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레이 베이>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익숙한 사람은 없다. 시신을 눈앞에 두고도 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나레이 베이>의 주인공, ‘사치’ 역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겉으로는 묵묵히 묻는 말에 대답하고, 아들의 숙박비를 내러 가고, 서퍼였던 아들이 움직이던 해변가에서 책을 읽으며 평온한 척 하지만 속은 언제나 시끄럽기만 하다.
10년이 지나도 사치는 늘 여름마다 하와이의 하나레이 베이를 찾는다.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는다. 항상 사치와 다투기만 하던 아들은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게 다리가 물려 절단된 채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어느 날, 일본인 서퍼들을 만난 사치는 그들에게서 ‘외다리 서퍼’를 보았다는 말을 듣는다. 고요하던 그녀의 마음이 일렁이고, 마침내 무너진다. 아들일 리가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사치는 그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맨다.
난 아들을 싫어했어요
그래도 사랑했어요
난 이 섬을 받아들이려 했어요
하지만 이 섬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도 내가 받아들여야 하나요?
사치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옆으로 옮기려 애쓴다. 말도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밀고 또 민다. 그러다가 이젠 해변으로 들어간다. 넘실대는 파도에 맞서 꼿꼿하게 선다. 그제야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 사치가 하나레이 해변에 도착해서 아들의 시신을 봤을 땐 슬프기보단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 마음을 후벼 파는 짓만 하더니 결국 마지막이 이렇구나,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도의 시간을 밀어내고 있었다.
결국 사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연을 탓한다. 해변가에 있으면서 매일같이 아들의 서핑을 지켜보던 나무도 원망스럽고, 아들을 싣고 나르던 해변도 밉다. 사치는 그들을 애써 받아들이려 했으나 그들은 그녀에게 아들의 죽음만을 기억하라고 외치는 것 같기만 하다. 사치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린다.
작년 말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서 지켜본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모든 게 어색하고 어설펐다. 모두가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오열했다. 그러나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앞에서 봤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할아버지가 안 계시는 그 상황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설날이 다가왔다. 49제의 마지막 기간이었다. 작은 절에서 스님이 진행을 하고 우리는 절을 했다. 계속되는 목탁 소리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 때, 나는 할머니의 읊조림을 들었다. 마치 근처에 할아버지가 계신 것처럼 건네는 대화였다.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모두가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에 터져 나온 눈물은 쉬이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레이 베이>의 사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이 있었던 만큼, 죽음도 만나게 될 것이다. 늘 그렇듯,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감하지 못한 채 흘려보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하나레이 베이에서, 각자의 시간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부재를 천천히 인식한다. 받아들인 후엔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여담.
개인적인 경험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엔 조금 아프다. 그렇지만 이 역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