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온다 Apr 05. 2022

'동해시' 바다는 다 훑어볼 수 있는

해파랑길 유랑기_33, 34코스

2022년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새벽, 서울발 동해행 첫 KTX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서부역사 쪽은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강원도 지역에도 KTX 노선이 생기며 주말마다 여행객들이 많다는 얘긴 들었지만, 휴가철도 아닌 이 시기에 이런 인파라니. 촌스럽게 놀라고 말았다. 열차 안도 사정은 비슷했다. 좌석은 만석이었고 샬라샬라 영어를 쓰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있었다.


놀라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려 동해역에 도착했다. 열차가 강릉에 진입하며 강릉 쪽으로 올라가는 선과 동해로 내려오는 선으로 나뉘는데, 그때부터 바다가 열차 진행 방향의 왼쪽에 보이기 시작한다. 졸고 있다가 사람들의 '와! 와!' 하는 소리에 번쩍 깼다. 사진을 찍어보려 했으나 내 좌석은 바다가 보이는 쪽이 아니었고 이미 창문 옆에 다들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포기했다. 그리고 도착한 동해역엔 거센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아담했던 역사


"우리 걸을 수 있겠지?"


그냥 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직접 걷고 부딪치는 여행이었기에 살짝 걱정이 됐다. 자전거를 타면서 맞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을 했던 터라 거센 바람은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이런저런 걱정은 됐지만 일단 배가 너무 고팠기에 늦은 아침을 먹으러 미리 정해두었던 식당으로 향했다. 남편이 찾은 곳이었는데, 택시 안에서 우리는 '동해시'에서 택시를 탔고 식당은 '삼척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순간적으로 시-도 경계를 넘는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기사님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시길래 '아, 두 도시가 하나의 생활권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실제로도 금방 도착하긴 했다.


남편이 고른 메뉴는 홍합밥! 홍합살을 발라내어 돌솥에 쌀과 함께 쪄낸 음식이었다. 열 가지가 넘는 반찬과 함께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미역국은 시원하고 홍합도 쫄깃쫄깃하고. 이것저것 주워 먹다 보니 배가 금세 차올랐다. 자, 열심히 먹었으니 이제는 걸을 시간. 화장실도 다녀오고, 발목도 한번 돌려주고, 마지막으로 배낭의 허리 버클을 단단히 채우고 여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다 차려진 한상
홍합밥 근접샷. 홍합이 안 보이네... 안에 많았음


첫날의 목표는 해파랑길 33코스 전체와 34코스의 일부였다. 숙소가 34코스 초반부에 위치해 있으니 어떻게든 그까진 가야 했다. 33코스는 추암역에서 묵호역 입구로 이어지는 13.6km의 길이다. 밥을 먹은 식당이 추암역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쏠비치 삼척 근처였는데, 우리는 그냥 그곳부터 걷기 시작했다.

출처: 네이버 지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관광객이 많았고, 산뜻하게 나들이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 묵직한 배낭을 메고 걷는 우리 둘은 좀 튀었다. 추암바위를 보고 와서 33코스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있을 때 한 부부가 다가오더니 "어디서부터 걸으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목소리엔 놀라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제 막 시작한 건데 엄청 오래 걸은 포스가 났다 보다.

각 코스의 시작점에 이렇게 스탬프가 있다


그리고 걷다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이 군데군데 표지판이 있다.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도 있으니 잘 보면서 걸으면 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던 사람이라면 바로 그 '화살표'가 생각날 것이다.


추암바위는 볼 만했다. 제주도 서귀포의 외돌개가 생각나는 포스였다. 동해바다의 깨끗함은 말해 뭐하리.


추암을 지나 계속 걷고 걸었다. 아침에 내렸던 동해역도 다시 지나갔고, 계속 바다를 끼고 걷는 줄 알았는데 걷다 보니 도심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바닷가 쪽에 있는 군부대나 초소, 기찻길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걷다 보니 시멘트 공장도 나오고... 여담인데 우리가 이 공장 옆을 지나간 게 오후 1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보통 회사의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공장 쪽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크게 울려 퍼지는지. 시간이 좀 지나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아빠 조심하세요 아빠 힘내세요' 이런 류의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일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하는 직종이다 보니 저런 노래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기술 없고 능력 없는 사무직 두 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ㅆㅇ시멘트 공장~


그리고 도착한 33코스의 마지막 지점 묵호역 인근. 역이 해파랑길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아서 우리는 일부러 조금 더 걸어서 묵호역까지 갔다. 화장실도 쓰고 사진도 찍고. 걷다 보면 가장 소중한 게 화장실이다. 여름이면 더워서 땀 배출이 많이 돼 그렇게 요의가 자주 느껴지진 않는데, 겨울에는 땀이 많이 안 나다 보니 생각보다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그렇다고 몸을 쓰는데 물을 안 마실 수도 없으니 화장실을 발견하면 무조건 가고 봐야 한다. 까미노를 걸을 땐 노상방뇨도 좀 했었는데^_^ 한국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_^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_^


그리고 34코스 진입! 숙소가 대진항 근처였으므로 열심히 발을 놀려야 했다.


묵호역을 거쳐 묵호읍내를 지나 묵호항까지 다다랐다. 강원도 전체에서도 꽤 큰 항구이고 코로나 이전에는 울릉도 가는 배편도 있었으니 사람이 얼마나 북적였을까.(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2022년 4월 15일부터 묵호항-울릉도 뱃길이 다시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간 날도 주말이라 묵호항 수산시장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걷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여행을 왔으면 회 한 접시 포장해 갈 텐데. 둘 다 입맛을 다시며 시장을 나섰다.


대충 이런 느낌. 다시 봐도 엄청 큰 시장이다.


그때가 오후 5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한겨울보다는 해가 길어지긴 했으나 조금은 속도를 내야 했다. 해가 떨어진 후에 걷는 건 여러 측면에서 위험하다. 해파랑길 자체가 온전하게 인도로만 걷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차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구간이 있다. 대도시처럼 교차로마다 신호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도 속력을 내기 마련. 손전등이나 후미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야간 보행은 피해야 했다. 거기다 첫날 숙소가 있는 동네에 저녁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먹고 숙소에 들어가야 했다.


묵호를 지나 어달해수욕장 근처로 가자 식당들이 몇 개 보였다. 시간이 촉박한 와중에도 폭풍 검색을 해 조금이나마 평점이 높은 식당을 찾았다. 매운탕과 물회를 시켜 싹싹 긁어먹고 대진항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물회 대존맛....


숙소는 구렸지만... 순례자의 마음을 가지고 매사에 감사해하며 잠을 청했다.(라고 썼지만 다시는 안 가고 싶은 숙소였다. 화장실 곰팡이 뭔가요? 순례자의 마음은 한국에 돌아온 순간 잃어버렸나 보다. 스페인에 고이 두고온 순례자의 마음^^) 몸을 많이 써서 그런지 잠은 참 잘 오더라. 거의 20km를 걸었던 해파랑길 첫날 끝!


매거진의 이전글 산이냐 바다냐, 고민이 되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