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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tonCottage Apr 24. 2023

[어제의 일기] 2월과 3월

봄을 잃다.


축축하고 질퍽했으며 어둠은 늘 너무 일찍 시작됐다.

그 외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쳐벌쳐벌 대놓고 싫어할 틈도 없이 그렇게 통째로 2월이 사라졌다.


수선화, 블루벨, 목련.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여기저기 도생하고 있었다. 붉은 동백은 실컷 마주하지도 못한 그 고개가 벌써 똑똑 떨어진다. 뜬금없는 춘삼월의 눈발에 희롱당한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엔 짙은 햇살에 속아 칼 같던 바람에 욕을 뱉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봄 같지도 않은 봄에라도, 그 노랗고 파랗고 하얗고 붉은 것들은 어김없이 생겨났고 그것도 몰랐다는, 그마저의 봄이라도 만끽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이 일었다. 그렇게 3월도 사라졌다.


그래, 나는 봄을 잃고 있다.

아직 생에 수십 번의 봄이 남아있겠지만, 수천날의 봄 낮은 찾아오겠지만, 나는 오늘의 봄을 잃었다.


늘 병자같이 굴던 그는 마침내, 급기야 진짜 환자가 되었다. 덩달아 아이들의 몸은 뜨거웠다 식었다를 반복했고 그들 때문에 애가 타던 길고 길었던 여러 밤과 밤들 사이에서 나의 시간은 분주히 흘렀다. 그렇게 봄이 오는지 왔는지 모르던 어느 날 아이는 느닷없이 이제 꽃을 심자고 졸랐다.

샛노랗게 내린 볕을 유리창 너머로만 봐야 하면서도 뭐든 심어야겠다고 계속 징징거렸다. 그 징징거림이 싫어 튤립과 개나리와 달맞이꽃과 읽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노랑빨강분홍보랏빛 꽃들을 자꾸자꾸 들였다. 아직 차가운 이른 봄의 바람이 아이에게 들까 봐 식탁 옆에서 함께 흙을 뿌려가며 열심히 심었다. 집안이 온통 흙바닥이 되건 아이의 관심사는 오직 꽃화분뿐이고 나머지잔업들은 오롯이 또 내 몫이다. 이 고집스러운 녀석은 밖에 놓아야 할 그 꽃화분들을 방안에 들이고 벽난로 위에 두었다가 잠시 안아도 보고 꽃잎을 만져도 봤다가 식판 앞에 모셔두고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열이 펄펄 나던 밤들을 지나던 중에도 아이는 봄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저 잃고 있었던 건 나뿐이었던 건가.


끈질기다.

그다지 즐거운 것도 기쁜 일도 없는 생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국에서의 삶이 스물몇 해가 훌쩍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의 의사를 만나 본 적이 없던 그가 스스로 999를 눌렀다.

'생명을 위협하는 비상시에만 이 번호를 이용하시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저쪽은 단호히 거부했다. 어찌어찌 응급실 의자에서 8시간을 버틴 끝에 아침께쯤 엑스레이 한 장과 페인 킬러 두 알 정도의 관심은 받을 수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의사는 그를 만나기엔 환자가 너무 많았거나 퇴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종국엔 고통에 걸맞는 휴식 대신 고맙게도 그의 로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강력한 몇 종류의 약들을 선사해 주었다. 그 백색의 알약들은 무척이나 위대해서 그의 생과 노동이 쉴 틈 없이 이어지게 했다. 약 기운이 제대로 퍼지던 그즈음 나는 그의 고통에 대한 심심한 위로와 짠한 공감 대신 묵언수행을 택했다. 할 말인가 싶지만서도 여전히 내가 더 불쌍하다 아니, 제일 불쌍하다.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 것처럼 말없이 매일 반복적으로 많은 것들을 수행했고 수발했다. 한 달여쯤 지난 3월의 어느 봄낮, 그 수행자의 초심이 무너졌다. 모르는 새 나무에 가득해진 꽃 때문이었는지 이불 같은 검정 점퍼가 민망했던 탓이었는지 한참 길어진 일광시간과 벌써 다가온 써머타임이 황당했던 건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른다.

소리를 질렀다.

터져 나오는 소리를 주체할 수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질러댔다. 무겁게 짓눌려 있던 썩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동시에 혹은 번갈아가며 나만 빼고 저들만 병자들이라는 상황도 밤과 낮이 없는 것처럼, 마치 끝이 없을 것처럼 나를 찾아대는 저들의 소리도 나는 밀어내고 있었다. 알러지가 돋은 것처럼 긁어댔다. 그 무게를 감당 못한 채 그저 그런 척하며 수행자의 꼴을 하고 있었다. 고요한척했던 나의 얕음이, 가벼움이 꺽꺽거리며 봄에 내린 눈처럼 벌겋게 드러났다.


도피를 좋아한다.

그날도 수년동안 가장 애정하던 도피처로 향했다.

모두가 책상만 마주한다. 어느새 무형의 존재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느낀다. 사락거리는 소리, 스스슥 지나가는 공기, 어떤 것에도 도저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지나친 정숙, 다 내 것인 듯 빽빽이 꽂힌 오래된 책들, 그 책들 사이에서 풍기는 효모를 닮은 쿰쿰한 냄새와 참지 못하고 터진 기침까지. 그 안의 모든 것이 나의 이 도피를 정당화해 주는 것 같았다. 완벽하게 안전한 핑계. 오래된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하멜 표류기를 뒤적거렸던 것 같다. 어쩌면 생에 가장 거대하고 이기적이며 그럴싸한 대탈출을 앞둔 무모한 사람에게 -그리고 아직도 표류 중인 이에게 - 딱 적당한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처럼 몇 권의 책들을 쌓아 둔 채 깨작대고 휘적거리다 왜인지 열려있는 창문이 눈에 띄었다.

중앙도서관의 뒤뜰은 의외였다.

산인지 언덕인지 모를 중턱에 개나리가 만발하고 따신 봄볕과 가벼운 봄바람이 넘실거렸다. 도서관의 창을 열어놓은 누군가의 행위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 덕에 이 철없던 도피자는 가슴께 오는 창가에 구부정하니 턱을 괴고 서서 한참을, 한참 동안 봄뜰을 누볐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어떤 분홍과 하얀 꽃들 그리고 유난히 노란 햇살에 눈이 시린 이곳의 이 봄을 언제 또 누려볼 수 있을까. 몇 년이 될까 이게 마지막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은 그 봄을 더 눈부시고 애틋하게 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마지막이었다.


도피하고 싶다.

깨끗하고 냄새가 좋고 해가 잘 드는 어떤 곳이다.(화장실이나 부엌 바닥에 누워 버적거릴수 있을 정도로 청결한 곳-내 집에선 불가능한-) 창밖엔 봄볕아래 누군가가 열심히 심어놓은 튤립들이 줄지어 가득하고 저 너머로 마치 해왕성 같은 바다가 보인다. 쌧파란, 심장을 멎게 하는. 김이 피어나는 황갈색 차가 놓인 윤이 나는 60년대식 탁자 그리고 찻잔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뿐인 적막한 공간으로의 도피. 혹, 이 도피가 너무 사치스럽다면 그 퍼렇고 퍼런 만경창파 한가운데 누워도 좋다. 세상에 내가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하다. 아니다, 망상이다.


저들의 무게 저쪽에 내 무게를 맞추어 올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무너졌다. 올해 핀 꽃들이 작년에 핀 꽃들과 다르고 내년, 그 후년에 필 그것들과 같지 않으며 오늘의 봄이 어제의 봄이 아니라서 서럽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으면서 저들의 봄이 무상함은 알지 못했다. 오늘의 나는 봄을 잃어서 안타까웠지만 언젠가의 내가 그들의 가장 봄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 잊은 채 들판 한가운데 서서 공연히 바다를 생각했다. 무상하여 공허하다 했다.


오늘도 여전히 징징거림이 싫었다.

Bellis habanera rose를 심었다.

2월 오후의 어둠
Bellis habanera rose

우리의 봄을 잃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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