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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Jun 05. 2019

직장인이라면 역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워라밸을 맞추고 싶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겨우 잠에서 깨어 현실을 마주한 우울한 표정과 최대한 단정해 보이려 노력한 옷차림으로 서둘러 집을 나선다. 자취방은 치우지 못한 쓰레기들로 가득하고,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포도 한 박스는 이미 초파리가 점령한 지 오래다. TV 프로그램에서는 화려한 차림의 래퍼가 인생을 논한다. 인생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서둘러 도착한 회사에서는 아침부터 영업 실적의 압박이 어깨를 짓누르고 끊임없는 야근, 야근, 야근. 사는 게 사는 건가 싶은 그때, 회사원 다카시는 지하철에서 투신자살을 하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다.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해버리려는 그 순간, 그를 구한 것은 초등학교 동창 야마모토이다. 



퇴근 후엔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직장생활 조언도 해주고, 어릴 적에 했던 놀이를 하고, 평소엔 하지 않던 스타일의 넥타이를 권해주는 이상한 친구의 등장으로 다카시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지친 회사 생활로 억눌려 있던 그는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도 생기고 조금씩 밝은 모습도 찾아간다. 야마모토가 동창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진 않다. 착각이었지만 이미 좋은 친구가 되어 버렸으니. 



긍정적인 변화와 달리, 회사 생활은 영 풀리지 않는다.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상사에게 깨지고, 실적을 선배에게 양보해야 하는 처지가 된 다카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선배를 서포트 하려던 일이 오해를 산다.



의기소침해 있던 다카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늘 밝고 유쾌하던 야마모토의 우울한 모습이다. 그의 수상쩍은 행동에 뒤를 밟던 다카시는 야마모토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투신자살을 한 지 벌써 3년 째. 그는 유령일까?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음 붙일 곳이 사라진 다카시는 다시 한 번 죽기 위해 옥상에 오른다. 넓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야마모토가 있는 그곳으로 가겠다고 다짐하는 그때, 그의 앞에 야마모토가 나타난다. 인생은 누굴 위해 있는 걸까? 다카시의 물음에 야마모토는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널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생각해. 다카시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난간에서 내려온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마음을 잡은 다카시는 퇴사하겠다고 말한다. ‘상사의 지시는 하늘의 지시! 마음을 버려라! 꺾일 마음이 없으면 견딜 수 있다!’ 를 구호로 외치는 회사는 그런 다카시의 퇴사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상사에게 다카시는 웃으며 말한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른 채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인정해주세요. 


다카시는 후련해진 마음으로 회사를 떠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곳에 야마모토는 없다. 정말 유령인 것처럼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서, 다카시는 자신의 선택을 따라 야마모토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는 왜 다카시 앞에 나타났을까?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우연히 지하철 플랫폼에서 본 투신자살을 막으려고 한 ‘친구’라는 거짓말은 그들을 인연으로 엮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쩌면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초등학교 동창인지 아닌지는 상관 없었을 것이다. 회사생활로 지친 다카시에게는 독려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야마모토는 다카시를 보며 죽은 형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제목처럼 직관적이다. 다카시의 물음에 야마모토는 ‘널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생각해. 남은 이들은 고통이야. 가족들은 슬퍼하실 것’이라는 답을 낸다. 사랑 받는 존재임을 인식시켜 자살에서 구해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인생은 누굴 위해 있는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있어야 한다. 



중반부에서 임시방편의 답변을 내놓았다면, 후반부에서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다카시는 본인의 의지로 퇴사를 하고, 누가 뭐래도 하고픈 말을 용기 있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 




경쟁자와 동료, 그 사이에서

다카시의 선배 이가라시는 회사에서 촉망 받는 영업부 에이스로 높은 실적을 자랑한다. 친절하게 다카시를 도와주는 멋진 선배라고 생각하는 순간, 실적의 압박은 그녀에게도 다가온다. 



근무 시작 전, 회사의 구호를 외치는 이가라시의 표정은 필사적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에이스인 그녀는 진작에 깨달았을 것이다. 퇴사하는 다카시에게 달려가 사과하며 붙잡는 이가라시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그녀에게도 ‘다카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업무가 손에 익지 않아 자신감이 하락하고, 매일 지친 모습으로 퇴근하며 쏟아지는 업무에 실수를 연발하는 그런 모습들. 그녀가 보인 호의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다카시는 후련한 마음으로 그녀를 용서한다. 모든 게 회사를 위한 일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있을 곳을 정할 수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사들이 말했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툭하면 그만 두고 말이야’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이었다. 그 말속에는 ‘너는 그러면 안 돼’라는 압박이 들어가곤 했다. 참 씁쓸했다. 이런 상사들은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을 그만두게 만들었을까. 매일같이 조언을 가장한 폭언들이 쏟아지는데 굳이 버틸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 



친구의 회사에서는 아침부터 욕이 난무하고, 술자리에선 불쾌한 농담과 폭력이 일어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버티고, 그 광경에 아연실색하며 그만두는 사람이 매달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사회에는 자정 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보이지만, 아직도 사각지대에서는 ‘사회 생활’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불합리적인 일들이 일어나도 목표가 확실하다면 버틸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퇴근길마다 공허하고 괴롭다면 궤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있을 곳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야마모토의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아.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내일은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희망이 아무리 밝게 빛나도 먹구름이 낀다면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희망은 밝다. 스스로 정한 곳에서 보는 희망은 아마 지금보다 더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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