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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하는 글쓰기

by 달숲

여름은 존재하는 것으로 벅찬 계절이다. 이에 세상이 돌아가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는 남성의 티셔츠에서 풍겨오는 쉰내를 맡으며, 역시 여름은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단 말야를 생각하다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난밤 꿈속에서는 어떤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선명한 멜로디였는데 금은 놀라울 정도로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뭐에 홀린 기분이다. 이렇게 흩어진 기억이 얼마나 될까.


예전에는 사라져 가는 기억이 서글펐는데 이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좋은 부분만 오려내고 별로였던 기억은 과거로 흘려보낼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 키질을 할 때 그 안에 큰 낱알만 남고 작은 것들은 걸러지는 것처럼, 기억의 상자에 큼직한 추억의 조각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뇌가 이런 식으로 진화된 것은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의 뒤틀림 덕분에 희망을 품며 살아가는 걸지도.


그러나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까닭 없이 울고 싶어 진다. 정말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말이다. 영문모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나름의 키질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의 환풍구를 가동하면 생각이 저절로 순환되어 괜찮은 기분이 두둥실 떠오른다. 나를 살게 하는 글쓰기. 어주는 이가 없을지라도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나의 글쓰기.

여름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계절이지만 각자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오늘도 인생을 기억하고 왜곡하며, 순간을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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