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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Dec 08. 2020

야단스러움

조직개편 후에 야단법석인 동료들을 위로해 주었다.


L은 똑똑하고 똑 부러지는 성미다. 제대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그간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어떤 집에서 자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꽤 학식 있고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인 그녀는 나이는 나보다 서넛 위지만, 막내 티가 난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잘 해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오래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런 성격 탓에 우리 회사 안에서도 여러 부서를 돌았고, 결국엔 퇴사를 했다. 그러나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의 위력은 대단했다. 긴 해외여행 다녀온 그녀는 그렇게 지긋지긋해하던 우리 회사에 재입사했다. 재입사 후 꽤 오래 한 부서에서 일했으나, 그 와중에도 그녀는 하루 걸러 하루를 힘들어했다. 과중한 업무, 비인간적인 조직과 상사, 자기 일에 열심이지 않은 동료들이 원인이었다. 그녀의 괴로움에 내가 쉽게 공감할 수 있었는 이유는 나 또한 그녀와 같은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성내는 의미의 불이 아니라, 일의 경중에 상관없이 쉬이 괴로워하거나 기뻐하는 성질 말이다.


그러나 올해 그녀의 기복은 상당히 심했다. 결국 인사부서의 제안으로 인해 또 한 번의 부서 이동을 했다. 새로운 부서에 가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있던 부서에 대해 마냥 불평만 하기 싫어서였다. 새로운 부서에서 일정 기간 후에 조직책임자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이 결정적인 이동 사유였다. 어차피 다 괴롭고 힘들다면, 위로 올라가서 쥐꼬리만 한 연봉 상승이라도 노리자는 것이 나와 수시로 했던 통화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부서는 그녀에게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지난 부서에서 과중하고 부담스러운 업무가 그녀를 괴롭게 했다면, 새 부서에서는 의미 없고 가벼운 업무가 그녀를 미치게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는 나 또는 함께 친하게 지나는 동료 K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러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후배가 임원 승진 후 새로 옮긴 그녀의 부서로 발령받으면서 그녀의 감성은 요란하게 출렁댔다.


L이 마침내 숨 고르기를 하며, 현재의 여건에서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하던 참에 H에게서 연락이 왔다. H는 사실 나의 대학원 선배인데, 대학 중에 마주친 적이 없고 입사 후에도 만날 일이 없어 데면데면하다가, 같은 조직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끔씩 식사는 편히 할 수 있는 동료가 된 사람이었다. 그녀도 역량이나 인성이 부족한(물론 우리끼리 판단하기에) 상사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나는 올해에나 안 사실이지만 그녀가 그렇게 지낸 지 한두 해는 되었다고 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사람으로 인한 고민은 “퇴사”라는 극단적인 고민으로 사람을 몰아친다. H 또한 퇴사까지 떠올릴 정도의 괴로움을 월급 중단이라는 두려움 아래 숨겨놓은 정도였다. 그러나 매년 말이면 찾아오는 조직개편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듯했다. 지역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어느 곳으로 안착할지 모르는 깜깜한 상황 말이다.


나 또한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조직은 개편되고, 누군가는 승진하고, 나이는 한 살 더 먹게 되는 연말... 불안하고 초조하고 다급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감정이 매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시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던 끝에 나는 3가지를 시작했다. 먼저 마음이 끌리는 콘텐츠를 보고 또 보기 시작했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을 4번째 보는 중이다). 다음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나는 문학에 대한 동경이 크지만 읽은 책은 많지 않아서, 소장한 책 중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부터 꺼내 들었다). 마지막으로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글로 토해내기로 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그중 가장 놀라운 효과는 요동치는 내 감정의 정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인생의 정답을 찾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 내 감정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이유를 깨달은 것뿐이다. 그것은 직장은 나에게 “돈을 버는 곳”이라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조직은 내가 직장에서 단순한 월급 수령 이상의 의미를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수많은 교육과 평가 시스템 등을 통해 내가 혼연의 힘을 다 쏟아내도록 몰아간다.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과로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내가 조직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일을 덜 하거나, 덜 열심히 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아니다. 여기에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 높은 고과를 통한 인센티브, 승진 등 방법은 여러 가지다. 더 많은 방법들도 있는데, 직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다 보니 매년 기계적으로 벌어지는 조직개편에 이러저러한 삶의 의미를 갖다 대면서 내 감정에 빠져드는 우를 범하곤 했다. 특히 그중 한두 가지, 이를테면 승진이나 조직 이동에서 남이 잘되거나 내가 불리해지면 되지도 않은 의미를 갖다 대며 내 상황에 대한 변명이나 조직에 대한 불만만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내 목표를 잊고, 내 상황을 직시하는 용기가 없이 비겁하게 핑곗거리만 찾았던 것이다.


주식으로 수백억 대 슈퍼개미가 된 이정윤 세무사는 유튜버 김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부자가 되는 법은 매우 논리적이고 간단하다고 했다. 소득 증가율과 투자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고안한 이 간단한 공식보다 나를 놀라게  그의 말은 “사람들이 고소득자와 부자가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고소득자가 많이 벌기 때문에 소비에만 집중하면 부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같은 논리로 나는 직장에 대한 개념을 명쾌하게 이해하거나 외면했거나 사실 내가 지향했던 목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L과 H도 마찬가지였다. 그네들이 희망하는 삶의 이상향은 분명히 따로 있다. L의 경우, 전원주택을 짓고 한가로이 글을 쓰며 친구들과 어울려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명확한 그림까지 있다. 도착지는 명확한데, 가는 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는 길이 고르지 못하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도중에 벌어지는 일은 그녀의 최종 목적지와 무관데, 중간에 멈춰 서서 사실은 여기가 더 중요하다고 우기는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중간 길에서 그녀의 걷는 방식이나 속도가 부족하기도 한데, 자신의 부족함보다 다른 사람이나 험한 길 탓만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글기를 권했다. 몇 년 전 그녀가 예전에 써두었다던  블로그 글들을 읽으며 그녀의 수준 높은 문장력에 감탄한 기억이 선명다.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는 책도 선물했다. 올초쯤 나도 읽었던 책인데, 한 번 읽고는 더 읽것 같지 않아 헌책방에 팔았던 책이었다(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그녀의 글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깊은 깨달음이 온다). 진심으로 L이 글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목적지에 가는 길에 벌어지는 일들에 좀 더 태연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게 내가 벼락 치듯 깨달은 정답이었다.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세끼 까고 살고 싶었다. 그 남자네 집도. 우리 집도 사방이 비 새고 금 가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다. 도저히 새끼를 깔 수 없는 만신창이의 집.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새끼를 위해 그런 집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답이 나오면 비밀은 없어진다. 나는 그렇게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 인생이 살 만한 건 정답이 없기 때문인 것을.
- 박완서, <그 남자네 집> p.101


박완서는 정답이 나오면 비밀은 없어지고, 인생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살만하다고 했다. 그녀가 한 때 플라토닉하지만 온 힘을 다해 사랑한 남자 대신 지금의 남편을 선택한 이유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비밀 없이 모든 것이 이미 까발려진 삶이란, 생각만 해도 비인간적이고 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삶이란 매 순간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 앞에서, 과연 그 속에 숨겨진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중에 사실은 그것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다시 밝혀내야 하는 비밀 탐구가 반복되는 과정이 삶의 원동력이 아닐.


나는 오늘도 일단은 비밀을 밝혀냈다 생각한 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어느 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이것이 오답이었다고 깨닫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어떠한가. 적어도 나에겐 몇 가지의 글이 남아 있을 테고, 당최 파고드는 취향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덕질할 만큼 최애 하는 콘텐츠를 갖게 되었으니. 그때 가서 깨닫는 새로운 정답 또한 실은 오답일 수 있고, 그 오답 또한 나에게 무언가 남기지 않겠는가. 박완서 작가의 말 마따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 illustration by @soundslikemesha (@penguinukbooks 인스타그램 캡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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