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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Dec 24. 2018

너무 다른 그들이 친구가 되는 방법 <그린북>

1960대 미국. 거친 입담과 폭력의 세계에 살고 있는 백인 남자, 토니는 운전수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인터뷰를 하러 간다. 고용주는 유명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 우아한 흑인 남자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 토니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흑인의 운전수이자 집사 역할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높은 월급에 일을 수락한다. 


두 사람은 8주 간의 투어 콘서트를 함께 다니며 서로 다른 세계를 공유한다. 비속어와 욕설, 말보다는 폭력이 앞선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와 고상하고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 속에 살아온 닥터 셜리. 정반대의 생을 살아온 두 사람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겪게 되며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가 된다.      


흑인들을 위한 안내서, 그린북


영화의 제목이자 두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그린북’은 흑인들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을 알려주는 책자다. 현 시대에도 인종차별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1960년대에는 더욱 심했음을 알 수 있다.      


닥터 셜리는 유명 피아니스트이며 3살부터 피아노를 친 천부적인 실력자다. 언제나 우아한 태도의 원칙주의자지만, 인종 문제는 비켜갈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고 박수를 보내면서도 같은 공간에서 식사할 수 없다고 말하고, 해가 지면 흑인들은 밖을 돌아다니면 안 된다며 선을 긋는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닥터 셜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체념한 표정을 짓는다. 오로지 그린북에 의존해 차별 없는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차별하는 데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피부색이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폭력과 억압을 당연시 여긴다. 어떤 인간들은 우월감을 느낄 때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곤 한다. 온갖 것들로 계급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회지만,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인종의 문제로 차별을 두는 것은 내세울 게 피부색 밖에 없는 미개한 인간의 행동일 뿐이다.       



흑인답지도 않고 백인답지도 않고 남자답지도 않으면 난 대체 뭐죠?


닥터셜리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을 이방인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스테레오 타입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셜리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천재고, 우아한 교양의 세계에서 자랐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고개를 돌리면, 흑인들이 밭을 갈고, 거친 말투를 사용하며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은 셜리를 이상하게 여긴다. 게다가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경찰한테 잡히기도 한다.      


토니는 셜리가 가장 싫어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바로 경찰에게 돈을 쥐어주는 일이다. 언제나 토니에게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고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던 셜리지만 그때만큼은 화를 낸다. 처음으로 고민을 토로한다. 


사람의 성향은 다양하다. 큰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일치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류’라든지 ‘타입’으로 나누어 행동을 규정하곤 한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닥터셜리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보곤 했다. 번번이 빗나가는 상상들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듦과 동시에 반성을 하게 했다. 누가 백인다움, 흑인다움, 성별다움을 규정했을까. 이 모든 규정들에는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이러한 분류들은 사람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에 걸림돌을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굳이 남부 투어 콘서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은 닥터셜리의 용기이자, 차별에 대항하는 그의 방식이다. 흑인도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고, 관객으로 온 백인들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그의 용기이다. 겪어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하고, 눈으로 본 적 없는 일들을 직접 알려주기 위해 닥터셜리는 직접 움직인다.      


겉으로 그를 존중하는 척 하면서 ‘전통’을 내세워 차별을 일삼는 마지막 공연장을 박차고 나온 닥터셜리는 그가 가지고 있던 편견마저도 허문다. 흑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호프집은 고급스런 스타인웨이 피아노도 없고, 클래식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이지만 그는 그곳에서 연주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평소에 치던 곡들과 달리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의 긴 여행 동안 토니도 많이 달라졌지만, 닥터셜리 또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었다.    

   

그 모든 편견에 대항하여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참석하기 전, 나는 그야말로 온갖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교훈적인 영화일 것이라 지레짐작 했고, 시대상을 반영한 다른 영화와 비슷한 장면들이 연이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 영화는 이런 편견들을 모조리 깨부순다.    

  

<그린북>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두 사람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정반대인 두 사람이 다투면서도 친해지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인종차별로 인해 셜리가 겪는 일들에 눈살을 찌푸리려고 하면 바로 두 사람의 대화로 긴장을 풀어준다.      



반대가 좋은 이유


정반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토니와 셜리도 마찬가지다. 인종 차별 주의자였던 토니는 셜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를 멋진 연주자로 인정하게 된다. 아마 토니는 ‘차별을 하면 안 된다’라는 개념조차 모르고 살았던 사람처럼 보인다.    

  

제멋대로 살아가는 토니는 셜리를 만나서 다양한 것을 배운다. 아내에게 감성적인 문장으로 편지를 보내는 법이나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교양 있는 말투 등 거친 모습이 어느 정도 정제된 모습으로 변한다. 셜리 역시 마찬가지다. 치킨을 처음 손으로 먹어보기도 하고, 직접 운전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투닥 거리긴 해도 두 사람은 정말 잘 맞는 친구다. 거친 말과 행동을 가진 토니지만 닥터셜리가 하지 말라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행동을 고치는 모습에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집에 도착한 토니는 닥터셜리를 초대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집에 돌아간 셜리는 혼자다. 그러나 외로움도 잠시, 이제 그에게는 친구가 있다. 엔딩까지 완벽하게 따뜻했던 좋은 영화 <그린북> 이였다.  


    

+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에 대해 더 말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아 아쉽다...  


+ <그린북>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고,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동생하고 한참 영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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