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한 고등학생이 보낸 문자 하나가 소개됐다. “제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에 진행자는 별 고민 없이 “큰일 하라고 태어난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철렁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아이가 붙잡아 달라고 뻗은 간절한 손을 무심히 툭 쳐 내는 어른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중학교 때 쓴 내 일기장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발견한 적이 있다. “사람은 왜 세상에 태어날까?” 그때 난 이렇게 적었다. 내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나중에 유명해져서 꼭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 일기를 읽고 있는데 살짝 민망했다. 이름을 날리기는커녕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나중에 크면 정말 큰일 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자신감이었을까. 아마 인생 전체에 고루 나눠서 써야 할 자신감을 싹싹 긁어모아 그때 다 써버린 건 아닌가 싶다.
삶이란 게 무척 거창한 건 줄 알았다. 원대한 포부를 가져야만 삶의 무게에 눌려 허덕이지 않고 삶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높은 이상만큼 강도 높은 자기비판만 하다가 삶에 질질 끌려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기필코 내일 아침엔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잠들어 놓고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을 무시한 채 이불 속을 파고든다. 석 달 치 운동을 등록해 놓고 어깨에 찰싹 달라붙은 귀찮음 하나 떼어 내지 못해 운동하는 날보다 집에서 TV 보며 간식을 먹는 날이 더 많다. 퇴근 후 한 시간만 게임하며 스트레스를 풀다 자기 계발 좀 할까 했더니 잠잘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게임을 멈춘다. 날마다 많든 적든 꼬박꼬박 후회를 저금해 가며 살고 있다.
삶에서 진짜 큰일은
성공하는 것, 돈 많이 버는 것, 명예를 얻는 것,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할 일을 덜 만들며 사는 것 아닐까.
「메리대구 공방전 」이란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기 작가가 돼서 계속 히트작을 내는 것보다, 인기 배우가 돼서 매일 밤 무대에서 갈채를 받는 것보다, 아무도 나한테 희망을 걸지 않을 때 나를 믿고 버티는 게 진짜 빛나는 겁니다.” 그렇다. 작은 노력을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건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일이다.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는 지루함을 이겨 내면, 언제 자랐는지 모르게 손톱만큼 빼꼼히 자란 변화의 폭을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 온다. 그래, 이 맛에 산다. 손톱만큼 간신히 키워 낸 나를 만나는 즐거움에. 사실 난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이것밖에 안 돼’라고 인정하고 나면 평생 그저 그런 어중간한 사람으로 살게 될까 봐.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솔직히 인정하고 나니 그럼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당장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욕심내기보다, 후회를 덜 만들며 부족함을 성실히 채워가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던 중학생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이 말만은 꼭 해 주고 싶다.
왜 태어났는지 몰라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 우리 삶은 생각만큼 거창하지 않아
삶보다 더 대단한 건 오늘이다. 오늘을 살다 보면 만들어지는 게 삶이니까. 큰 목표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하루하루 부지런히 자신을 길러 내는 재미와 보람 역시 크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라디오 사연을 보냈던 중학생 친구에게 직접 얘기해 줄 수 없으니, 내가 중학교 때 쓰던 일기장 구석에 적어 놓는 걸로 만족했다. 큰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이에 비해 무거운 기대감을 안고 사느라 힘들었을 과거의 나를 그렇게나마 달래 줬다. 지금의 나도 조금이나마 홀가분해진 기분이다.
[신간 에세이]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출간 기념 연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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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6화. 갑질에 경고 버튼을 누르겠습니까?
11/26(월)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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