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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Dec 22. 2019

[뮤즈 모임] '죽음'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소재는 죽음

<출처: unsplash.com>




[뮤즈: 심규락 작가]


<참척(慘慽): 유클리드 기하학의 5번째 공리를 부정하는 이유>

여보, 차라리 천붕(天崩)이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둘보단 하나만 울면 되겠지요?

그 국화 한 송이만 한 손으로
첫 잡음을 만들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무 조랑말 등에 업혀 가 더 나이다

여보, 되려 저 우에랑 가까워졌다 믿으면
그리 헤아리면 우리의 분신은 아직 있는 거겠지요?

이제서야 두 발 든 해시계가 되었는데
요 앞 풀 무더기 고작 몇 뼘엔
따스한 광원마저 가려져 그림자 따위도 들지 않으니
차라리 순진무구한 빛줄기마저 어여쁘게 투과했을 겁니다

여보, 수학자인 나지만
하늘의 확률 재간마저 헤아리기엔
야박히도 조촐한 것 같군요
대신 저 잔인한 날벼락의 실수라 여기고 싶을 뿐

서슬 퍼런 발 도장의 시공간을 애써 출발점 삼아
이 텅 빈 대가리 위쪽
저기 저쪽까지 쌍곡 무지갤 따라 무한히 이어 볼테요

팔자처럼 꼬여버린 남은 이들의 위치가 무색해질 만큼요
그러면 꼬까신의 아장아장 신기루를 기점으로
부모로서 평행한 직선들을 빚어낼 수 있으니

여보, 여보, 만일 그리된다면
홀로 울어대는 삼도천(三途川)의 천(川) 한 자 정도는
우리 셋이서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똑같은 너비로 퍽이나 길고 길게
그러다 언젠가는 삶의 한 켠 정도쯤에선 만날 수도

이 몹쓸 두 망부석들을 끝까지 울린
병원 안 네모 속 일자 직선은 곧 잊힐 거예요
1,200Hz의 굉음도
눈을 감은 심전도의 마지막 사자후도 말이에요

허, 물기 서린 세상과 직교하는 수직선이 내려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 병아리 대신 쑥쑥 자라주길 바라는 맘에
진달래에게 건네던 물뿌리갤 구름밭 위서 들고 있는 걸지도

그래요, 여보
차라리 천붕(天崩)이었다면
정말이지 그랬다면 하나 말고 셋 모두 울었으리라
그리 믿고 이리 삼켜봅시다




[뮤즈: 정진우 작가]


<죽음>

죽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도시의 방
죽음 후
새로운 생명
공간의 시간에서
생기가 돋아난다




[뮤즈: 휘게 작가]


<자살특공대>

“모두들 장비 잘 착용했나요? 이제 비행기에 탑승합시다.”

어느 예능 tv에서 보았던가, 저 멀리 공항 한가운데 낯설지 않은 모습의 경비행기 한 대가 힘차게 프로펠러를 돌리며 준비를 하고 있다. “아, 너무 떨리네”
막상 비행기를 보니 후회가 밀려오고 심장이 뛰었다. 괜히 신청한 것 같은 불안감.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잊고자 호주에서의 추억을 강렬하게 남기고자 큰맘 먹고 신청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몰라서 신청할 수 있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로 탑승한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닫을 수 없었다. 비행기가 살이 오른 초식동물이라면 내부는 이미 천적에게 습격당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도 안전벨트도 심지여 비행기 문도 뛰기 편하게 개조한 철문. 조종사의 짧은 눈인사를 뒤로 비행기는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맨 마지막에 탑승한 나는 문 바로 앞에 앉아서 고도가 높아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비행이 아닌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살면서 문득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보고 고민해 보고 나름 철학적 고뇌도 해 보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토하고 싶었다.
점점 고조되는 심장의 움직임과 소리는 내 고막과 가슴팍을 강타했다. 포인트 고도에 가까워 지자 나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 다이버는 내 등 뒤에 붙어서 장비를 착용했다. 금방이라도 뛸 수 있게 준비를 마치고 내 귀에 대고 지시사항을 알려주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죽는다. 죽겠다. 죽겠지? 아마 죽을 거야.” 가장 높은 고도에 오르자 철문이 위로 열리고 처음으로 내가 뛸 준비를 했다. 찰나라고 표현할 수 있는 0.1초의 그 순간, 심장이 멈춘 바로 그 순간 뭐라고 외칠 새도 없이 구름 속으로 뛰었다. 공포의 순간이 지나자 어떤 놀이기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온몸을 휘감았고 처음 느끼는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짧은 자유낙하 후에 낙하산을 타고 유유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은 쉽게 흥분감을 잊지 못했고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야겠다.”



<자살특공대>

부릉부릉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에 눈앞이 아득하다.

두근두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내 심장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던가 죽음은 항상 옆에 있다고.
내 옆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죽음과 대면하던 그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그 순간
그것은 죽음이란 가면을 쓴 희열이네

죽음인지 희열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란 속에
나는 오늘도 살아있네




[뮤즈: 심스 작가]


<죽기살기>

살아있음에 죽음을 먹는다
살아있는 매 순간 죽음으로 연명한다

내 피와 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채워지고
내 삶은 죽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간다

죽음을 애써 부정하지만
죽음을 잊고 싶지만
매일 밤 눈을 감으며
나는 작은 죽음을
맛보며 살아간다

살아있는 한
나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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