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프라모델 (이하 건프라)을 만드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은 부품을 떼어내는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가지고 설명을 하자면, "러너"라는 플라스틱 프레임과 각 부품들이 연결되어 있는 "게이트"를 절단해서 부품을 "러너"로부터 떼어내야 한다. "러너"로부터 떼어낸 부품에는 "게이트"가 남아있게 되는데, 이 "게이트"를 제거하는 행위를 "게이트 제거"라고 말한다.
처음 건프라를 접하는 사람들은 부품들을 러너로부터 떼어낼 때 별다른 걱정 없이 '그냥' 떼어낸다. 부품을 손으로 잡고 빙빙 돌려서 떼어내거나, 집에 있는 일반 가위 또는 커터칼을 가지고 떼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건프라를 즐기기 시작한 사람들은 게이트 제거에 대해서 상당히 신경을 쓰게 된다. 처음 건프라를 만들던 시절, 자신이 저질렀던 대단히 끔찍한 행위에 대해서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러너로부터 부품을 그냥 떼어내는 것을 끔찍한 행위라고 표현한 이유는, 건프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건프라를 "깔끔하게" 완성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부품을 러너로부터 그냥 떼어낼 경우 부품과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던 부위가 심각하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새로운 용어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부품과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던 곳에 남는 흔적을 "게이트 자국"이라고 하며, 앞의 경우와 같이 부품을 그냥 떼어낼 경우 게이트 자국이 많이 남는다고 표현한다. 특히 부품을 빙빙 돌려 떼어내거나 일반 가위 또는 커터칼로 떼어내는 경우 부품과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움푹 패이는 등 심각하게 손상이 되는데 이땐 해당 부위를 "파먹었다"라고도 한다.
두 번째로 만들었던 건담의 파먹은 게이트자국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게이트 정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을까? 우선 게이트 제거를 위한 전용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는 모델링용 니퍼와 아트 나이프가 있다. 이 도구들은 여러 종류의 제품이 있으며, 좋은 도구들은 건프라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엔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용 도구를 사용하면 게이트가 있던 부분을 "파먹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파먹지 않고 게이트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 이번엔 하얗게 보이는 게이트 자국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이 게이트 자국은 플라스틱이 힘을 받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플라스틱 열화 자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트 자국이 안 남도록 게이트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부품과 게이트가 연결되는 부분에 플라스틱 열화가 생길 만큼의 힘을 받지 않게 해아 한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게이트 자국이 생기지 않도록 게이트를 정리하는 방법에는 "게이트를 러너로부터 절단할 때, 부품으로부터 가까운 위치에서 절단하지 않는다.", "부품에 남아있는 게이트 제거 시 채 썰듯 게이트를 얇게 저미면서 제거한다", "일명 '손톱 신공'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이 게이트 자국이 일단 생기게 되면 제거하기가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이미 생겨버린 게이트 자국을 안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분을 도색(=색칠) 하는 방법밖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깔끔하게 건프라를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에, 이미 생겨버린 게이트 자국을 제거하려고 한다. 이러다 보면 오히려 게이트 자국은 없애지도 못하고 부품을 파먹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없애지도 못하는 게이트 자국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경험상 건프라를 조립하다 보면 상당히 많은 게이트 자국이 생기게 된다. 조립하는 사람의 부주의로 인해서 생길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게이트 제거 작업 시작 전에 이미 생겨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많은 게이트 자국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건프라를 만드는 내내 스트레스만 받고 기분 좋게 조립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생긴 게이트 자국은 없애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생긴 게이트 자국이라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안 받고 건프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완벽하게 깔끔한 건프라를 완성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될 일인 것이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 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책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변화시키지 못하는 결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다음번에는 더 멋진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