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야 May 09. 2019

저 놈보단 내가 낫다! <악인전>

용씨네 PICK <악인전> GV시사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두 가지다. 예상과 다름에서 오는 것과 예상한대로 흘러가서 ‘옳지!’하며 뿌듯한 것. 영화 <악인전>은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간다.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을 때 독보적인 조폭 캐릭터가 나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외형이 가지는 이미지 때문인지 그가 맡는 역할은 대부분 선함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겉모습은 폭력배도 한방에 날려 버릴 것 같지만 착해서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정의로운 캐릭터. 사람들은 그가 정의의 편에 서서 나쁜 놈들을 때려 잡아 다행이라고 안도하지만 동시에 다음 장면을 정확하게 예측한다. 조폭이 그의 앞에서 건방을 떨다가 호되게 당하는 씬. 


38사기동대부터 성난황소까지, 그는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맡았다. 조금 뻔하고 지겹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그가 불의에 굴복하거나 주눅 들어 있는 씬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마 그가 정의의 편에서 부당함에 맞서는 힘 쎈 남자, 즉 히어로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제대로 힘을 쓰는 조폭이 되어 나타났다. 저런 근육의 조폭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영화는 왜소하지만 광인의 눈빛을 지닌 연쇄살인마 K의 강렬한 등장을 알린다.     


 

비 오는 날 밤. 자동차끼리 작은 충돌 사고가 일어난다. 운전자는 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그대로 칼에 맞아 죽는다. 아무런 이유도 패턴도 보이지 않는 살인. 강력반 양아치 형사 정태석(김무열)은 이것이 연쇄살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조폭 두목 장동수(마동석)는 우연히 그의 표적이 되어 죽다 살아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목격자가 된 동수는 자신이 직접 살인범을 잡겠다고 나서지만 쉽지는 않다.


놈을 잡겠다는 목표가 같은 태석과 동수가 손을 잡는다. 조건은 먼저 잡는 놈이 가지는 것. 태석의 공권력과 분석팀 인맥, 동수의 주먹과 많은 부하들을 이용해 빠르게 연쇄살인범에게 다가선다. 놈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뒤집히고,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뒤집힌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동수와 그런 조폭들을 인정사정없이 갈구는 태석. 형사와 조폭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악인이다. 그런 악인들이 악마를 잡기 위해 손을 잡는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다. 비슷한 설정의 출연작, 드라마 <나쁜 녀석들>(두 사람은 나쁜 녀석들 시즌1과 시즌2에 각각 출연하였다)에서는 범죄자여도 양심이 있고 사연이 있었으나  <악인전>에선 그 모습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놓고 나쁜 놈이 되어 나타났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늘어지는 장면이 없으며, 빠른 템포의 음악을 깔아 앞의 장면에서 느낀 긴박한 상황을 이어간다. 동수와 태석은 연쇄살인마를 잡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라면 양심과 자존심 모두를 버릴 수 있는 두 캐릭터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껄렁껄렁한 태도와 저 세상에 보내버린 싸가지를 자랑하는 형사, 정태석 역의 김무열 역시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선보였다. 그가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영화, <은교>와 <기억의 밤>을 떠올려 보면 공통적으로 치졸하고 의뭉스러운 캐릭터였다. 진중해 보이는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을 때면 그런 역할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말투는 경박하고 장난스럽지만 수틀리면 무섭게 돌변할 것 같은 악바리 캐릭터를 가장 잘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런 악바리와 조폭보다 더 ‘악마’같은 캐릭터가 있을까? 라는 의문은 시작과 동시에 사라진다. 연쇄살인마 강경호, 통칭 K(김성규)는 그야말로 무자비하다. 왜소한 몸과 웅얼대는 말투, 공허하지만 번들거리는 눈빛,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영화들이 보여준 살인범이 약자(노인, 어린아이, 여성)만을 노리는 사이코패스였다면, K의 타겟은 정해져있지 않다. 그냥 마주치는 사람을 죽여 버리는 잔혹성을 지니고 있다.




난 불우한 어린 시절과 가정폭력을 당했지.
내가 이렇게 불행했으니까 (그 와중에)약자만 골라서 죽이는 거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 아닌가. 살인사건 기사마다 줄줄이 쓰인 살인범들의 TMI다. 피해자들의 사연은 없고 살인자들을 동정하게 만드는 일관된 가정사다. K의 방에서 나온 가족사진 한 장은 이러한 사연의 밑밥인가 싶었으나 예상과 달리 영화는 끝까지 그의 구구절절한 가정사는 보여주지 않는다. 범죄자의 감성팔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그냥 연쇄살인마 K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놈으로 남는다. 



이 연쇄살인범을 연기한 김성규 배우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의 부하 양태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몇 개 본 적이 있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악인전>에서 체중 감량과 긴 헤어스타일, 살기어린 눈빛을 뿜어낸다. 두 배우보다 인지도는 떨어질지언정 존재감은 만만치 않다. 하루 만에 준비해서 본 오디션인데다가 감독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니 앞으로 더 승승장구할 배우라는 것을 이 영화로 증명했다.           




여담. 

1. 나쁜놈과 나쁜놈, 악마가 서로 ‘너보단 내가 낫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번 제목이 탄생했다. 

2.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만으로도 정신없이 몰아치는 영화. 빠르고 방심할 수 없다.

3. 감독님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넘치시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배우들의 이야기를 할 때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럴만했다!

4. 미국판은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해진다. 콘텐츠 부분에서도 긍정적인 흐름이 생길 것 같아 기대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기대고 싶은, 나의 애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