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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Jul 31. 2019

우리의 비밀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 <기생충> 시나리오 작가 김대환 감독 GV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 말 못할 비밀을 만들어두곤 했다. 학교에서 주는 우유를 먹지 않고 화장실에 버린 사소한 일부터 친구와 싸운 일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짓말을 항상 눈치 채곤 하셨다.      


가장 감추고 싶었던 것은 ‘소재 노트’로, 소설의 간단한 줄거리와 등장인물 등을 써두는 것이었다. 독서를 좋아하고 만화도 좋아했던 어린 시절, 언젠가는 이야기를 써보겠다며 적어 내려간 노트였다. 당시엔 인터넷소설이 붐이었고, 순정만화 잡지 또한 네다섯 종류가 있었기에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하며 노트를 펼쳐 많은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어쩐지 낯부끄러운 이야기들뿐이었다. 들키면 공부는 안 하고 쓸 때 없는 짓 한다고 된통 혼만 날 것 같았다. 설상가상, 동생이 내 노트를 가리키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것이다. 하지만 딱히 감출 곳이 보이지 않았다. 동생의 시선이 닿지 않아야 하고, 내겐 가까운 곳에 두어야 했다.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장소 아닌가. 쾌재를 부르며 옷들을 들추어 가장 바닥에 노트를 넣어 두었다. 그곳은 나의 비밀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며칠 뒤, 노트는 보란 듯이 옷들 위에 놓여 있었다. 젠장,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초조하게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데 뒤에서 엄마가 물어보셨다. 그거 네가 쓴 거냐? 당황해서 내 노트지만 내가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같은 소리람. 가족 세 명 중 두 명에게 노트를 들키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 노트엔 새로운 이야기가 적히지 않았다.  

    

이처럼 나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었을 때의 허탈함을 그린 영화를 한 편 소개한다.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로 다녀온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한다. 즐거운 결혼식 피로연에서 딸 이레네가 사라진다. 패닉에 빠진 라우라는 파코(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고의로 끊긴 전기, 사라진 딸... 납치범은 가까운 곳에 있다. 납치범을 찾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들이 드러나게 된다.      




라우라와 파코는 옛연인 사이로 현재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납치 사실을 알았을 때, 라우라는 가족이 아닌 파코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다. 그는 마치 약점 하나 잡힌 듯이 그녀의 말에 복종한다. 아내인 베아가 못마땅하다는 티를 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우라를 돕는다. 파코가 라우라 집안 소작농의 아들이었다는 과거도, 그들의 땅을 싼 값에 매입하여 현재의 부를 얻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기엔 석연치 않다. 파코가 라우라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에 이유를 붙인다면 사랑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파코의 비밀이다.      



왜 하필 이레네가 납치 되었을까? 사람들은 라우라의 남편이 가장 돈이 많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한다. 궁지에 몰린 라우라는 남편이 실업자 상태라는 것을 고백하지만 납치범에게는 통하지 않는 비밀이다.     

 


이 과정에서 이레네가 라우라와 파코 사이의 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라우라 부부가 간직했던 비밀이었지만 라우라의 가족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레네 행동이 파코의 어릴 적과 똑같다고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범인은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꾸 파코를 이 납치사건의 중심에 세우려 한다.      


물심양면으로 나서는 파코가 있기 때문에 범인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드러나는 비밀들에 갈팡질팡하던 그들이 복면을 벗는다. 그 중엔 라우라의 가족이 있다. 그들은 파코가 건넨 돈을 받고 이레네를 풀어준다. 집으로 돌아온 범인은 잠시 외출한 것이라 둘러대지만, 라우라의 어머니는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한 사람의 비밀이 드러나고 두 사람의 비밀이 생기는 순간이다.      




누구나 자신의 비밀은 완전하다고 생각한다.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비밀이 있다.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후 그들의 행동이나 범인의 거짓말, 주변인들의 추측에서 비밀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주로 비언어적인 표현 때문에 비밀은 완전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비밀이 드러나고, 또 다른 비밀이 생겨난다. 다만 그 비밀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범인을 찾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이야기와 비밀이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는 반전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당신이 간직한 비밀은 과연 혼자만의 것인가. 어릴 적 감추어두었던 소재 노트를 가족들이 보고 나서, ‘친구’가 쓴 것이라는 어설픈 거짓말을 믿어준 것처럼 라우라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비밀은 비밀인 이유가 있다.

영화에서는 유일하게 비밀이 없던 파코의 아내, 베아가 그들을 떠난다.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실망스러운 남편의 태도만을 확인한다. 이레네 역시 풀려나면서 가장 먼저 본 파코의 모습에 자신의 친아버지를 짐작한다. 각자 알게 된 비밀들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밀은 판도라의 상자다. 

타인의 비밀은 너무나도 궁금하고, 내 비밀은 감추고 싶기만 하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비밀을 듣게 되면 흥미진진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관련되어 있다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베아 역시 파코만 아니었더라도 이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처럼 여겼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저렇게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못마땅한데, 라우라와 똑같은 문자를 받게 되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건 마치 파코에게 두 아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레네의 납치와 파코를 연관시키는 일들에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지만 베아는 끝까지 참다가 떠난다.      



가족이라는 가까운 사이에서도 감추고 싶은 일들이 자리 잡는다. 누군가의 입김에, 자존심이 상해서, 걱정할까봐 등의 다양한 이유로 비밀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라우라의 어머니가 범인을 눈치 챈 것처럼 사소한 단서가 크게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말할 수 없다. 이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상처받을 사람 역시 가족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아서 비밀은 유지된다. 누구나 알고 있기에 허탈하지만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생기기는 비밀에 대한 이야기.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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