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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May 28. 2019

새장의 새들은 날 준비를 마쳤다

연극 <어나더컨트리> 리뷰

*최대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작성하려 노력했으며, 

주관적인 해석을 곁들인 리뷰이기에 연출자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기숙사’가 주는 이미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먼저, 늦은 밤에 점호가 끝나면 학생들끼리 몰래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숙사를 빠져 나가는 사소한 즐거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반대로 학교가 정해놓은 규율 속에서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행동을 하는 것. 연극 <어나더컨트리>는 후자에 속하는 1930년대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의 이야기다.      




상류층 자제들이 모여 있는 공립학교의 기숙사. 엄격한 규칙과 공고한 상류 사회의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사회에서 칭송받는 제2의 누군가가 되길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회인 트웬티투에 들어가는 것이 필수코스이다.  


주인공 가이 베넷 역시 마찬가지다. 권위주의나 규율 등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미래를 위해 학생회에 들어가길 원한다. 그러나 베넷이 차기 학생회에 들어가려면 현재 공석이 생긴 곳이 없어야 했다. 원칙주의자 토미 저드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혁명가이지만 친구의 부탁에 못 이겨 학생회 가입을 신청 한다. 


하지만 기숙사 선도부, 프리펙트인 파울러는 베넷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항상 규율을 어기고, 규칙의 빈틈으로 빠져 나가는 가이 베넷을 항상 주시한다. 결국 선도부는 그 당시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동성애’를 약점 삼아 베넷에게 체벌을 가하고, 학생회 후보에서 제외한다.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베넷은 토미를 찾아간다. 토미는 신념을 뒤로하고 친구들과의 우정을 우선하여 학생회 가입 의사를 밝혔지만 다시 돌아온 임원이 있어 가입을 거부당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신념과 상황 속에서 방황하고 흔들린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자신을 이해해줄 어나더 컨트리를 찾아 떠난 가이 베넷과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토미 저드. 기숙사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의 미래는 반대 방향으로 흩어진다.      





작은 사회의 아이들

기숙사는 작은 사회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행동하도록 강요받는다. 규율을 만드는 것은 학생회인 트웬티투이고, 이를 감시하는 것은 선도부인 프리펙트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위에서 군림하는 그들에 순응하고, 이 체제를 공고히 하는 규칙들을 위반하지 않도록 애쓴다. 이 작은 사회에서 생기는 계급은 더 큰 사회로 나아가도 여전하다. 트웬티투에 소속된 아이들은 내로라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이에 속하지 못한 아이들은 소개도 없이 사라진다. <어나더컨트리> 속 학생들은 사회의 인물 양상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이 어느 인물과 가까운지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겠다.   

    



내게 허락된 자유를 깨닫는 순간, 가이 베넷

또래에 비해 엉뚱하고 유쾌한 소년인 베넷은 시종일관 정해진 규율에 반하는 일을 한다. 참석은 하지만 복장불량으로 나타난다든가 복장이 완벽하면 지각을 한다든가 하며 규칙을 반만 지키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사랑마저도 자유롭다.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았던 그 당시에도 베넷은 기숙사 안에서 자유롭게 연애를 즐긴다. 최근에 반한 하코트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남들의 시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면서 이 순간을 만끽한다. 


베넷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만 백 퍼센트 자유로울 수는 없다. 베넷은 학생회에 들어가서 성공한 삶을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파울러는 그의 약점을 잡고 싶어 한다. 사사건건 규칙을 빠져 나가는 베넷이나 규칙을 들먹이며 그를 보호하는 토미도 눈엣가시다. 마침내 베넷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파울러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제야 베넷은 그동안의 자유는 누군가에게 ‘허락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안에서 연애를 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으나 암묵적으로 반대하는 것이었고, 친구들이 눈감아준 틀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둘러싼 규칙들을 거부하고 진짜 자유를 찾기 위해 스파이가 되어 망명한다. 


      


신념이 칼이 되어 나를 찌를 때, 토미 저드

마르크스를 신봉하며 혁명을 꿈꾸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다소 융통성 없는 소년. 하지만 그 누가 이 소년을 싫어할 수 있을까? 부당한 규칙에 반기를 들고, 친구를 감싸며 하급생의 상황을 헤아려주는 토미의 행동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꽤나 정의로워 보인다. 


또한 그는 기숙사의 규율에 가장 반대할 인물이면서도 가장 규칙을 잘 지키는 타입이기도 하다. 이 점이 토미의 위태로움을 배가 시키는 부분이다. 자신의 신념을 어기면서까지 친구를 위해 학생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막상 돌아온 임원 때문에 가입을 거부당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속사정을 알지 못하기에 그저 토미 저드는 혁명을 꿈꾸는 척 하지만 실은 계급주의를 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토미는 자신도 비난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괴로움을 토로하는 베넷에게 답한다. 지상의 천국은 없다고. 지상의 지상이 있을 뿐. 이 기숙사를 벗어나도 어차피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토미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숙사 안에서는 이미 거짓 신념을 가진 자라 손가락질 받는다 해도, 그는 최후까지 혁명가로 남는다.      

 



우리는 새장 속에 있다

무리에 속하게 되면 규칙을 지켜야 한다. 동등한 관계로 시작할 지라도 규칙이 늘어나면 계급이 생기게 된다. 누군가는 규제하고, 누군가는 감시하고, 누군가는 자유를 찾고, 누군가는 무관심하게 되면서 점차 계급이 정해진다. 


자유를 찾아 떠난 베넷이나 혁명에 앞선 토미가 새장에서 날아갔듯이, 우리는 부조리한 권력에 맞설 수 있다. 새장 안에서 보면 남아 있는 그들이 꽤나 번듯해 보일 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신념과 다른 일을 애써서 하지 않아도 좋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손에 쥔 것들을 잃지 않으려 부당한 관행을 이어가는 것보단 옳다고 믿는 것을 실현하는 쪽이 더 당당할 것이다. 비록 새장을 벗어나면 더 큰 새장이 보일지라도, 꾸준히 부당함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겠는가. 이제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여담.

+ 배우 문유강씨의 딕션이 또렷해서 1층 뒷좌석까지도 잘 들렸다. 아마 토미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된 건 이 덕분일지도 모른다. 



+ ‘규칙’의 장단점을 떠올려 본다. 장단점이 확실해서 무작정 옹호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부당하다 여긴다면 그 규칙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계급사회가 아님에도 계급을 나누는 사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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