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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인 Nov 29. 2016

포기한다.

*포토에세이

포기한다.    

무언가 일을 진행하다가 도중에 포기를 하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기가 쉽다.  

'끈기가 없네' '또 포기하는 거야?'  

끈기가 없어 보이고, 금방 질려버리는 것 같고 끝까지 하지 않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마치 내가   

지금까지 아무리 열심히 해오고 최선을 다했어도 포기를 하는 순간 , 나의 한계가 규정되고 , 그 모든 게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실 포기라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도전보다 포기라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내 성격상 무언가 맘을 먹거나,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고, 바로 계획을 세워 실전에 옮기는 편이어서 시도라는 것에는 그렇게 많은 두려움을 개인적으로는 느껴본 적은 없다.  

해보면 되겠지.  

그다음에 생길 문제는 그다음에 해결하면 되겠지 라고 시작은 오히려 맘을 편하게 먹는 편이다.  

 실행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데 반해 내가 이뤄놓은 것에 대해서는 집착이 꽤나 심한 편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무언가를 놓아버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포기를 한다고 내가 했던 것이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멈춘다는 것은 억울하기도 하고 ,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에 어떻게든 쥐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때부터는 오히려 이 일의 진행방향과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해보려고 하기보다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좌절하는데 더 힘을 써버린 것 같다.     

'왜 나는 여기까지밖에 안될까.   

더 해보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조금만 더 해보자. 조금만 더. '

이렇게 무언가 억지로 진행해나가려고 했을 때는 사실 안 하느니 못한 결과가 나온 적이 더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포기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어서 무언가 진행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점점 엉켜버리는 문제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없이 놓지도 못하고 그저 어영부영 들고 있어 봤자 나에게 점점 독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이제 그만 포기해"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아 내가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이나?  

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오기가 나서 나는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더 발버둥 치고   

시도해보고 , 실패하고 좌절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만 포기해 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도 아니었고 나의 지금까지의 노력을 폄하한 것도, 한계를 말한 것도 아닌 거였다. 최선을 다했고, 이제 그만해도 될 거 같아 넌 충분했어.라는 걱정 어린 말이었다.    

  

요 몇 달간 나는 무언가를 무던히 시도하다가 깨지고, 또다시 시도하고 무참히 실패하는 것을 여러 번  

겪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자문을 구해보았다.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해서.

당연하게도 나를 보고 있었던 사람은 "그만해"라는 말을 해주었다.

어떤 간절한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직접 들었을 때 신기하게도 오히려 더 맘이 편해졌다.  

사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내가 아등바등 놓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들이  

그 답을 듣는 순간  

이제 포기해도 된다는 안도감과 끝이 없어 보였던 혼자만의 질문 속에서  

그래도 출구라도 찾은 느낌이었다.   

비록 내가 찾던 방의 입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깜깜한 방에서 보이지도 않는 답답한 상황에서 출구라도 찾아 나갈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위로도 아니고,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고   

"포기해"라는 말이 듣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가 중간에 포기를 외친다고 해서 그게 뒤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 길이 보이고, 내가 그 길을 아는 상태에서 포기를 한다는 것은 조금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그것을 아는 상태에서 포기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진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어떤 이상한,구불구불한,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다시 이정표로 돌아가 또 다른 길을 모험해보고, 더 멋진 종착지로 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힘들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단 생각이 들면 포기를 하고 내려놓는 것은 분명 비난받을 일도

나 자신을 깎아내릴 일도 아니다.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는 방법 중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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