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이미 해는 바다 위로 높이 솟아 있었다. 동해가 보이는 숙소라 일출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전날 밤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하지를 20여 일 정도 앞둔 저 당시 일출 시간은 새벽 5시 20분 정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역시 일출은 겨울이 제 맛이라는 생각을 하며 푹 잤다.
짐을 최대한 줄여 오느라 속옷, 양말 및 겉옷(반팔 티셔츠, 반바지)을 딱 2세트씩만 챙겼다. 매일 손빨래를 해야 했다. 첫날에도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빨래부터 해서 바깥 테라스(라 썼지만 베란다가 더 맞는 말인 듯하다)에 널어놓았는데, 다행히 바람도 잘 불고 햇살도 좋아서 빨래가 잘 말라 있었다. 초여름 햇살 아래 잘 마른빨래같이 뽀송한 마음으로 둘째 날 여정을 시작했다.
그날 목표한 구간은 남은 25코스+24코스+23코스 조금이었다. 울진 기성망양해수욕장에서 시작해서 24코스의 마지막인 후포항을 지나 조금 더 남쪽을 향해 가는 길이다. 역시나 문제는 보급기지의 부재. 편의점도 슈퍼도 아무것도 없었다. 재차 말하지만 울진은 생각보다 시골이다. 숙소에서 1시간 정도 걸어야 면 소재지가 나오고 거기에 농협 하나로마트와 편의점이 있었다. 강제로 아침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해야 했다. 다행히 그간 몸에 축적된 체지방과 당이 많았는지 빈혈이 오거나 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고, 무사히 1시간 거리의 기성면에 도착해서 하나로마트에 입성할 수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그곳이 천국이었다.
캔커피와 옥수수크림빵 등을 사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오전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앉을 만한 곳이 없어 통행이 드문 그늘진 길바닥에 앉아 주섬주섬 빵을 먹었다는 건 함정.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쟤들은 뭘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덥고 좋을 텐데. 라는 말풍선이 어르신의 귀 뒤쪽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남편과 눈을 마주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아직은 사서 고생해도 될 나입니다 어르신^^'
기성면 소재지를 지나 봉산리 방향으로 내려갔다. 봉산리에 비행 훈련장(a.k.a. 울진공항)이 있어서 머리 위로 경비행기가 자주 날아다녔다. 가는 길에 큰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어디 가면 안내판부터 읽어대는 활자충이라 거기 적힌 글씨를 읽고 말았다. '평해구씨 유래.' '평해구씨 시조 대림장군묘소입구.'
구씨.... 구씨....구씨?????
그랬다. 울진에는 산포도 있고 구씨도 있었다. 울진은 '나의 해방일지'와 접합점이 너무나도 많은 곳이었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 방문했다면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한창 구씨의 추앙 속에 허우적대던 터라 신나서 비석을 찍어댔고 그런 나를 남편이 또 찍었다. 그리고 비석을 살펴보니 중국 당나라 장군이었던 구대림이 서기 663년 일본으로 가다 풍랑을 만나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여기 울진 평해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후 후손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그가 평해 구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본 비석은 구대림 장군의 묘소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비석이었다.
구씨 열심히 찍는 중
구씨도 만나고, 지식 한 스푼도 머리에 주유하고 걸어 걸어 내려갔다. 재차 말하지만 울진은 보급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식사 계획을 잘 세워야 했다. 둘째 날 점심을 먹기로 한 곳은 월송리에 위치한 돈가스집이었다. 지도를 검색하다 이런 곳에 돈가스집이 있다는 것에 놀라 무조건 가기로 했다. 손님도 많았다. 비행 훈련장에서 훈련받고 있는 학생인 듯 유니폼을 입고 온 사람도 있었고 젊은 연인, 중년 부부 등 다양한 손님이 찾아왔다. 음식 양도 푸짐했고 왠지 '울진'에서 먹는 경양식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식당에서 조금만 더 바다 쪽으로 들어가면 관동8경 중의 하나인 월송정이 있었는데, 배부르고 덥고 배낭을 메고 있으니 귀찮아서 그냥 패스했다. 현판이 최규하 전 대통령의 글씨라는데 네. 다음에 시간 되면 보러 올게요. 아직 후포항까지 갈 길이 구만 리거든요. 헉헉.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바다가 눈앞에 계속 펼쳐져 있었다. 도시 촌년 바다 하나는 정말 징하게 보고 걷는다는 생각만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 되게 진부한 말인데 바다 앞에선 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울진은 바닷가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 오롯이 바다와 내가 전부였다. 작은 포구에 정박되어 있는 어선들도 정겨웠고 느릿느릿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는 어머니들의 뒷모습은 따스했다. 하루에 버스가 몇 번 오지 않는 마을 버스정류장을 그늘 삼아 낮잠을 청하는 어르신도 계셨다. 길가에서 햇빛을 받고 바싹 말라가는 미역, 바닷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맛있게 건조되는 오징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편의시설이 부족한 울진의 바닷가를 걸으며 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당장 셋째 날 영덕으로 접어들며 큰 해수욕장과 포구, 편의점 등을 만나니 편하긴 했지만 울진의 그 고요함이 그립더라. 사람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간사해. 정말로.
걸어 걸어 후포리의 초입 후포6리에 도착했다. 후포는 울진에서 큰 마을이다. 큰 항구인 후포항이 있고, 후포항여객터미널에선 울릉도까지 가는 배편도 있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예능 '백년손님'에 이곳 후포리에 사는 노부부가 나와서 화제가 됐었다. 후포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후포에 들어오니 그래도 마을 느낌, 사람 사는 느낌이 났다. 가게도 많고 차도 많고. 마을 초입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부터 축였다. 숙소가 후포항을 지나 좀 더 영덕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었기에 1시간은 더 걸어야 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항구...
해파랑길 코스 안에 후포항 근처에 있는 등기산(말이 산이지 해발 53.9m의 언덕 느낌이었다.)을 오르는 길이 있었다. 배낭도 무겁고 조금 귀찮았지만 관광객들이 다들 올라가길래 속는 셈 치고 한 번 올라가 봤다. 생각보다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었고 각종 조형물도 설치해 놓는 등 지자체에서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예능 프로그램의 여파로 사람들이 후포리를 많이 찾아오면서 관광 수입도 늘어났고, 원래부터도 큰 항구를 끼고 있는 마을이라 예산 자체가 많았을 터. 마을 위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도 놓아져 있었고 그 위에서 파란색 빨간색 알록달록한 단층집 슬레이트 지붕들을 보는 맛도 쏠쏠했다.
내려와서는 오랜만에(그래 봤자 서울 떠난 지 고작 이틀이었지만) '도시'의 냄새를 맡으며 숙소로 향했다. 가다가 유명하다는 울진대게빵도 하나 사 먹고, 드디어 나온 편의점에도 들러 맥주와 간식을 샀다. 저녁은 무려 숙소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었다. 그랬다. 후포는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었다. 마침 그날은 브라질과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있는 날이었고, 우리는 피자와 맥주를 먹으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더 바랄 게 없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