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답답해 잠에서 깼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찾는다. SNS를 확인하고 뉴스를 본다. 서울숲을 3바퀴 걷고 처음처럼 1병을 마신 것이 전부였던 나의 어제가 초라하다. 한숨과 함께 오늘은 또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해야 할 것도 가야 할 곳도 모르겠다. 4시 15분을 가리키는 벽시계도 초침이 멈춰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답답한 공기는 창 밖 무더위가 아니라 내가 뱉어낸 한숨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퇴근하시는 부모님께 무기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대충 씻고 문 밖으로 나선다. 해는 벌써 저물고 사람들은 오늘을 정리 중이다. 나는 어제처럼 다시 서울숲으로 향한다. 4시 15분만 가리키는 시계처럼 나의 매일은 같다. 목적이 없는 걸음 속으로 도망치고 또 숨을 뿐이다.
"카페 정리되면 그 돈으로 여행 가려고." "왜? 갑자기?" "그냥. 마음도 안 맞고 장사도 안되고 몸만 힘들어서."
"똑같은 놈 둘이서 할 때부터 내 알아봤다. 그래서 여행 갔다 오면 뭐하게?"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내가 언제 생각하고 사는 거 봤냐?"
"답 없는 놈. 답답하다."
"인생에 답이 어딨냐? 답이 없으니 잘 살고 있는 것 아냐?"
"미친놈."
카페를 시작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주택청약적금을 받았다. 10년 넘게 나를 위해 조금씩 모아둔 통장이다. 1년 안에 다 돌려드리고 해외여행 보내 드리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난 카페를 넘겼고 1년 만에 삼천만 원을 잃었다. 괜찮다. 돈은 다시 벌면 된다. 기죽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럴수록 난 더 죄송스러웠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자책했다. 제주도, 맥주바켓, 카페. 거듭된 실패 속에 점점 자신을 잃었다. 열심히 하지 않은 채 인생은 원래 답이 없는 것이라 핑계를 대는 내가 싫어졌다.
옛 경마장임을 상징하는 동상을 지나면 바닥분수광장이다. 이어 거울연못에 비친 메타세콰이아를 보며 걷는다. 그 나무가 끝나는 곳에서 너른 잔디광장이 나타났다. 하늘이 뻥 뚫린 잔디광장에는 내가 늘 앉던 의자가 있다. 그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하기만 한 별들……. 별들과 함께 나도 찾아본다. 뿌옇고 까만 하늘. 마치 내 미래 같은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어 한참을 보낸다. 순간 하늘이 가까운 곳에서 본다면, 반짝이는 그 무엇도 조금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행기, 롯데월드타워 꼭대기, 남산타워 전망대, 산. 그중 멀리서 봐야 멋있다고만 느꼈던 산이 제일 나을 것 같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높은 곳으로 가는 성취감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 산이다. 쓰지 않던 근육이 놀라 아플지라도 꼭 가야겠다.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그렇게 정상에 갈 수 있다면, 멈춘 시계도 다시 흐를 것만 같다. 오른다고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지금 나는 산을 오를 생각으로 기분이 좋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