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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an 06. 2020

[뮤즈 모임] '죽음'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소재는 죽음

<출처: unsplash.com>




[뮤즈: 송진우 작가]


<유서>

 수사관이 서재에서 발견한 유서는 담당 수사기관을 거쳐 유족에게 전달되었다. 유서에는 변사자가 수목장을 희망한다는 내용과 함께 가족에게 전하는 짧은 글이 쓰여 있었다.

 '죽음이란 슬프고 가슴이 아린 것만은 아니다. 살아서는 삶을 누렸고 죽어서는 다시 돌아가 평안하려 한다. 잿빛의 장례 따윈 집어치우고 고요하기는 하되 너희의 소리나 들렸으면 좋겠다.'




[뮤즈: 휘게 작가]


처음 세상에 나와 본 것은 형제들이었다. 흰색 피부와 흰색 털 색깔을 지니고 있는,
남들 눈엔 똑같은 모습의 7명의 형제들 중 막내. 그게 나였다.
내 이름은 엄지다. 막내로 태어나서 형제들에 비해 제일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살라는 엄마의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먼저 세상에 나와 생존경쟁에 익숙한 형제들보다 뭐든 배움이 늦고 몸도 약한 나는 항상 괴롭힘 일 순위였고 욕심만은 형제들 덕에 거의 바닥나버린 엄마젖을 겨우겨우 맛만 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엄마의 배려로 가끔은 형제들 보다 먼저 엄마 젖을 맛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맨 처음 맛보는 엄마의 젖은 정말 따뜻했다. 달큼한 냄새가 풍기는 엄마 젖은 형제들 등쌀에 치여 맨 마지막에 먹는 다 식은 맛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따뜻하고 푹신푹신한 짚단이 잘 깔려있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엄마를 포함 우리 7명의 형제가 살기에 작지 않은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형제들의 덩치는 커져만 갔고, 형제들이 클수록 엄마도 점점 젖을 물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셨다. “엄마, 형들이 더 성장하면 이 집도 좁아질 것 같아.”
“그렇겠네...” “집이 작아지면 우리 이사가?” “응... 그래야지” 가끔 형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었다. 처음엔 왜 엄마 눈이 그렇게 슬픈지 몰랐고, 형제들이 집을 떠난 후 내가 집을 떠나게 될 때가 돼서야 엄마가 왜 그리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엔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날은 남자가 또 어떤 날은 여자가... 그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형제들이 순서대로 그 사람들을 맞이했다. 첫째 형부터 여섯째 형까지. 6명의 형들은 순서대로 집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2~3일에 한 번씩 매번 돌아오는 순번은 태어난 순번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밖에서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떤 날은 하루가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난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매번 형들을 찾아오는 그 사람들은 누구야? 어제는 셋째 형이 집에 안 들어왔어.” “형들은 곧 집을 떠나야 해. 그게 형들의 운명이고 엄지 너와 엄마의 운명이기도 해.” “왜? 어디로 가는데?” “우리는 성인이 되면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단다. 그 방법이나 형태는 다 다르지만 우리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산단다. 그리고 너도 언젠가는 그 운명을 따르게 될 날이 올 거야.” “난 그런 운명 싫은데.. 난 세상을 여행하고 싶은데..” 어릴 적부터 나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끝없이 교육받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교육받으며 살아왔지만 나는 그런 삶이 싫었다. 그러나 전날 집을 나갔던 셋째 형이 며칠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게 되면서 나에 인생은 순식간에 바뀌게 되었다. 그다음은 둘째 형, 그다음은 여섯째 형, 처음 낯선 사람들을 맞이할 때와는 다르게 셋째 형이 집에 안 들어온 그날을 시작으로 나에 형제들은 순서와 상관없이 집을 나섰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남아있는 형제들이나 엄마와의 작별 인사도 없이 형제들은 그렇게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첫째 형이 집을 나가고 한때는 비좁고 답답해 보였던 집엔 엄마와 나만 남았다. 형제들이 나갈 때마다 슬픔에 잠겨 밥도 안 먹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약해져 갔고 형제들 중 유일하게 나만 남았을 땐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 어디 가 아픈 거야? 아프지 마, 엄마가 아프면 내가 슬퍼” “미안해, 엄지야. 아무래도 엄마가 곧 있으면 집을 떠나야 할 것 같아. 엄지는 엄마 없이 잘 살 수 있지?” “무슨 말이야? 집을 떠난다니... 그럼 나도 엄마와 같이 갈래.” “아직 넌 안 돼. 곧 너에게도 순서가 올 거야.. 이번엔 비록 여행가의 꿈을 이루진 못해도 다음 생엔 꼭 꿈을 이루렴.” 그날 엄마와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는 두 번 다시 엄마를 볼 수 없었고, 며칠 후 낯선 그 사람들을 만난 뒤 왜 내 형제와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실험용 흰쥐다. 내 가족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인간들을 위해 온갖 실험에 이용당한다. 인간에게 바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거나 위험한 실험들을 인간들은 우리에게 먼저 실험을 한다. 흰쥐들이 인간의 유전자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뇌가 열리기도 하고 이름 모를 약물을 투여받기도 한다. 그나마 운이 좋은 쥐들은 교육용으로 초등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의 친구 역할을 하지만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 역시 어느 학교 교실 뒤편에 마련된 작은 집에 홀로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밤이 되고 아이들이 집에 다 돌아가면 홀로 집에서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본다. 내 형제들과 엄마와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지만 다음 생엔 그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




[뮤즈: 심규락 작가]


<서울시립승화원>

이 세상 가장 농도가 짙은 눈물의 그림자들
세월 따라 그만큼 굳어버린 외로움이
그래서 이만큼 승화되어 저 위로 올라간 걸까

한 해의 바늘 세 개가 망아지 마냥 굴러대면
그저 이렇게 누운 비석이 되어 찔림을 당할 수밖에

일 년이 아닌, 단 하루라도
안식이 안아주는 꿈을 기대한다는 게
그렇게 허망스런 사치로 치부될 일인가

조문 이전에 기억조차 받지 못하는
혹은 자신의 마른 손금이 아닌 다른 이의 수성을 본 적 없는
그 모든 서글픈 광원들에게
잠시라도 투명함을 잔에 담아 올리고 싶은 이 밤

실은 여기 이 그림자도
그분들의 그림자가 되고 있기에
오늘의 반포동 한구석은 더욱이 분지가 되어간다

맞이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산 유언일 수도
정확히는 맞이 당하는 것일 수도

고독보다도 처연하고
소천(召天)만큼 올라가야 비로소 보일 법한
그런 산 죽음은 곧 만날 것이다

나의 죽은 삶과
아주, 곧

그러면 적어도 저 위에서는
무연고라는 말이 없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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