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혜인 Oct 27. 2016

상처 되새김질

*포토에세이


상처가 나고, 피가 나고, 약을 바르고 딱딱하게 굳고 조금씩 흉이 사라지고  

이렇게 마음의 상처도 깔끔하게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조금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받을 당시엔 그렇게까지 아파하지 않고 지나가겠거니 금방 아물겠거니 하고 내버려두고 나중에 딱딱하게 굳을때 쯤, 깔끔하게 흉이 질 때쯤 다시 흉터를 뜯기 시작한다.     

내버려두면 그냥 사라질 수도 , 흉이 지지 않을 수도 있는 상처를 굳이 뜯어서 다시 피를 보기 시작하는 거다.


하필 기억력도 좋아 누군가에게 아픈 말을 들으면 쉽게 잊는 성격이 아니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기억하는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다시 그 시간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조각조각난 말들과 바랜 시간 속에 다시 들어가 혼자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준 상처가 아니어도 흘려들을 수 있는 말도 나는 주워 담아 맞춰보고 곰곰이 생각하고 상처를 받는다.  


   

"너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어? "  

"그냥 한말이야~ 잊어버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시간이 지났고, 그냥 던진 말인걸 아는데도 나는 또렷하게 남는다. 오히려 더 마음속에 잘 남는다 그런 말은.  잊히지도 않고, 오히려 그런 말이 더 진심인 것 같고, 그래. 차라리 정말 흘려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내 성격은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시간이 지나서 상대방은 기억도 하지 못해 더 이상 물을 수도 없는 버려진 말들을  

왜 나는 주워 담아 입속에 주워 담고 삼키고 토해내고 되새김질하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걸까



      

아마 나는 그 상처를 받았을 때 애매한 태도가 나에게 미련이 남아서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했을 때 그 말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서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여기서 내가 문제를 크게 만들어도 될까?  

무슨 뜻인지 제대로 다시 물어볼까?    

내가 그냥 이 말을 흘려들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그래서 그냥 지나쳐버리고 그 자리에서 웃으며 넘어간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부딪치기도 싫고 여기서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넘어가면 문제가 없을 거 같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다시 한번 들쳐본다. 그 사람에겐 이미 끝난 말이고, 지나간 시간이고, 전혀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다시 상처를 만들고 혼자 이리저리 만지다 낫지도 않을 상처로 크게 들쑤셔버린다.


살아가면서 상처가 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들과 지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즉시, 이 상처에 대해 대처를 해야 한다.

어떤 상처인지 , 어떻게 해서 난 상처인지,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는지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물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물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최소한, 나 혼자서 이 상처를 끌어안고 다시 되새김질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원래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아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흉이 번지지 않도록,

제대로 소독하지 않아 마음속에 진물이 나지 않도록 ,

혼자 고민하고 치료하려다 괜히 상대방이 준 상처보다 훨씬 커져 상대방에게 덮여 씌우려고 하면

더 힘들어지는 꼴이 돼버리니까.























.






매거진의 이전글 한숨을 내뱉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