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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인 Sep 29. 2016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한다.

*포토에세이

신나게 잠을 자고 눈을 뜬다. 나름 오래 잤다고 잔 건데 아직 오전이다.   

오전 10시. 왜 아무 일도, 약속도 없는 날은 눈이 일찍 떠질까.

좀 더 이불에서 뒹굴 거리며 잠이 오길 바라보지만 더 이상 잠이 오지도 않고 정신이 점점 말짱해진다. 결국 잠을 더 자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부지런한 휴일을 보내보기로 한다.   

아침을 먹고 , 책도 보고 , 인스타도 뒤적뒤적, TV 채널도 한 바퀴 돌려본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  

어제 하루 종일 맘에 걸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아 내속에서 꿍한 채로 남아있어, 계속 속이 더부룩하다.   

이런 기분, 이런 상태로 가만히 집에 있으면 상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내 머릿속에서 까만 미역이 물에 불듯, 점점 커지다 못해 아예 잠식해버리는 수준이 되기 전에 나는 나를 바쁘게 만든다.      


   

벌떡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한다. 옷도 고르고 머리도 빗는다.  

나는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는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어디 중요한 곳에 갈 것도 , 누군가를 만날 것도 아닌데 나름 풀메이크업을 하고,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준비가 다 되었다 싶으면   

카메라를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어디 갈지는 생각해놓지 않았다. 그냥 버스정류장에 다다르면 어딜 갈까 생각해보고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을 가본다. 어느 곳이나 가도 혼자 집에서 우두커니 있는 것보단 재미있을 것 같다. 처음 가보는 곳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낯섦'이라는 것을 신경 쓰느냐고 내 머릿속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각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기 때문에.


처음 가보는 곳에 가보면 모든 게 역시 새롭다. 처음 보는 복잡한 골목, 동네 이름, 많은 상점들, 익숙하지 않은 냄새, 길을 잃고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리도 아프고 정신도 없다. 길치인 나에겐 더더욱 처음 가는 곳은 '낯섦'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힘든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됨에 조금 안도를 한다. 

이 낯섦, 힘듦, 복잡한 머릿속이 즐겁다.   

계속해서 내가 불편하고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힘듦은 힘듦으로 이겨내야 하니까.   



나는 무언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한 고통을 주는 편이다. 나를 더 몰아붙이고 힘들게 만들고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거나, 정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길을 잃어 하루 종일 헤매는 그런 방법으로 나 자신을 많이 괴롭히는 편이다.   


이렇게 힘든 나 자신을 다독여주지는 못할 망정 괴롭히고, 몰아붙이는데,

나 자신도 나를 이렇게 예뻐해 주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해 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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