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慘慽): 유클리드 기하학의 5번째 공리를 부정하는 이유> ⠀ ⠀ 여보, 차라리 천붕(天崩)이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둘보단 하나만 울면 되겠지요? ⠀ 그 국화 한 송이만 한 손으로 첫 잡음을 만들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무 조랑말 등에 업혀 가 더 나이다 ⠀ 여보, 되려 저 우에랑 가까워졌다 믿으면 그리 헤아리면 우리의 분신은 아직 있는 거겠지요? ⠀ 이제서야 두 발 든 해시계가 되었는데 요 앞 풀 무더기 고작 몇 뼘엔 따스한 광원마저 가려져 그림자 따위도 들지 않으니 차라리 순진무구한 빛줄기마저 어여쁘게 투과했을 겁니다 ⠀ 여보, 수학자인 나지만 하늘의 확률 재간마저 헤아리기엔 야박히도 조촐한 것 같군요 대신 저 잔인한 날벼락의 실수라 여기고 싶을 뿐 ⠀ 서슬 퍼런 발 도장의 시공간을 애써 출발점 삼아 이 텅 빈 대가리 위쪽 저기 저쪽까지 쌍곡 무지갤 따라 무한히 이어 볼테요 ⠀ 팔자처럼 꼬여버린 남은 이들의 위치가 무색해질 만큼요 그러면 꼬까신의 아장아장 신기루를 기점으로 부모로서 평행한 직선들을 빚어낼 수 있으니 ⠀ 여보, 여보, 만일 그리된다면 홀로 울어대는 삼도천(三途川)의 천(川) 한 자 정도는 우리 셋이서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 똑같은 너비로 퍽이나 길고 길게 그러다 언젠가는 삶의 한 켠 정도쯤에선 만날 수도 ⠀ 이 몹쓸 두 망부석들을 끝까지 울린 병원 안 네모 속 일자 직선은 곧 잊힐 거예요 1,200Hz의 굉음도 눈을 감은 심전도의 마지막 사자후도 말이에요 ⠀ 허, 물기 서린 세상과 직교하는 수직선이 내려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 병아리 대신 쑥쑥 자라주길 바라는 맘에 진달래에게 건네던 물뿌리갤 구름밭 위서 들고 있는 걸지도 ⠀ 그래요, 여보 차라리 천붕(天崩)이었다면 정말이지 그랬다면 하나 말고 셋 모두 울었으리라 그리 믿고 이리 삼켜봅시다
[뮤즈: 정진우 작가]
<죽음>
죽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도시의 방 죽음 후 새로운 생명 공간의 시간에서 생기가 돋아난다
[뮤즈: 휘게 작가]
<자살특공대>
“모두들 장비 잘 착용했나요? 이제 비행기에 탑승합시다.”
어느 예능 tv에서 보았던가, 저 멀리 공항 한가운데 낯설지 않은 모습의 경비행기 한 대가 힘차게 프로펠러를 돌리며 준비를 하고 있다. “아, 너무 떨리네” 막상 비행기를 보니 후회가 밀려오고 심장이 뛰었다. 괜히 신청한 것 같은 불안감.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잊고자 호주에서의 추억을 강렬하게 남기고자 큰맘 먹고 신청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몰라서 신청할 수 있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로 탑승한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닫을 수 없었다. 비행기가 살이 오른 초식동물이라면 내부는 이미 천적에게 습격당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도 안전벨트도 심지여 비행기 문도 뛰기 편하게 개조한 철문. 조종사의 짧은 눈인사를 뒤로 비행기는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맨 마지막에 탑승한 나는 문 바로 앞에 앉아서 고도가 높아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비행이 아닌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살면서 문득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보고 고민해 보고 나름 철학적 고뇌도 해 보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토하고 싶었다. 점점 고조되는 심장의 움직임과 소리는 내 고막과 가슴팍을 강타했다. 포인트 고도에 가까워 지자 나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 다이버는 내 등 뒤에 붙어서 장비를 착용했다. 금방이라도 뛸 수 있게 준비를 마치고 내 귀에 대고 지시사항을 알려주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죽는다. 죽겠다. 죽겠지? 아마 죽을 거야.” 가장 높은 고도에 오르자 철문이 위로 열리고 처음으로 내가 뛸 준비를 했다. 찰나라고 표현할 수 있는 0.1초의 그 순간, 심장이 멈춘 바로 그 순간 뭐라고 외칠 새도 없이 구름 속으로 뛰었다. 공포의 순간이 지나자 어떤 놀이기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온몸을 휘감았고 처음 느끼는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짧은 자유낙하 후에 낙하산을 타고 유유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은 쉽게 흥분감을 잊지 못했고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야겠다.”
<자살특공대>
부릉부릉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에 눈앞이 아득하다.
두근두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내 심장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던가 죽음은 항상 옆에 있다고. 내 옆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죽음과 대면하던 그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그 순간 그것은 죽음이란 가면을 쓴 희열이네
죽음인지 희열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란 속에 나는 오늘도 살아있네
[뮤즈: 심스 작가]
<죽기살기>
살아있음에 죽음을 먹는다 살아있는 매 순간 죽음으로 연명한다
내 피와 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채워지고 내 삶은 죽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간다
죽음을 애써 부정하지만 죽음을 잊고 싶지만 매일 밤 눈을 감으며 나는 작은 죽음을 맛보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