 그 서리가 녹아내려 진흙 진창이 돼버린 잿빛의 뿌연 오후. 회백색 고무 꽃이 얇은 막으로 뒤덮인 진푸른 발목 장화. 그 진창 속 장화에서 들리는 쩍쩍거리는 찐득한 소리. 허리 밑단으로 흙탕물이 어지럽게 휘갈겨진 검은색 방수 코트. 진작에 더러워졌어야 할 무릎 언저리의 깨끗함에 대한 슬픔. 의문을 품은 시선들과 멀끔한 신발들.


도망치지 못한 자에게 새로운 해의 시작이란 그저 이런 광경이고 마법 같은 것들이 마법처럼 사라져 버린 시간이며 축축하고 춥고 휑한 바람 부는 계절일 뿐이다.


나에게 마지막 단 하루만 남게 된다면

그날은 1월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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