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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tonCottage Apr 21. 2016

Westie 몰리;부지런해야 한다

밥 주려면

웨스티 몰리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내 생활 패턴에는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물론 나를 비롯, 얼떨결에 반려인이 된 5인의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지만 이러저러해서 아침밥을 담당하게 된 나에게는 비자발적인, 정말 곤욕스러운 변화였다. 몰리를 데려오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인터넷을 서치 하며 하나둘씩 알아갈 때마다 아...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개보모가 되게 생겼으니.

며칠 사이 토끼같이 귀가 세워진 몰리. 한때 '토끼몰'로 불렸다.

어린 강아지들은 영유아와 마찬가지로 위가 작기 때문에 밥을 조금씩 자주 줘야 한다.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공복 상태가 유지된다거나 하면 노란 위액을 토하게 되는데 생각만 해도 내 속이 쓰렸다. 많이 먹고 한창 커야 하는 시기에 한 끼라도 굶긴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도 뻔하다.


당시 5인 중 가장 한가했던 나는 몰리의 밥 담당이 되었고 5-6시간에 한 번씩 밥을 먹어야 하는 몰리의 식사시간을 열심히 계산했다. 그래서 나온 새벽 6시-7시 사이에 아침밥을 줘야 한다는 결론. 조금이라도 더 늦게 일어나려고 아무리 시간을 다시 짜 맞춰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늘 아침 11시에나 일어나서 비비적거리는 반백수생활을 하던 나에게 오전 6시, 7시는 새벽이다 못해 한밤중.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평생 죽을 때까지 아침 7시에는 기상하지 않겠노라 선언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그것도 아직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새끼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강아지 밥주는 시간표,출처-dogtime.com

몰리의 하루 시간표를 짜는데 도움을 준 표이다.

(Vet의 충고에 따라 위 표에 밤 12시쯤 밥을 한번 더 넣어 하루 총 4끼를 챙겨줬다.)

시간표에서는 무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가랜다. 실소가 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무시.

나는 아침 7시를 몰리의 아침 식사시간으로 정했다.

사실 정할 필요도 없었다. 아침 7시쯤이 되면 몰리는 어떻게든 나를 깨웠다.(사실 방 문에 철창을 세워두고 우리의 방과 몰리의 공간을 철저히 분리하려고 했지만 동생과 J의 협공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같은 방을 쓰던 동생은 나보다 더 늦게 취침하기 때문에 끝까지 일어나지 않는 강적이었다.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억지로 사료포대로 기어가서 밥을 주고 다시 침대로 기어 와 잠깐 잠을 자려고 하면 순식간에 밥을 해치운 몰리는 열심히 배변활동을 하고 다시 나에게 일어나라며 장난질을 해댔다.

취침은 그냥 그걸로 끝.


억지로 버티고 버티다 결국 일어나서 잔뜩 부어 못생겨진 얼굴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화장실에 몰리의 쉬가 흥건한 배변판과 응아를 치우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이건 진정 내가 상상하던 강아지와 함께 사는 모습이 아니다.

예쁜 것이 주변을 뽈뽈거리며 걸어 다니는 모습이 내가 상상한 전부였는데...현실은 그냥 육아에 찌들어 피곤한 사람이 된 것.

어린 강아지를 데려온다는 건 내가 어미개를 대신해야 함을 의미하는 걸 미처 몰랐다.
식탐몰리 사료베고 잠들기


심지어 인터넷 가라사대, 어린 강아지는 체력이 약하니 짧은 산책을 약 1.5시간의 간격으로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나 불가능하므로 또 한번 실소를 던지고 무시. 다행히 하루 한 두 번 산책만큼은 같이 사는 사람이 많은 관계로 돌아가면서 따로 혹은 또 같이 할 수 있었다.


5인의 인간들은 이 작은 녀석 하나로 전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졌고, 특히 게으름과 귀차니즘, 개인주의의 아이콘이던 나는 꼬맹이 하나 때문에 생에 처음 남의 아침밥까지 챙겨주는 '존재'가 되었다.


다른 생명체를 책임지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함께 살 수 있다.
부지런 해져야 한다.

밥 주려면...   

반려동물을 데려온다는 것은 그 생명체가 생을 다 할 때까지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려동물들은 인형이 아니고 장식품이 아니며 일회용 기호품이 아니다.

수년에서 십수 년 동안 매일 아침 일찍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똥을 치우는 일을 반복해야 함을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 확신이 섰을 때 그때 다시 한번 입양을 생각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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