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다림이 편안해지길 바라 본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든.
아보카도를 반으로 가르는 순간엔 늘 작은 떨림을 느낀다. 아보카도의 몸통을 빙 둘러 칼집을 내고 양쪽 면을 각각 손으로 잡고 비틀었을 때. 마주한 과육이 짙은 노란빛을 띤 고운 연두색일 때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알맞은 때가 될 때까지 잘 기다렸구나
너무 성급하지도 않았고 너무 느긋하지도 않은, 딱 완벽한 순간에 아보카도의 배를 갈랐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 참 좋다.
아보카도는 후숙 과일이라 실온에 두고 서서히 맛있게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는 것. 다 익기 전에 섣불리 칼을 대면 비리고 풋내 나는 속살을 만나게 된다. 또 너무 익은 상태에서는 속이 거뭇거뭇하고 씁쓸한 맛까지 난다. 게다가 쉽게 무르기 때문에 잘 익은 상태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참 까다롭다. 그래서 아보카도를 사 놓고도 때를 맞추지 못하면, 아깝지만 입도 못 대고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아보카도를 사면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때가 오길 기다린다. 밝은 초록색이었던 아보카도의 겉면이 검은 녹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안에서 서서히 익어 가고 있는 과육을 상상한다. 그러다 “지금이야!” 결심하고 아보카도를 반으로 갈랐을 때, 속이 잘 익은 아보카도가 나타나면 나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맛있게 익은 아보카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건, 딱 그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위한 필연적인 기다림을 잘 버텨 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어릴 적 생일 선물을 기다리며 하루가 1년처럼 느껴졌던 기억, 다들 있을 거다. 언젠가 부모님 손을 잡고 마트에 갔다가 장난감 하나를 사 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마침 생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상황이라 지금 생일 선물을 미리 사 달라고 했다. 부모님은 미리 생일 선물을 사 주시며 대신 신신당부했다. 일주일 후에 올 생일날에는 약속대로 선물은 없을 거라고. 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너무 좋아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받을 선물, 며칠 당겨 받는다고 해서 기쁨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생일 선물은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왔고, 덕분에 자동적으로 일주일이란 힘든 기다림의 시간도 사라졌으니 더는 바랄 게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생일날. 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느낀 기분이 딱 이랬다. 아보카도의 배를 갈랐는데 너무 푹 익어 버린 속살을 보았을 때의 기분. 1년에 딱 하루뿐인 생일인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하고 부모님이 꼭 안아줬지만, 선물은 없고 축하한다는 말뿐인 생일은 뭔가 허전했다. 그토록 갖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미리 받은 선물을 보고 있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기다림을 버티지 못한 대가였다. 기다림의 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기다림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 딱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의 크기도 줄어들고 말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필요한 걸 바로바로 얻을 수 있고, 기다림이 필요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으면 참기가 힘들다.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도 답답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니 말 다했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일, 교통 정보가 잘 뜨지 않는 소도시에 여행을 가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지길 기다리는 일. 어른에게 기다림은 조마조마하거나 지루하거나 불안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기다림 끝에 오는 쾌감을 자주 느껴 본 사람만이 그 시간을 의연하게 인내할 수 있다.
메리골드 꽃의 꽃말은 ‘반드시 찾아올 행복’이라고 한다. ‘반드시 온다’는 말에서 간절함, 그리고 기대해 봐도 좋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물론 기다림의 결과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고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 자체가 희망이다. 알맞은 시기가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것이다.
만약 메리골드의 꽃말이 ‘어차피 찾아올 행복’이었다면 어땠을까.
생일 선물을 미리 당겨 받는 것처럼 “어차피 올 거 기왕이면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며 안달복달할 수도 있고, “어차피 올 텐데 신경 쓸 게 뭐 있어” 하며 기다리던 그때가 와도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아마 기다림의 시간이 희망보다 괴로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가 애벌레 몇 마리를 집에 데려와 정성껏 키우는 걸 본 적이 있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자, 아이는 나비가 번데기를 벗고 나오는 걸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밥을 먹을 때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곁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던 그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의 기다림은 ‘어차피’가 아니라 ‘반드시’였다. 그때 그 아이는 나비를 만났을까. 나는 그 아이가 알맞은 시기가 오기까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기다림을 잘 견뎌 내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의도적으로라도 ‘반드시 찾아올 행복’을 자주 만들며 기다림에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기다림도 편안해지길 바라 본다. 지금 당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든.
[신간 에세이]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출간 기념 연재였습니다.
10화. 반드시 찾아올 행복 을 마지막으로,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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