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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온다 Jun 12. 2022

TV에 나온 나의 민원인 2

고민 많은 공무원의 일기

2년이 다 되어간다. 그 할머니가 우리 회사로 찾아오는 게.


어느 검찰청에나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는 민원인은 존재한다. 수사권 조정이 되기 전에는 민원실 한 곳에 마련된 의자와 책상에서 부지런히 고소장을 자필로! 작성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작년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서 회사를 방문하는 손님의 수도 급감하긴 했지만, 곧 죽어도 '검찰 고소'를 고수하는 이들도 많다. 이제 법이 바뀌어서 우리가 받을 수가 없다, 경찰서로 가셔야 한다고 안내를 해도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실랑이를 몇 번 하다 도저히 안 되면 그냥 받는다. 그리고 그 고소장은 빠르면 다음 날쯤 바로 관할 경찰서로 이송된다.


그 할머니도 그런 류의 손님 중 하나였다. 고소장 상 나이는 70대 중반. 2020년 말 정도부터 우리 회사를 방문했던 것 같은데, 올 때마다 덕지덕지 편철된 각종 지도와 종이 뭉치를 갖고 와 고소장이랍시고 제출했다. 행색은 남루했다. 정돈되지 않은 반백발 머리에 대충 걸친 옷가지와 작은 배낭, 그리고 분홍빛 보자기에 애지중지 싸 오는 고소장. 비가 오는 날엔 보자기가 비닐봉지로 바뀌어 있었다. 나름 본인의 고소장에 대해선 애착이 강했다.


우리 모두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항상 택시를 타고 검찰청을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무실이 1층이고 창문이 청사 정문을 향해 나 있어 드나드는 사람이 잘 보이는데, 이 할머니가 항상 택시에서 내려 소중한 고소장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직원들끼리는 '저분이 행색은 꾀죄죄해도 돈이 좀 있을 것이다' '돈이 많으나 외양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일 것이다'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고소장을 내러 왔는데, 매번 택시로 오가니 교통비로만 쓰이는 돈이 꽤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열에 일고여덟 꼴로 저런 '남발' 유형은 우리 청뿐만 아니라 전국의 검찰청에도 고소장을 접수하러 다니기에 그때마다 택시를 탄다고 치면 지출이 상당할 테니,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소중한' 고소장의 내용은 무엇이었느냐.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이 모두 자신의 시조부 땅이었는데, 정부 관계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현재 그 토지의 소유자)이 공문서를 위, 변조하여 그 땅을 강탈해 갔으니 이들을 처벌해 달라는 게 요지였다.(어떡하지....?)


시조부의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곳을 나열해보자면 현재 강남 신세계백화점(센트럴시티), 성신여자대학교, 용산 미군기지 터 등이었다. 아, 청와대도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피고소인에 이름이 올라 있었고, 올해 대선 전에는 피고소인 명단에 '2022년 대선 당선자'도 있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는 그의 이름도 피고소인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위치가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이고(사실 고소장을 제대로 안 읽어서....) 주저리주저리 써 놓은 것은 훨씬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우리는 마음이 좀 힘드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고소장 안의 내용이 사실일 리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가 그렇게 많은 땅을 가졌단 말인가. 아니면 백 번 양보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 때 토지를 몰수당한 집안의 후손인데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지금까지 계속 저렇게 사시나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난주 어느 날, 후배 하나가 오더니 그 할머니가 TV에 출연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뭔 소리야 인마"

"진짜예요 선배님~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왔어요. 검색하면 나와요."


두둥!


민원실 모두는 바로 검색 창을 켰다. 진짜였다. '할머니는 왜 온 동네를 본인 땅이라고 주장하나'라는 소제목을 본 순간 다들 '헐!' 하며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긴 했지만 블로그와 영상에 나온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회사에 오는 모양새 그대로였다. 한눈에 알아봤다고나 할까. 거기엔 할머니의 사연이 나와 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긴 했지만.


실제로 할머니의 시조부 A는 일제 때 땅부자였다. 1940년 기준 경성(서울)의 부자 순위에서 40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는 재산을 불려 간 과정이 반민족적이었다는 것. 조선인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여 재산을 축적했고 그걸 일제에 헌납하고 헌금하는 등 친일 행각을 일삼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기도 했다. A는 광복 후 토지개혁으로 인해 자신의 토지를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자 대학교 등에 땅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해서 몰수를 피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다 21세기 들어 이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와 할머니의 남편(A의 손자)이 그런 기부 자체가 무효였다는 식의 민사소송을 현재 해당 토지의 소유자들에게 제기해 왔고, 그게 잘 안 되니(당연히 될 리가....) 형사 소송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할머니는 본인의 토지라고 주장하는 곳에 가서 행패도 많이 부리는 듯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 있었는데 현장 관계자들에게 쌍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상가 건물에도 들어가서 영업을 방해하는 등의 행동을 많이 하는 걸로 나왔다.


검색을 마친 우리는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마음이 아픈 분이라고만 생각했지, 친일파 조상의 땅을 찾기 위해 무차별 송사를 남발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사연은 있었으나 그 사연은 우리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사과는 못할 망정 할아버지는 친일파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며 오로지 재산 찾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모습. 방송에 나오는 할머니의 멘트는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천박하고 더러웠다.


그렇게 또 하나 배워간다. 이 회사에서, 이 민원실에서. 사람은 사는 대로 살아지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알을 깨려면 부단히 노력하고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그게 사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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