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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발자 Dec 17. 2016

견물생심

프라탑과 견물생심

건프라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행동 중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다. 내 와이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내게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도 있고, 집에 아직 만들지 않는 것도 있는데 왜 이리 택배박스가 계속해서 오는 거야!"


건프라를 취미로 시작한 집에는 이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기이한 탑이 쌓이기 시작한다. 일명 "프라탑"이라고 불리는 탑이다.

*프라탑 : 건프라 박스를 탑처럼 쌓아놓은 것. 프라탑에 포함된 건프라는 아직 조립하기 전 상태이다.
< 흔한 프라탑 >

건프라를 즐기는 사람들 스스로도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프라탑이 만들어져 있었다'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프라탑이 점점 쌓여가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위의 경우와 같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안에 프라탑이 쌓여있었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 건프라를 즐기는 사람의 집에는 프라탑이 생기는 것일까? 


프라탑이 쌓여가는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새로운 또는 재 발매된 건프라를 사놓는다. 지금 당상 사놓지 않으면 품절될 것 같다.

2. 할인 이벤트를 하는 곳에서 사고 싶었던 것을 미리 사놓는다.

3. 누군가 일명 지름 인증글을 올렸고, 그 글을 보자 나도 사고 싶어 졌다.

4. 한정판인 클럽 G 제품을 우선 사놓고 본다. (수량 제한, 판매 기간이 정해져 있는 상품이다.)

5. 눈에 보이는 건프라는 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다 (...)

6. 위의 이유들로 건프라를 구매하는 속도는, 만드는 속도를 한참 상회한다.

< 한 때, 최대 2만원이 할인되던 쿠폰. 이런 쿠폰이 생기면 참기 어렵다 >


사도사도 또 사고 싶은 마음이 다양한 이유고 생기게 되고, 그런 이유로 구입하게 되는 건프라는 이미 가지고 있는 건프라를 만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쌓여간다. 그러다 보니 완성하지 못하고 쌓여가는 건프라의 개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프라탑이 완성되게 된다.


나 역시 만들지 못하고 쌓여있는 건프라가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사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자제력을 잃어가는 느낌이 싫었고 프라모델 조립이라는 순수한 취미의 의도가 끊임없이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로 변질되는 것 같아 싫었다. 아직 만들고 있는 것, 만들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왜 이리 계속해서 사고 싶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의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견물생심"이라는 사자성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다른 취미들과 마찬가지로 건프라를 취미로 가지게 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들에는 건프라 제품에 대한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지금 xxx에서 할인 이벤트 진행 중입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습니다~", "지름은 인증이죠!", "xxx 재판 (재 판매) 되었습니다! 달리세요!"

이런 자극적인(?) 제목의 글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눌러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본 내 마음속에서는 지름신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지갑에 아주 무자비한 녀석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된다.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서서히 건프라 구매 노하우를 학습하게 되다 보면, 몇몇 건프라 구매 홈페이지를 매일매일 체크하게 되면서 스스로 다양한 건프라 상품에 노출되게 한다.

견물생심이라는 사자성어와 같이, 항상 건프라에 노출된 내 마음속 한 켠엔 건프라의 지름신이 상주하고 있던 것이었다. 


< 우리마음속 월급 루팡 >


견물생심. 이 네 글자를 내 마음에 새겨놓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건프라 상품을 스캔하는 행위는 그만두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 지름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마음속 한 구석에서 사라져 갔고, 나의 순수한 의미의 취미를 다시 되찾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넷 게시글을 보다 보면 스스로를 '지름신의 노예'라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래 글을 보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지름신은 우리들이 나약해서가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임을 알 수 있다.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드러나는 자연적인 감정인 칠정(七情:喜怒哀樂愛惡欲) 가운데 하나이다. 물건을 보고 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할 수 있다. - 네이버 대중문화사전


오늘날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수많은 상품들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더 자주 지름신이 나타나게 된다.


내 마음속에 지름신이 너무 자주 찾아와 힘이 든다면, 당분간 지름신을 불러오는 대상이 되는 것을 보지 말도록 해보자.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와 같은 이야기는 사랑뿐만 아니라 지름신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출처 : 

프라탑 사진 : 구글 이미지 검색

쿠폰 이미지 : 위메프 홈페이지

지름신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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